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인메이커
레인 메이커
돈 줄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과가 좋아서 회사를 먹여 살리는 직원을 말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새내기 변호사가 주인공입니다. 그의 동료가 그를 보고 레인메이커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새내기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수임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험회사에서 보험료 지급을 거부한 사건을 맡게 되고 피보험자이자 의뢰인의 아들은 보험료 지급 거부 때문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변호사는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주 현실적인 그의 동료는 거대 보험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송 배상금의 액수가 큰 만큼 승리할 경우 본인의 몫도 커질 것이기에 흡족해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라인을 동원해 ‘레인메어커’를 돕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보상과 이상 실현이라는 두 바퀴는 최고의 조합으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 로펌의 드림팀을 꺾고 승리합니다. 마치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몇십 배의 몸값 차이가 나는 독일을 상대로 이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피보험자의 아들은 죽었고, 보험회사는 파산해 승자가 없는 결말이 되고 맙니다.
“제대로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죽음을 기다리는 청년의 아련한 속삭임만이 남았습니다.
정의는 무엇일까요. 우리 삶은 무엇으로 돌아갈까요. 우리 민주주의는 법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법률이 기준이 되고 우리는 그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법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시대의 흐름은 빠르고 우리 삶의 양식은 그에 따라 변해가기에 둔간함 법에 의거한 판결이 때때로 상식에 어긋나 보이기도 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풀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도 법리 싸움으로 인해 복잡하게 꼬여 어려워지고 해결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증거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못해 난관에 부딪힙니다. 노련한 법률가들은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움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삶은 복잡계입니다. 하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설명이 불가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절대자를 찾습니다. 그곳에 어떠한 의문과 질문도 없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하다라는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우리 삶은 법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법은 헌법을 기초로 법률, 시행령, 규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 기준인 헌법은 무엇을 기초로 만들어졌을까요?
레인메이커에서 주인공은 새내기 법률가로서 아주 큰 성공을 이룹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성공이 보장된 것만 같은 법률가로서의 삶을 고민하게 됩니다. 자신은 이보다 더 큰 성공을 원할 것이고 처음 이 사건을 대하던 진심, 법을 정의 실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98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얼만큼 그 해답을 찾았을까요. 하찮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한정적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해진 선을 계속 넘으면 선은 없어지게 되고, 결국 구정물 속의 상어가 되어 버린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더욱 크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2sVneo80e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