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나하 시내에서 S에게

오키나와 여행기 6

by 랩기표 labkypy

S에게


글쎄, 여긴 오키나와라는 어느 휴양지에 특화된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일본의 어느 도시 같아. 굳이 따지면 거제도 같아.


예전부터 일본에 올 때마가 느끼는 외로운 섬나라, 그중 일부인 것 같아.


골목에 드리워진 그림자며,

필요 이상의 편의점의 훌륭한 도시락이며,

또한 이곳 사람들은 항상 친절하고 웃음을 띄고 한 옥타브 높은 말투를 가졌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더 외로워 보인다고 할까. 오키나와에 유명한 마트 maxvalu안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는 얼굴 모를 그 일본인 등처럼 어딘가 모르게 위로해주고 샆은 모습이 있는 것 같아.


여긴 차도 많고,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아. 도시 바깥은 높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걷고 있는 것 같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오늘의 할 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걸음걸이마다 툭툭 떨어뜨리고 있어.


여행자의 여유와

생활인의 피로가 얼마나 어색한 조합인지


자세히 얼굴을 보면 지쳐있거나, 조금은 찌푸린 것 같은데, 돌아가면 나도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어쨌든 어제 이 도시에서 우리는 이전 날과 다르게 푹 잤던 것 같아. 지상이 몸이 좋아졌다는 증거겠지. 그 전날들 보다 일찍 잠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이는 평소보다 늦은 잠을, 코를 골면서 깨우기 전까지 달게 즐기고 있었지.


이곳 호텔은 일본의 어느 곳처럼 작고 아담하게 씻고, 자고 하는 데까지만 무리가 없도록 되어 있어. 루프탑에는 수영장이 있고, 조그마한 온수탕도 있지. 지상이와 수유랑 함께 오랫동안 놀아도 지겹지 않은 곳이야. 물을 막은 투명판 너머로 보이는 10층 아래 도로와 도시는 꽤 볼 만한 것 같아.


밤이 되면 빌딩 조명이 밝혀지고

그 빛으로 무드를 잡고

수영을 하고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


밤이 되어도 바람은 차갑지 않고, 물도 들어가 있을 만 해. 7월이 되면 한 여름밤 날씨에 더 즐겁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 조식은 생각보다 좋았어. 빵이 주로 나오고,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각종 과일와 디저트들이 많은데, 생각보다 알차고 맛있게 먹었던 것 같아. 배가 불러 먹고 싶은 음식을 참은 것도 아주 많아. 네가 여기에 온다면 이 호텔 조식을 먹는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아침을 먹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에 갔어.


가는 길에 카페가 모인 작은 동네가 있어 들렸다 갈려고 했지만, 주차할 곳이 없었어. 더불어 지상이 울음도 터져서 주변을 한 두 바퀴 돌고 나서


적군과의 최초 육상전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전후 도시 재생의 시작이 된,

미군 부대가 근처라서 그런지

아메리카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아메리칸 빌리지로 갔어. 그곳엔 이온마트라고 한국의 이마트 같은 곳이 있는데, 당장에 입을 옷이 필요하기도 해서 쇼핑도 하고 수유 지인이 그곳에 아이가 놀기 좋은 놀이시설도 있다고 알려줘서 가기 보기로 했어. 주차가 무료라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기도 하더군.


아이를 위한 놀이 공간은 아주 좋았어. 네모난 비닐막 네 모퉁이 위에 구형 선풍기를 설치해두고, 안에는 풍선이 그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을 지상이는 좋아라 뛰면서 풍선을 손으로 잡거나 발로 차곤 했어.


꽤 높은 공기가 찬 미끄럼틀도 있었고,


자동차 장난감도 있었는데, 지상이는 손에 쥐고는 놓질 않더군. 기차 레일 장난감도 있었는데, 레일을 400미터 운동장 육상 코스처럼 이어 붙여 두고 터널을 설치하고 기차를 출발시키는 것은 내가 더 재밌어 했지.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수유가 필요한 물건을 사 왔고 이온몰을 빠져나와 근처 유명한 ‘구르메 스시’집에 가기로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나왔어.


바깥 온도는 35도.

대기번호는 10번.


보채는 지상이를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더군. 수유가 금방 검색하더니 근처 타코 밥집으로 가자고 해서 갔었는데, 아주 훌륭했어. 후식으로 나가는 길에 있던 오키나와 명물인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했는데, 거의 문밖까지 줄이 서있었어.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오늘 놓치면 먹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어 수유와 지상이는 차에서 기다라고 내가 사 오기로 했지.


사실 내가 입을 옷을 거기서 사면서 아이스크림까지 사 오기로 한 거였어. 맛은 있더군.

그래도 배스킨라빈스와 비슷하다고 수유한테 말은 못 했어.


계획은 그곳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는 거였지만, 지상이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가 있었지.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 지났고, 밖은 너무 더워 마땅히 자리를 잡고 있을 곳이 없었지.


“숙소로 돌아가서 수영을 하자.

그리고 저녁은 다시 돌아와서 먹자.”


하고 왔지만, 가는 길에 잠든 지상이는 7시가 되어서야 깨는 바람에 우리는 결국 근처 마켓에서 사 온 초밥을 먹고, 수영을 했어.


수유는 마지막 날이라고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지. 코인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빼서 근처 마트에서 선물을 사려고 했지만, 밤이 되면 주차가 힘들 것을 우려해서 택시를 타기로 했어. 근데 웃긴 게 분명히 구글맵에서 심지어 일본어까지 적힌 장소를 기사에게 보여주었는데도 마감하기 5분 전인 엉뚱한 백화점에 데려다 준거야. 운전은 또 얼마나 거칠게 했는지 수유는


"와 밤에는 운전하면 안 되겠다."

"차 끌고 왔으면 큰 일 날 뻔했다"


라고 말할 정도였지.


어이가 없었지만 여행은 이런 돌발 상황이 있어야지 하며 웃어넘겼고,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지상이 눈이 풀렸지. 수유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 하여 다시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했고, 다행히 3분 거리에 있는 가게를 찾았어. 급하게 두 개를 사 나눠먹고 끼니를 책임졌던 maxvalu에서 선물과 먹거리 몇 개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어.


지상이는 곧 잠이 들었고, 수유는 짐을 정리하고 있어. 나는 커피와 차가 준비된 호텔 일층 로비로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내려와서 너에게 편지를 쓰는 중이야.


끊은 담배를 다시 피웠다는

너의 운수 좋은 날에 우린 이렇게 보냈어.


근데 뭔가 미안한 거야. 이 하나의 카톡방에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담겨 있고

또 그 이야기는 이렇게 작은 창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서 서로의 성질을 돋우며 위로와 격려가 오가고


뭐 그런 것들이 세상에 수천수만 가지가 있을 텐데

...참 세상 복잡다 하다가

또 너의 뒤집어 쓴 불쾌함이 오늘 나의 즐거움 때문에 더 가깝게 다가오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 미안했어.


아, 지금 수유가 카톡으로 올라올 때, 커핀 한 잔을 부탁하네.


그럼, 난 이제 잠을 자야겠다. 너에게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있다는 생각에 그냥 한 번 편지를 써본다. 언제 네 딸과 제수씨랑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야. 혹시나 가게 되면, 물론 너의 처제께서도 오신 적이 있지만, 커피나 밥이나 술이나 먹으면서 여행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9. 6. 28.


굿나잇.

사진=호텔 아쿠아 시타 10층에는 야외 풀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