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입니다
기태는 피부가 까맣고 반 아이들 중에 키가 제일 컸다. 덩치도 또래보다 훨씬 컸던 녀석은 어쩐지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겁을 먹은 표정을 한 채 조심스러웠다.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인 승준은 그런 기태를 항상 곰이라고 부르며 약 올렸다. 이제 고작 12살인 아이들의 놀이는 대부분 축구였다. 기태는 덩치만 컸지 달리기도 느리고 공도 잘 차지 못했다. 항상 스트라이커를 맡아 온 승준은 반대항 시합을 할 때마다 “곰아 이리 와 봐”하며 기태를 불러서는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기 십상이었다. 기태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는 소리와 함께 연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기태는 수업시간에 항상 숙제를 안 해와서 혼이 났다. 어지간하면 할 만도 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단한 숙제도 늘 빼먹었다. 간단한 산수 그리고 읽기와 쓰기도 서툴러 항상 선생님의 핀잔과 아이들의 조롱을 받았다. 기태는 선생님의 회초리를 미동도 없이 견디며 돌아서서 씩 웃는 것으로 학교 생활을 버텼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태를 좋아했다. 학년에 두 반 밖에 없던 시골 학교에 동네가 좁아서 모두가 형제처럼 지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태는 학교를 마치면 바빠서 같이 놀지 못한다며 항상 집으로 먼저 돌아갔기 때문에 가깝지만 먼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태가 학교를 결석했다. 반 친구들은 선생님께 그 이유를 물었지만, 선생님은 집전화도 없어서 연락하기 힘들다며 도리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기태 집에 가본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태는 지난번에도 이렇게 무단으로 결석한 경력이 있어,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면서 “하루만 기다려보자”하며 종례를 마쳤다.
이튿날에도 기태는 보이지 않았다. 승준은 선생님께 자신이 기태 집에 가보겠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친구끼리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며 쯧쯧 혀를 차며 작은 메모지에 주소를 옮겨 적어주셨다. 승준은 친구 둘을 데리고 기태 집으로 향했다.
주소지를 향해 기태 집을 찾아 나선 승준은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태 집으로 이어진 길은 점점 마을로부터 멀어졌고, 다니기에도 불편한 비포장 숲 길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집을 찾은 승준 일행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집 주변에 나무 그늘이 짙게 깔려 있고, 바람이 쇄엑 작은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턱에 으스스함을 느꼈다.
“기태야!”
승준이가 소리쳤다. 그렇게 몇 번을 기태를 불렀지만, 집 대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노크도 해보고 집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기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누가 살까 싶었지만, 삶의 흔적이 있기에 기태 집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승준과 아이들은 별다른 소득 없이 그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기태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놀라며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지만, 선생님은 아직 잘 모르겠다며 어제 기태 아버지를 만나서 결정한 내용이라고 전했다.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전달된 기태의 전학 소식은 매미 소리처럼 친구들 주변을 맴돌았다. 이후 아이들은 6학년이 되었고, 기태의 존재는 점점 잊혀졌다.
6학년 봄 소풍날, 승준은 보물 찾기에서 제일 큰 상품을 건졌다. 아이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지고 각자 사온 김밥을 나눠 먹은 후 소풍은 전날의 감동이 무색하게 빨리 파했다. 승준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좁은 시멘트 길 위에 뱀이 한 마리 튀어나왔다. 승준은 놀라 펄쩍 뛰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뱀이 기어 나온 숲 쪽에서 나무가 흔들리더니 두 사람이 슬금 걸어 나왔다.
기태였다. 그리고 옆에는 기태보다 더 까만 피부를 가진 어른이 한 명 서 있었다. 승준은 오랜만에 본 기태보다 그 옆의 아저씨 어깨너머 걸쳐 있는 자루에 눈길이 먼저 갔다. 그리고 아저씨는 물고 있는 담배를 땅바닥에 뱉으며 기태에게 눈짓을 보냈다. 기태는 승준을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집게로 뱀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아저씨가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의 입구를 열자 말자 뱀을 그 속으로 집어넣었다.
승준은 그 모든 과정을 마치 발이 시멘트에 달라붙은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태와 아저씨가 승준 앞으로 지나가려고 할 때, 기태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승준아, 안녕.”이라고 작게 말했다. 아저씨는 “왜, 너 아는 아이가?”라며 기태에게 물었고, 기태는 “네, 친구예요.”라고 답했다. 이에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상태로 그저 승준을 짧게 쳐다볼 뿐이었다. 기태 또한 아저씨와 함께 승준을 스쳐 지나갔고, 곧 휘어진 길 안 쪽으로 사라졌다.
승준은 이것이 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정신을 차리고 기태가 사라진 길로 내달렸지만, 그 둘을 볼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승준은 보물찾기 상품을 풀었고, 그 안에는 값비싼 문구 세트가 작은 메모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메모지에는 ‘축하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착하고 훌륭한 어린이가 되세요!’라는 문구가 어른의 글씨로 훌륭하게 적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