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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ug 16. 2023

선택받은 자들이 선택한 지옥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무너진 아파트는 그동안 축적된 인간 세계의 수많은 폐단을 함께 집어 삼켰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파괴와 악행은 대륙이 갈라지자 그 안으로 모두 떠밀려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과거의 규칙이 허용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은 홀로 온전히 살아남은 아파트 1개동만 남겨둔다.  


높이 선 아파트 덕분에 지평선을 볼 수 없었던 도시에 콘크리트 폐허가 길게 이어졌다. 그 위로 해가 뜨고 해가 지기를 몇 번 반복하자 살아남은 아파트 주민들은 이제 이 역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인류애를 피력하며 다함께 살 방도를 찾자고 했고, 누군가는 과거에 천대받던 시절의 아픔과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감수했던 희생을 내밀며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로서 분명한 선을 긋고 우리만의 공동체를 일구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우리끼리 잘살아보자는 쪽을 택한다. 이후 그들은 외부인을 몰아내고 아파트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규칙을 정한다. 얼마간은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유지된다. 그러나 그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건설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이곳을 벗어나면  죽음 뿐이라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결국 황궁 아파트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소문이 들리는 폐쇄적인 광신도가 모인 집단이 된다. 그곳을 대표하는 영탁(이병헌 분)은 입주민이자 광신도인 그들의 열망이 똘똘뭉쳐 완성된 하나의 종교였다.  


그들은 죽기보다 살기를 원했고, 살기 위해 다른 이의 죽음을 방관했다. 인간의 눈물 앞에서 흔들리는 그들의 의지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인물인 영탁은 마치 한줄기의 빛과 같았다.


영탁은 살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다는 것은 경계가 뚜렷한 것이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이득과 손해, 세상 모든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하나로 엮여 있다. 누군가의 손해는 누군가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로 볼 수도 있다. 좋다는 것이 때로는 나쁜 일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듯이 말이다.


여하튼, 이제 이들은 주민대표 영탁의 강렬한 의지와 결탁해 잔혹에 대한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하고 갈수록 악날해져간다. 하지만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울타리를 두르고 살인을 일삼고 강한 규율로 통제하는 것은 결국 고인 물이 썩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선택받은 자들의 선택은 지옥이었으니 그 안에서 모두 불타버리고 마는 안타까움이 하나 남은 인간 사회의 잔재를 덮치고 만다.



민성의 죽음

민성(박서준 분)은 흙수저 출신 공무원이다. 대학교 때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대출을 받아 겨우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했는데, 그 아파트가 바로 이 재난 속에 살아남은 유일한 곳이었다. 그는 천상 선한 마음을 가진 자였지만, 아내를 지키며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충만해지자 헤어나오기 힘든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 옳고 그름의 정의가 불분명해진 상황, 지금은 비상사태이기에 오로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되내이는 말에 지금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정말로 부족한 것일까. 매일 수많은 변명속에서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에 나서는 게 제대로 사는 걸까. 어쩌면 해답은 지금 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밖에 있지 않을까.


만약 민성이 아내가 너 자신을 잃으면 절대 안 된다고 외쳤던 그때 모든 것을 중단했으면 어땠을까. 부족하고 힘들지만 함께 하는 것이 부유하지만 어색한 것보다 좋다는 그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민성은 먹거리를 위해 주민들과 활동대를 꾸려 밖으로 나갔을 때 봤던 수많은 시체들을 보고 숱한 의문을 부정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과거처럼 견뎌내야만 하는 어떤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성이 처한 현실 그리고 그의 확고한 믿음과 불합리한 타협은 우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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