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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ug 18. 2023

환희와 증오는 동시에 피어난다

[영화]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는 천재였다. “우리가 보는 세상 너머의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전쟁은 천재를 어마무시한 폭탄을 만들게 했다. 그는 핵폭탄 제조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수단으로써 인류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누구도 해보지 못한 도전을 한다는 의미에 더 끌렸을 수도 있다. 이론만으로 존재하던 핵분열을 이용한 폭단 제조는 존재하는 모든 이론과 실험을 총동원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이러한 흥미로운 제안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에는 천재이자 나서기를 좋아하는 타입의 인물인 오펜하이머에게는 불가능했다. ​


E=mc^2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이다. 질량을 가진 물질은 에너지를 가진다는 아주 단순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뉴턴(고전) 물리학에서는 운동하는 물체만 에너지를 가진다고 했다. 달리는 자동차에 치이면 다치지만, 정지한 자동차는 우리가 달려가서 부딪히지 않는 이상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안에만 머물면 운동 없이는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아이슈타인은 그럼에도 정지한 자동차도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자동차는 그 질량만큼 에너지를 품고 있어 분출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방법이 바로 핵분열이다.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 이론이 증명되면서 사람들은 생각의 틀을 바꾸게 된다. C는 빛의 속도로 약 3억m/s이다. 간단하게 계산해도 작은 물체로도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전쟁은 이 에너지원을 인간을 살리는 도구가 아닌 죽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전쟁이라는 불완전한 정치적 수단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과학을 악으로 물들인다. 이 모습을 보며 인간 세계에서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함부로 훼손되는 가치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되내이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이 인간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이끌었다. 그 속에 놓인 그는 양심과 욕망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천재는 자신의 능력을 펼쳐 목표를 달성했지만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터져버린 욕망은 연쇄작용으로 통제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닫는다. 핵폭탄 개발 단계에서 필요했던 지능과 리더십은 정치판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정치는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득과 실을 따지는 곳이었다. 그는 더 이상은 필요 없는 존재였기에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적국 소련과 내통한 간첩이자 방탕한 인물이라는 최종 평가를 받은채 역사의 뒤안길로 덩그러니 버려졌다.


천재의 성취 그리고 현실 앞에 무기력해져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과 주인공 킬리안 머피의 연기는 보는 내내 전율이 흘렀다. 정치를 대표하는…어쩌면 대부분의 대중을 의미하는 기억과 세상을 바꾸는 천재의 기억을 교차 편집해 전개되는 서사는 너무나 훌륭하다. 복잡한 물리 이론과 다양한 인물의 심리 충돌이 이어지지만 지루할 틈 없이 그 세계 안에 빠져 들게 된다. 그 안에서 터지는 원자폭탄의 화염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오펜하이머라는 천재를 다루면서 세상을 바꿀만한 인물의 리더십 또한 담아내는데, 간략히 요약하면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포용력, 뛰어난 지능과 학습 능력, 목표에 열중하는 집중력,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투명성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두루 갖춘 오펜하이머는 그것으로부터 고통을 받게 된다. 생각이 다르다고 차별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인해 간첩이 되고, 너무 똑똑해 시기의 대상이 된다. 너무 솔직하기에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바람에 무절제하다고 비난받는다.

세상은 모순덩어리이며 카뮈가 말했듯 부조리한 세상은 허무함을 향해 굴러가지만 그것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숙명이다.

환희와 증오는 함께 피어 오르며, 세상은 하나의 생각과 시각으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불안해 하거나 맞다고 고집하기 보다는 가능한한 다양한 생각을 마주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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