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병원을 가게 되었다.

오키나와 여행기 4

by 랩기표 labkypy

온종일 비가 왔고,

지상이는 아파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숙소에서 마련해 준 조식을 먹고

호스트로부터 추천받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갔다.


낡은 시설에 어르신들이 주로 진료를 보러 오는

한적한 시골 보건소 느낌의 병원이었다.


두 명이서 일을 다 보는 프런트에서 번역기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쉽게 접수를 했다. 간호사께서 알려준 방에서 기다렸더니, 곧 지우개가 달린 연필과 한일어가 동시에 적혀 있는 종이를 들고 와 상담을 하며 대화의 내용을 썼다 지웠다 성심껏 상담을 해주었다.


이후 다시 몇십 분을 기다렸더니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의사께서 들어와 한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진료를 하고는 독감이 유행이라며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독감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써 준 처방전을 들고 병원 바로 옆에 있는 약국에서 기침약과 좌식 해열제를 받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보험이 되지 않아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다행히 사전에 들었던 여행자 보험 혜택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 지상이는 억지로 울면서 약을 먹고 물만 마시며 잠만 잤다. 수유는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고, 나는 길게 서 있는 창을 열고 빗소리에 맥주를 마셨다. 약간의 취가 돌고, 지상이 옆에서 누워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 앉자 말자 약속이나 한 듯 지상이도 갑자기 일어나 엄마를 찾았다. 엄마 품에 안긴 지상이는 안정을 찾고 낫지 않은 목 너머 기침을 여러 번 뱉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고는 가져온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고, 조르바의 악기인 산투르와 광산 사장, 두목의 진리 지침서인 책이 대조되는 장면에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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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이가 다시 활기를 찾는 것 같아서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서 외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가까운 해변에 잠시 들렀다가 스시집으로 가는 다소 거창한 계획이었는데, 비가 그칠 듯 말듯하여 좋은 기회로 여기고 용기를 내어 보았던 것이다. 해변에 도착하니 비는 완전히 그친 것 같았고, 주차장 입구에 마련된 조그마한 탈의시설을 관리하시는 분들인 듯, 성인 남녀 3분이 비가 개인 바다를 보며 대화를 나누다가 생각지 못한 손님을 눈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곤니찌와


급히 인사를 나누고 늦은 오후 웬 손님인가 놓칠새라 그 셋 중 가장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가 얼른 손가락을 펴며 유료 주차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잠시 머물 예정이지만 500엔 이라니. 돈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값을 치르고, 바다로 내려가니


상상했던 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그 모습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넘치는 매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물은 차갑지 않았고,

산호가 조각으로 떠밀려 곳곳에 조개껍질처럼 모래에 붙어 있었다. 모래 또한 그 알맹이가 산호로 되어 크기가 커서 그런지 발이 푹푹 빠졌고, 발을 내린 지상이는 제자리에 서서 아빠만 애타게 찾았다. 안고 물에 들어가 지상이 발을 물 안으로 조금 집어넣었더니 아주 좋아했다. 덕분에 바닷물이 튀어 바지가 젖어서 숙소로 다시 돌아가 옷을 갈아 입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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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 입고 스시집으로 갔다. 목적지는 숙소에서 10여분 떨어진 작은 다리를 건너면 닿을 수 있는 항구 주변 마을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인터넷 지도에는 분명히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정작 문은 closed라는 팻말과 함께 잠겨 있었다. 차에 앉아 대책을 논의하는 중에도 우리처럼 헛걸음하는 관광객과 동네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결국, 오는 길에 보았던 이 또한 이곳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라는 88 스테이크 집으로 가기로 했다. 몸상태가 아직 정상이 아닌 지상이와 가게 안에서 먹기는 힘들 것 같아서 테이크 아웃을 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오키나와 북부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여기서 머문 3일동안 지상이가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지상이를 재우고 저녁을 먹는 우리 또한 먹는 게 먹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의 반이 지났지만 수유가 애써 준비한 계획은 절반도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하루 종일 가족이 다 함께 즐기고, 슬퍼하고,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여행은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누구와 함께하는가가 중요하다.


인생 또한 지금 내 뒤에서 자고 있는 분들과 함께 한다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


2019. 6. 26.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