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기 5
지상이가 다행히 열이 떨어졌다. 숙소 somos에서 챙겨주는 조식을 먹고 근처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어젯밤 아이스커피를 부탁하러 식탁이 마련된 리셉션 장소로 갔더니 숙소 사장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인사를 했다. 그는 이어서 어디 출신이고 얼마나 여기 머물 예정이냐는 등의 으레 여행객에게 던지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자신은 해양 레저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안내 팸플릿을 보여주며 아직 영문으로 번역하지는 않았고 곧 일본인 외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이가 넷이라는 그는 좋은 해변을 소개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나가하마 비치를 소개해줬고 바위로 만들어진 천연 바위굴이 있어 아이와 가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작은 만을 품은 해변은 잔잔한 파도와 태양이 빚어 내는 장관이었다. 한적한 해변에 중국인, 일본인 등이 한데 모여 수영을 하거나 어떤 연인은 작은 파라솔 안에 비스듬히 앉아 바다를 보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해수욕을 하고자 했지만 돗자리나 샤워시설들이 없어 포기하고 근처 괜찮은 해변이 있다는 코우리섬으로 가보기로 했다.
섬으로 가는 길에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이어진 핑크빛 다리는 건너는 이들에게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루 300엔이라는 주차장에 들어가 내가 먼저 사전 답사를 하기로 했고, 돌아가는 길에 블루실 아이스크림을 사 가기로 했지만, 주차장에서 파는 엉뚱한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바람에 수유에게 구박을 당했다.
섬에 들어와서 그런지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았고 구글맵 사용이 어려워지자 우리는 그냥 보이는 대로 섬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얼마를 가니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여 들어갔는데 일본 특유의 작은 박스차가 두대 들어가기에도 벅찬 좁은 길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와 달리 일부러 찾아온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어딘가를 향했다. 우리도 자리가 많이 있는 어느 주차장에 내려 그들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사유지 전용주차장이며,
주차하지 않고 이 길을 지나다니다 걸리면
우리 돈 1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이를 고지한 무시무시한 일본어 경고판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패스트 패스’ 티켓을 발부받은 것 마냥 수월하게 바다로 갈 수 있었다. 꼬불한 길을 걸어 숲길 사이에 내어 논 길 위에서 도마뱀을 보고 흠칫 놀란 후 도착한 바다는
”와”
숲 뒤에 숨은 에메랄드 빛 바다는 모든 이의 감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돌아보니 바다 중간에 있던 하트 모양의 돌은 관광 안내서에서 진부하게 홍보를 하는 명물이었다.
더운 여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보다 땀을 흘리며 그저 눈으로 경치를 잡아 두거나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우리 또한 해수욕을 포기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섬을 벗어나니 작동된 구글맵에 잡힌 두부정식집 키토식당은 모녀가 90년 된 집을 한적한 시골마을에 일부로 옮겨서 운영하는 곳이다. 건강식이고 조용하고 운치 있는 곳이었다. 밥을 먹는 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고, 지상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녀 계산대앞에 진열된, 엄마와 딸 중 누군가 직접 만든 듯한 장신구를 사서 짜증을 달랬다.
수유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시끄럽게 굴어 죄송하다고 연신
‘쏘리 쏘리’
하면서 곧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네 번째 숙소는 오키나와 남부 나하 시내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공항에서 가까워 오전 비행기 시간 때문에 시내를 둘러보기 좋게 잡은 숙소였는데, 지상이가 아파서 버린 시간을 매우기 위해서 하루 연장했다. 호텔 주차장은 허용높이 한계가 있어 우리 차는 야외 코인 주차장에 넣어야 했다. 평일 하루 800엔, 주말은 1800엔이었는데, 그렇다고 호텔 숙박비를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은 없었다.
이런 정보 등을 들으며 영어로 체크인을 하는데, 갑자기 호텔 직원이
“한국분이세요?”
라고 묻는다. 어설픈 영어 실력을 들킨 것에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방은 아주 작았다. 그동안 중부와 북부에서 넓고 이쁘게 꾸며진 방에서 호사롭게 머물렀 던 탓인지 그 불편함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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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도심 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북부 시골의 삶과 남부 도시의 삶 중 무엇이 더 질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전날 숙소 somos 사장에게 숙소를 두고 허니문으로 갔었던 쿠바 느낌이 난다고 했더니 아내가 쿠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뮤지션이었는데, 쿠바에 음악공부를 하러 갔다가 역시나 음악을 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음악을 그만두고 숙소 운영과 육아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가
“음악은 돈을 많이 못 벌어서요”
“music is not much money”
그들은 방 두 개 딸린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조금 더 풍족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돈 벌 기회가 많은, 유명해질 기회가 많은 큰 도시로 가는 것은 어떠했을까.
갇힌 물은 썪게 마련이고 인간 또한 닫힌 시스템 안에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다. 물이 흘러 흘러 바다로 간다면 사람은 걸어 걸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가.
오늘도 그들은 인터넷으로 방을 예약받고, 손님이 남긴 자취를 지우고, 나름대로 연구한 조식을 준비하며 자라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닿은 곳이 바다였으면 좋겠다. 어디든 그것을 두고 여기가 바다라고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즐겁게 살았으면, 우리도 그 바다 안에서 다시 한번 첨벙 헤엄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비 오는 그곳의 마지막 저녁,
지상이가 열로 시름시름 앓으며 잘 때,
비싼 스테이크를 작은 탁자에 풀어
배고픔에 우걱우걱 먹고 있을 때,
달팽이 한 마리가 창문에 붙어 천천히 기어갔고
수유는 내가 튼 이적의 달팽이 노래에
웃으며 명곡이네 했으며
나는 여기서 바다는
너에겐 멀지만 언젠가 가겠지
우스운 생각을 혼자 하며 사진을 찍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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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마련된 루프탑 수영장에 갔더니 여기도 중국인, 일본이, 서양인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더불어 함께 수영을 했고, 밤은 금방 찾아왔다. 지상이를 재우고 고민 끝에 도시락 전문점에서 포장해 온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호텔 바로 옆 3분 거리에 있던 도시락 전문점은 다양한 메뉴와 즉석으로 조리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듯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계산과 주문과 중간점검을 동시에 하는 작은 안경 아래 마스크를 쓴 청년의 움직임은 로봇 같았다. 주문한 도시락이 준비되는 몇십 분 동안을 지켜봤는데, 나는 절대 불가한 작업이었다. 또한, 그의 늦은 귀가는 탈진과 함께 할 것이고, 대충 씻고 누운 침대 위 천장에는 허무와 공허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노고 덕분에 도시락은 맛있었고, 만족스러운 저녁을 보냈다.
여행자의 눈에는 일본의 작은 섬 도시에서 이처럼 무한 반복되는 일상 속에 하나의 부속처럼 보이는 장면이 많이 잡혀 조금은 서글펐다. 지나가는 학생과 직장인, 곳곳에 시스템화 된 편의점과 식당 들. 큰 마트에 혼자 등을 보이며 식사하는 여인 등.
그리고 나는 어떠한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잠이 몰아쳐 왔고 나는 글을 쓰지 못한 채 잠들어 다음날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이야기를 노트에 적었다.
2019. 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