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입니다
“이 녀석아 뭐라도 좀 해” 화가 난 엄마는 소파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챘다. 아들은 심드렁하게 익숙한 일이라는 듯 “알겠어”라는 대답을 하고는 천천히 일어서서 방으로 갔다. 엄마는 그런 아들을 향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측은한 눈길만 줄 뿐이었다. “마트에 갈 건데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묻자 아들은 “맥주”라며 짧게 답했다.
서울 갔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언제나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에 속도 많이 썩였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엄마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대학을 나오는 것이 정상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중학교를 겨우 나왔지만, 자식은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의 보험금으로 마련한 횟집으로 다행히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 푼 두 푼 모아 사둔 논과 밭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올랐다. 부동산 김 씨는 연례행사처럼 집에 와서는 “이제 좀 파이소, 그거 놔두면 뭐하려고”라면 핀잔인지 설득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그 아직도 밭매고 논 매는데 뭐한다고 팝니꺼”라고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졸업 후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엄마는 눈물이 흘러 젖은 전화기에 볼이 붙은 채 기뻐했다. “아이고 마, 내는 이제 소원이 없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들이 갑자기 집에 내려오겠다고 한 것이다. 입사한 지 5년이 좀 더 지난해,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이었다.
언젠가 아들이 전화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덩치 큰 녀석이 무슨 울상이냐고 엄마는 따졌다. 아들은 엄마는 말해도 잘 모른다며 그런 게 있다고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무서워,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지옥이야. 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그 기분 엄마는 알아?” 엄마는 당연히 몰랐다. 먹고사는 것에만 매달려 이제껏 살아온 자의 삶이란 밀려나면 낭떠러지라는 절박함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태풍이 오면 앞마당까지 치고 들어오던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들의 말에 “일단 집에 와서 밥이나 좀 챙기 무그라”며 전화를 끊었다. 근데 아들은 그 길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완전히 내려앉은 것이었다.
엄마는 속상했다. 처음에는 ‘이노무 자식을 그냥 콱 마’라는 생각이 가득 차서 혼쭐을 내고 싶었는데, 핼쑥해진 아들의 얼굴을 보면 안타까워 별말 없이 물러났다.
그날 저녁.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횟집 내가 식당 해도 되겠나?” 엄마는 갑자기 아들을 보며 “뭔 소리고?”라고 물었다.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한 번 믿어줄 수 있겠나? 엄마는 이제 나이도 많고 식당 운영하기도 힘들잖아. 그리고 예전만큼 손님도 없고…” 엄마는 장사는 안 된다고 강하게 뿌리쳤지만 아들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니가 회사원이 되어서 편안하게 일하는 게 소원이다. 니 옆에서 많이 봤잖아. 힘들게 무신 장사고. 때리치아라”라며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들은 엄마에게 공짜로 하겠다는 거 아니다고 꼭 돈을 갚겠다며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엄마의 화와 아들의 설득은 밤새 이어졌다.
1년 뒤
결국 아들은 식당을 완성했다. 아들은 목수로 일하는 고향 친구 한 명 그리고 그의 부사수까지 불러 하루 종일 식당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다. 횟집 철거는 업체를 불렀더니 쉽게 진행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한 줌의 먼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엄마는 허무했지만, 끝나야만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 아빠가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횟집을 차릴 때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 무엇이라도 잘하면 좋겠다며 엄마는 옆에서 잡일을 하며 도왔다. 아들은 위험하다고 못하게 말렸지만, 엄마는 나도 지분이 있다며 매일 아침마다 억지로 공사판을 아들과 함께 나섰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아들은 매번 웃었다. 웃는 얼굴에 살은 더 붙었고, 밤늦게 거하게 한잔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엄마, 고맙다. 나는 금수저다”라며 말해주는 날들이 좋았다.
엄마는 이 외진 곳에 뭐하러 사람들이 올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식당 문을 연지 3개월이 되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 식당 주변에 하나둘 빠져나간 빈집 자리에는 어느새 카페들이 들어섰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바다와 모래 그리고 등대는 그대로였지만 SNS라는 세상속에는 전혀 다른 동네가 되었다.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들이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없이 기뻤다.
식당을 마감하던 어느 날,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왜 회사 그만뒀는지 아나?” “모르지” 엄마가 답했다. “내 위에 부장이 어느 날 내보고 자기 계좌에 회사 돈을 보내라는 거라. 그래서 안 된다고 했지. 이상하다고. 그러더니 부장이 내보고 막 뭐라 하는 거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개기냐고” 엄마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얼마나?” 아들은 답했다. “20억” 엄마는 화들짝 놀랬다. 이어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후에 부장이 건건이 나를 엄청 몰아세웠어. 나는 회사에 신고하고 싶었는데, 안 했어. 아니 못했어. 이상하게 그때 갑자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비겁하게 도망치기로 했어.”
엄마는 듣기만 했다. 그리고 아들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그때, 우리 집 앞바다가 생각났어. 서울에 가니깐 맨날 보던 그 바다가 너무 그리운 거야. 내가 바다 앞에서 살았다고 하면 다들 엄청 놀래. 부럽다고.” “부럽다고? 다들 그리 좋은데 살면서 무엇이 부럽데” 엄마가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좀 무서운가 봐.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에 쫓기고 그래서 무서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우리 집처럼 문 열고 나가면 바다가 있고, 파도가 치고, 방파제에 바다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쉼터 같은 게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막연하게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이제 아들 곁에 섰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보면서 닦던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소중한 것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익숙한 것에 소중한 것을 알아가는 나이가 된 것 같아. 예전에는 잘 몰랐어. 새롭고 재밌는 일, 남들이 보면 좋다고 해줄 만한 일이 최고인 줄 알았어. 근데 연어처럼 다시 내 삶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소중한 것을 온몸으로 내어 놓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나는 다시 왔어.”
아들은 다시 일어서서 그만 가자고 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말했다. “엄마, 요즘에 SNS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그리고 엄마가 만든 육회 비빔 칼국수도 그렇고. 무엇보다 우리 집 앞에 이렇게 펼쳐진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갈매기가 너무 좋아. 나는 파도가 부서질 때 나는 소리보다 진하게 흩어지는 냄새가 좋아.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냄새가 느껴져. 엄마도 그래?” 엄마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