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도하는 남자
*스포가 있습니다.
복종에 대한 믿음이 신실함 혹은 숭고함으로 변해 자신의 몸 주변을 감쌀 때, 그 안에 더 없이 처량하고 불안함이 내포되어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화려하게 포장하게 된다.
화려함이란, 번쩍이는 휘황찬란함이 아니라 가난하고 처량한 신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올바름을 지지하고 영원을 탐닉하는 행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취한다는 태도이다.
주인공 목사는 그런 자였기에, 대학에서는 감히 하나님을 두고 돈 장사하는 세습 교회를 비난했으며, 주류에 물들지 않고 가난한 동네 지하에 교회를 만들었다.
개척교회라고 불리는 그의 교회는 단 5명의 신도만이 있었고, 그마저도 곧 다들 떠나고 밀린 월세로 인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었다.
더불어 장모가 말기암으로 죽기 직전인데, 오천만원이라는 돈을 구하기가 힘들어 아무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며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문득 목사는 이 모든 게 하나님 탓으로 여기게 된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 영광을 위한 시련의 길이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울분의 해결 방법은 결국 돈이었다.
믿음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수단이 잘못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대학 후배인 세습 교회의 아들에게 그의 불륜을 증거로 협박해 돈을 갈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실패의 원인이 어설픈 악의 흉내내기였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몸에 돋은 악의 기운은 서서히 자연스럽게 목사의 영혼까지 지배하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복수혈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차피 구할 수 없는 돈, 장모가 죽으면 구걸하는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 같아서 청부 살인까지 계획한다. 그것도 자신의 신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도움을 주던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빌려서 말이다.
얼마의 돈으로 얼마의 악을 사서 장모를 죽이고자 한다. 새벽 기도에 나가는 장모를 몰래 죽이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끝내 목사는 그 일을 막기 위해서 살인 직전의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막아섰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모는 달려오던 차에 치이고 만다. 뺑소니다.
놀란 목사는 119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장모는 마지막 함을 내 말린다. ‘죽게 내버려둬…’라는 말을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장모는 새벽 어둠이 깔린 아스팔트 위에서 고요히 눈을 감는다.
이후 장모의 상이 치러지고, 그녀가 가족들 몰래 들어놨던 생명보험 회사에서 처우 문제를 목사와 나누게 된다.
역시, 하나님은 응답을 한 것이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 장모의 암도, 쓰러져가던 교회도, 우울했던 가정 환경도 모두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근사하게 변했다.
기도하는 남자는 기도 밖에 몰랐지만, 기도로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는 기도를 할 것이다. 어쩌면 기도만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그의 몸에 돋은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선은 오히려 악이 된다.
“장모님, 새벽기도는 계속 나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