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감독의 일기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햇살이 가득해 기분이 좋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석양이 바다 끝에 가득 찼을 때였다. 젊은 감독은 길을 걷다가 허름한 어느 국밥집에 들렀다. 부산은 역시 돼지국밥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네.


국밥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네.


여기는 원래 이렇게 사람이 별로 없나요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네.


감독이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우자말자 주인이 식사마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질문을 했다.


영화감독이시죠?


네.


원래 여기 근처에 사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이런저런 일로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왔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혼자 좀 걸으려고 여기 왔습니다.


그렇군요.

영화를 준비하시나요?


네.


어떤 영화인가요?


어떤 연인들이 서로 같은 꿈을 꾸다가 어느 날 그것이 같은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닭게 되면서 헤어지는 내용입니다.


아. 네.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나요?


네.

아무래도 연인이니깐…


그렇군요.

근데 그 꿈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둘은 모두 화가였습니다. 열심히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남자는 만화처럼 재밌는 그림이었고, 여자는 몽환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작품의 성향은 서로 달랐지만, 각자 본인의 작품 세계가 확실했고, 그 열정 또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둘은 우연히 만났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부정하고픈 찌질함도 함께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서로 그 찌질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거침없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은 사랑하게 됩니다. 아니, 서로가 부담 없어진 상태, 상대를 응원하고 보듬어 주는 것이 곧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과 같은 감정 상태를 사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성공하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기업 마케터의 눈에 그의 그림이 띄게 되고 굿즈로 만들어지자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게 됩니다.


남자는 처음에 그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 세계에서 조금 빗겨나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조금 방황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듬어줍니다. 세상에는 어떤 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며 이 또한 어떤 운명의 이끌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모습을 부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당신의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는 꿈꾸는 것을 멈추고 충혈된 눈으로 하루라도 더 깨어있으려 합니다. 바쁜 스케줄에 점점 여자와는 거리를 두게 되고, 그 빈틈 사이로 다른 여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남자는 이제는 자신의 고독과 찌질함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외로운 가슴에 불을 지펴 열정을 활활 태워줄 사람을 사랑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여자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비추며 페이드 인 되고, 다시 그 그림이 페이드 아웃되면서 어느 경매장에서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으로 남으며 끝이 납니다.


음…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국밥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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