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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ug 31. 2023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넷플릭스] 마스크걸

외모 컴플렉스에 빠진 모미는 밤마다 마스크를 쓰며 춤을 췄다. 낮에는 일상이된 혐오의 눈빛과 말들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밤이면 한껏 날아올랐다. 마치 신데렐라가 마법의 구두를 신은 것마냥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여왕이 되었다. 그녀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즐거움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저 살아가는 방식, 모미의 삶 자체였다. 그녀는 훌륭한 배우였고, 관객들의 호응이 필요했다.


한 고전 철학자는 연극의 3요소를 배우, 무대, 관객이라고 정의했다. 배우가 무대에서 극을 펼치는 것만으로는 연극, 즉 어떤 형태의 예술 활동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호응하며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곰곰이 따져보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무리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기에 배우를 배우로 봐주는 관객이 없다면 그 자체로써 연극이 불성립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다. 시나리오에 맞게 캐릭터를 구성해 각자의 무대 위에서 열연한다. 직접 그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남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주어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배우와 같다. 역시 우리에게는 관객이 필요하다. 가족부터 대중까지 그 대상의 범위와 수는 각 배우들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영화 배우가 있을 수 있고, 열명 안팎의 관객의 박수를 받는 배우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좋고 나쁨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을 편향된 관점과 특정한 기준으로 나누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차후에 다시 따려보기로 하고,  


이처럼 우리가 일정한 타인의 관심을 욕망하는 것은 삶을 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한 노출과 관심으로 무대 또는 배우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극은 이 배우, 관객, 무대가 적절하게 균형잡히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된다.


즉, 배우가 배우로서 본연의 인물에 집중하지 못하고 관객의 기대에만 부응하려 할 때, 자신과 맞지 않는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열연이 우스깡스럽게 보여질 때, 관객이 단순히 소비 주체로서 갑의 위치에 올라 건전한 비평이 아닌 조롱을 난사할 때. 연극은 아마도 엉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배우이자 관객이며, 우리가 마주치는 일상은 나의 무대와 타인의 무대가 공존한다. 그 안에서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사회와 개인이 추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주오남의 엄마는 아들의 무대에 난입했고, 모미의 엄마는 딸의 열연을 조롱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무대가 아닌 곳을 넘보다 연극을 엎지른 모미는 자신의 배역을 잊고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 나는 나의 무대 위에서 제대로된 연극을 펼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훌륭한 관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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