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나타났다

by 랩기표 labkypy

어느 날, 수레에 짐을 한가득 싣고 떠나는 행렬이 나타났다. 이장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맨 앞에서 걸어가는 노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노인은 괴물이 나타났다며 어서 도망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장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사뭇 진지한 피난민들의 얼굴을 보자 곧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장은 그러지 말고 잠시 여기서 쉬며 이야기를 좀 하자며 집안으로 불러들여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


- 키가 작은 산 만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 그래, 그게 어디서 나타났답니까.


- 우리 마을에 살다가 시집간 숙자라고 있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집에 와서는 지 어미에게 자기 마을에 괴물이 나타나 모두 다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어미를 두고 못 가겠다며 같이 도망가자며 설득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 그래서요?


- 숙자 어미는 그럼 큰일 났구나 하면서 저한테 알렸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전달했습니다. 몇몇이 서로 짝을 지어 각자 방향으로 이렇게 피난을 떠나게 된 것이지요.


- 본 적은 없구요?


- 네, 본 적은 없습니다만, 숙자가 똑똑히 자기 눈으로 봤다며 새파랗게 질려 있는데… 저기 저 아이가 숙자입니다.


노인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지쳐서 눈을 감고 있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그날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장은 마을 초입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했다. 사람들이 논의를 하는 중에 노인과 일행은 고맙다며 지체할 수 없어 먼저 떠난다며 인사를 했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 아닙니까.


- 그래도 저 사람들을 보시오, 저게 거짓 같습니까.


- 그래도…


- 그냥 있다가 죽으면 누가 책임집니까. 일단 살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다.


- 맞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죠.


- 그래도 만약 다른 곳에 가더라도 괴물이 거기까지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 힘을 모아 괴물을 물리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 정부에 알려서 없애달라고 해보시지요.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지만, 결국 마을을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이장은 미래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자신을 믿으면 지금 보다 더 비옥한 곳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이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어디서 산다 말인가 울분을 토해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이장은 모두를 이끌고 걸어서 3일 정도 떨어진 곳에 마땅한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 터를 다시 잡자고 했다.


사람들은 떠났으나, 강철이는 남았다. 이장이 같이 가자고 설득했으나 그는 자신은 여기서 할 일이 있다며 남겠다고 했다. 무슨 일인데 목숨을 내놓고 하냐는 이장의 질문에 강철은 곧 뿌린 씨를 거둘 시기인데, 곡식을 버릴 수 없지 않느냐 되물었다.


- 답답한 양반아, 목숨 잃고 그게 무슨 소용이냐. 어사 가자꾸나.


- 살아서 배 곪고 버티면 뭐합니까.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인데…


- 이놈아 그래도 살아 있으면 다 방법을 찾게 된다.


강철은 그래도 자신은 안 가겠다며 버텼다. 이장은 할 수 없이 그를 두고 떠났다. 강철은 속으로 보지도 않은 괴물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여전히 의심했다.



*


몇 달 후 강철이 곡식을 거둘 때, 갑자기 멀리서 땅이 울렸다. 강철은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정말 거대한 괴물이 서있었다.


- 당신이 괴물이요?


- 그렇다.


- 나를 잡아먹을 셈이요?


- 그렇지 않다. 나는 나무만 먹고 산다. 저기 버드나무가 맛있어 보여 그것만 먹고 가려한다.


- 알겠소이다. 집은 부서지지 않게 잘 피해 다니시오.


- 웃긴 놈이구나.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사람들은 보통 내가 나타나기만 해도 도망가기 바쁜데 말이다.


- 나를 죽일 작정이요?


-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 내가 당신한테 해를 끼친 바도 없고, 당신도 내게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왜 무서워해야 합니까.


괴물은 별말 없이 강철을 지나치고 버드나무를 뽑아 먹고 사라졌다. 강철은 혼자서 마을 사람들이 뿌린 씨가 자란 곡식을 모두 거둬 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돈으로 바꿔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가 어디로 간 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그가 남긴 편지를 보게 되었다.


‘괴물이 나타난 곳은 우리 마음 속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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