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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인생

[영화] 소설가의 영화

by 랩기표 labkypy


짧게 잘려진 화면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집중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우리가 조급하게 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툭툭 잘려나가는 말과 영상은 여유와 느긋함 보다는 바쁘니깐 쓸데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유튜브 시대에 홍상수 영화는 조금 다르다. 120여분 되는 영화는 10여분 이상 되는 롱테이크가 주를 이룬다. 홍상수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편집하는 데 하루면 된다. 그냥 이어붙이는 것이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배우들을 어떤 상황에 툭 던져 놓고 마치 서로 다른 색의 물감이 물에서 서서히 퍼지며 섞이는 모습을 찍어,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다. 대신에 그는 “일주일 동안 영화에서 떨어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너무 가까우면 잘 보이지 않는다.”와 같은 말을 남겼다.

소설가의 영화는 이전의 홍상수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지만, 막걸리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취기에 내뿜은 담배연기를 바라보는 것 같다. 등장하는 영화감독의 입을 빌려 자신의 영화관이 조금 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전까지 영화와 삶이 분리되었다면 이제는 하나인 것 같다. 삶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영화로 들어가 표현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삶이 어떤 방향을 따라가다보면 영화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담아내는 것 같다는 식이다. 삶이 예술이 되고 영화가 되는 것이다. 요즘 날의 그의 편안함이 뭍어 나온 이 영화처럼 말이다.

누구나 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장르인지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라는 단어가 가지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몽환적인 어떤 비현실적인 것을 꿈꾸는 것은 매 한가지일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붕 떠 있던 영혼을 땅으로 끌어내려 다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 삶으로부터 피어오른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현해보니 그것이 곧 예술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소설가의 영화는 픽션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날 것일 때 완성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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