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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키스로 완성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by 랩기표 labkypy

메타버스라는 말은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universe를 합해 만든 단어다. 쉽게 말해 가상세계 또는 가상현실이라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인 아바타를 만들어서 생활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제페토로 선두하고 있다. 돈 많은 사우디 여성들이 현실에서 풀지 못하는 미적 욕구를 가상현실에서 푼다고 한다. 네이버가 재빠르게 사우디와 손잡아 제페토를 상륙시켰다​.

페이스북은 사명까지 메타(mata)로 변경하며 앞으로 열릴 가상현실 무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비쥬얼 테크 기업들의 활동 영역이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을 넘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익숙해진 것은 화상회의다. 국내외 어디라도 필요하면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시스템에 접속해 현실문제를 나누고 답을 찾는 행위. 이처럼 가상현실이라는 것도 지금이야 어색한 신문물로 여겨지겠지만 곧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고 유용하니깐.

이쯤에서 요즘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배경은 2045년 미국.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린 듯한 허름한 아파트에 드론 배송이 자연스러워진 시대.

무엇보다 사람들은 모두 오아시스라는 가상세계에 접속해 생활했다. 그곳에서 돈도 벌고 놀이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등 메타버스는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빈민촌에 사는 주인공은 일어나서 간단하게 밥 먹고 폐차 틈 속에 만든 자신의 아지트에서 가상세계에 접속한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잘 나가는 플레이어였다.

극적 전재는 하나의 미션이 빈부, 노소를 떠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오아시스 창업자가 죽자, 그의 아바타가 나타나 자신이 낸 3개의 미션을 완수하는 자에게 오아시스의 모든 권리를 양도하겠다고 공포했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주인공은 친구와 함께 미션을 해결한다. 그에 대적하는 가장 큰 경쟁자는 거대 자본으로 똘똘 뭉친 IOI라는 회사다. 회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게임에 참가한다.

나약한 개인과 거대한 조직의 대립이 이어진다. 다윗과 골리앗.

흥미로운 영화 전개상 외인구단 같은 주인공 무리가 번번이 미션을 해결하고 열쇠를 차지한다.

마지막 열쇠까지 주인공이 차지하게 되고, 예상하는 바와 같이 거대 자본은 주인공을 회유하다가 강제로 열쇠를 뺏으려 한다.

강제로 뺏기 위해서 가상세계에서만 주인공을 좇는 게 아니라 진짜를 찾아내 없애려는 시도까지 한다.

쫓고 쫓기는 사건 가운데, 질문이 던져진다.

이 오아시스(국가와 권력)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하며, 소수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은 이러한 슬로건으로 오아시스 유저들에게 거대 자본과 함께 대적하자고 선동한다.

가상현실에서 신개념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승리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승리에만 집착하면 어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는지 알려준다.

승리한 주인공은 오아시스 개발자의 마지막 시험대를 통과한다.

바로 독재는 필히 부패할 수밖에 없으니, 권력은 많은 사람들과 나눠 가지고 협력하여 가상현실을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양도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현실세계에서 오아시스의 권리를 자신의 동료와 함께 나누고, 가상현실을 어지럽히는 해악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을 만들어 배포한다.(약간… 독재스럽고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2018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CG는 완벽을 넘어 너무 아름답다. 20세기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대중문화가 가상현실에서 오마쥬가 되어 극적 효과를 높인다. (이 장면이 이렇게! 우와! 감탄 연발)

메시지는 뚜렷했다. 가상현실에 매몰되지 말아라.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은 키스로 완성된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지 못하는 것에 현혹되면 삶은 피폐해진다. (다소 스필버그 감독님도 세월은 피할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어떤 문제와 가능성이 열릴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격변의 시대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왔다. 기존의 관습과 틀을 깨는 것은 분명하거니와 그에 따른 진통은 위대한 철학과 정치가 해결해왔다.

이전의 역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스마트폰이라는 도구와 훨씬 광범위하게 열린 광장 그리고 정치 참여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


꿈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 꿈인지 생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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