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표정을 되찾았다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몸이 무거웠다. 축 처진 어깨는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켰다. 쓸데없는 가십들을 읽고 화려하게 포장된 타인의 일상을 훔쳤다. 나는 거짓과 진실 그 어디 사이에 끼여 움츨어들었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손목에 찬 시곗바늘처럼 돌고 돌았다. 끝이 없는 회전 속에 공기는 점점 탁해져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나는 순례길을 걷는 수도사처럼 삶에 미련을 버리고 싶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하철이 안 오는 걸까. 그때였다.


“잠시 안내 방송드리겠습니다. 충돌사고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하여 지하철이 지연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죽었구나.


‘쯧’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죽었는데, 쯧이라니. 나는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사는 걸까. 수많은 질문이 드나들었지만,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3년 동안 발길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다녔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이 표정을 되찾았다.


그 여행기를 나는 책으로 엮어 출판사로 보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답변이 오지 않았지만, 운이 좋게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어린 여성 편집자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만났다. 그녀의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나의 책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너무 감격했습니다. 꼭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책은 시중에 나오게 되었다. 출판 후 영업직원과의 미팅에서 그가 100군 데가 넘는 서점을 직접 방문해 프로모션을 부탁하고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젊은 편집자도 그와 함께 뛰었다고 한다. 책이 세상에 나온 지 1년. 이제 베스터셀러가 되었다. 곧 드라마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지친 삶을 치유하고자 여행을 떠났고, 그 경험들을 책으로 엮었다. 다시 그 글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어느 하나로 충족되지 않는다. 나의 자유와 성공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 보답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수많은 창작자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작품은 상품으로써 가치를 입증받기 위해서만 선택되고 포장된다. 장사치니, 진정성이 없니 하는 것은 오래된 푸념으로만 떠돌 뿐이다. 세상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상은 어느 지점을 향해 밸런스를 맞춰 나가는 것일까. 다행히도 나는 이제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중판출래)’에서 민들레 철도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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