픽션입니다
“저들은 준비가 되어 있구나. 어떻게 하면 되는 지만 알면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러웠어. 나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술자리에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우리는 글로벌 한국 밴드를 만들겠다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던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로가 감명 있게 본 무대와 뮤지션을 언급했고, 손뼉까지 치면서 서로의 공감이 극적으로 훈훈하게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너도 충분해.”
나는 웃음을 거두며 애써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있어. 나도 음악이나 예술을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생각. 창조하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여 평생 살아야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
대기업 임원인 그의 말이 나는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승승장구하며 앞날이 탄탄해 보이는 그의 내면에 이러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어색했다. 현실과 이상이라.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늙어간다. 늙어가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시간만큼 야속한 것은 없고, 그 속에 파묻혀 저멀리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소중한 꿈들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친구의 말이 취기와 함께 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도현아, 오랜만이다. 전화 안 받을 줄 알았는데, 받았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술 마셨냐? 잘 지내?”
“어, 너 티브이에서 봤어. 잘하더라.”
“쑥스럽게 왜 그래. 그냥 운이 좋았어.”
우리는 안부를 전하고 안부를 묻고. 다시,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했다. 나는 행복하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는 행복하냐. 행복이 무엇이냐. 그냥 사는 거다. 같은 따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때 도현이가 말했다.
“다시 돌아올 생각 없어?”
나는 웃기만 할 뿐 쉽게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야, 내 친구가 너 되게 멋있다고 하더라. 준비된 남자라던가? 뭐 여하튼 대단하다고 그랬어.”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됐어. 너도 똑같아. 10년 동안 맨날 했던 건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너도 그렇잖아. 지난 5년간 너도 성장한 거 아냐. 지금이 좋다고 했잖아. 지금 이렇게 현실적으로 사는 게 너 다운 거라고 했었잖아. 5년 뒤에 이제 네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러면 된 거 아냐?”
나는 비꼬는 것 같은 도현이의 말에 기분이 나빠져 화를 냈고, 통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
십 년 전
우리는 땀 흘리며 최선을 다했다. 재능은 문제 되지 않았다. 재능이 많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판이 아니었다. 재능이 넘치는 녀석들이 반짝하고 나타날 때면 깜짝 놀랐지만, 우리는 주눅 들지 않고 우리만의 항해를 우리만의 페이스로 이어갔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에 치이기 시작했다. 연습 시간은 먹고사는 일에 뒤쳐져 바뀌거나 취소되기 일쑤였다. 진짜 중요한 공연이 잡혔을 때, 더 이상 ‘희망고문’당하는 게 싫다며 기훈이 팀을 떠났다. 나는 그를 이어 두 번째 패배자였다.
“미안하다.”
이 한 마디를 남긴 채 나는 팀을 떠났다. 그리고 늦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운이 좋게 괜찮은 직장을 얻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 나는 밴드를 찾았다.
그들의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연습실이 사라진 것만 빼고. 그들은 각자 집에서 연습을 했고, 필요하면 연습실을 빌려 사용했다. 기획 공연은 여전히 적자였고, 해마다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금세 사그라질 것만 같은 열정을 붙잡는 발버둥에 가까웠다.
다 같이 모여 삼겹살을 먹고 내가 계산하고 나오자,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분명 우리에게도 우리에게 어울리는 무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라고 도현이가 담배를 입에 물면서 웃으며 말했었다.
***
나는 집에 와서 허탈하게 앉았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만들었던 노래를 틀었다. 노래는 귀를 타고 흘렀고, 노래에 몸을 실어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났다. 눈을 떴다가 눈물을 닦고 다시 감았다. 다시 눈을 뜨고 도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공연 보는 내내 울었어. 그리고 중간에 피아노가 너무 빨리 들어갔어. 그것만 고치면 되겠더라.
이 말을 못 했네. 파이팅!’
끝.
https://youtu.be/Gmrh42foU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