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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Oct 19. 2023

닫힌 공간 그리고 같은 옷과 같은 생각

[영화] 원 세컨드


폐쇄된 공간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한다.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

세상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중국 마오쩌둥은 공업 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대약진운동을 펼쳤다가 실패했고,

참새를 잡아 없애라는 등의 어리석은 정책까지 더하는 바람에 식량 부족 현상까지 겹치자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졌다.


그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와 봉건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지식층을

가두거나 살해하는 등 잔악무도한

문화대혁명이 1966년에 발생한다.


그 시기에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던 한 사나이는 반동분자로 몰려 노동캠프로 보내진다.

그렇게 6년 동안 그는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딸의 소식을 들었다.

선전영화속에서 그의 딸이 단 1초 등장한다고 했다.


그는 탈출해 그 영화를 보게 된다.


그 속에서 딸은,

자신을 지워야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어른들 틈에 끼여 쌀가마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사나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여린 소녀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보고

노력과 끈기라고 부르는 사회는 과연 정상일까.


그곳에는 또 다른 어린 소녀가

남동생과 함께 난방이 되지 않는

콘크리트 벽 안에 숨어 살았다.


이름도 없이 ‘류 가’라고 불리는던 그들의 부모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던 남동생은 밤낮 독서를 즐겼고,

그런 동생을 위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필름갓으로 만든 전등을 빌려다 준 것이었다.


필름은 불에 잘 탄다.

소녀의 연약함처럼 조금의 열기에도

쉽게 오그라들었다.


책을 읽느라 오랫동안 켜둔 필림갓전등이 불에 타게 된다.  전등 주인과 그 무리들은 그것을 갚아라며 시도때도 없이 두 아이들을 괴롭혔다.


괴롭힘을 당하는 두 아이는

마을사람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해 서글프다.


그들이 그렇게 박해진 것은 아마도

착취당하는 그들도 누군가를 착취해야만

더욱 편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고악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고약함은 또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들의 본능일까 아니면 사막 한 가운데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생산량을 요구하는

왜곡된 권력 때문인가.


필름갓전등을 구할 길이 없던 소녀는

필름을 훔쳐 만들기로 작정했다.


마을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영화는

근 한 달에 한 번 꼴로 상영되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는

마을 바깥일을 들을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감방에 잠시 드리우는 볕과 같았다.


모두가 그 빛에 환호할 때,

소녀는 그 빛을 훔쳐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싶었다.


악의 순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훗날, 사나이가 풀려나고 그녀를 만났을 때는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그들을 길들였던 마오쩌둥이 1976년에 죽고,

덩샤오핑이 등장하면서 문화대혁명이 끝난 시기였다.  


이후 그들의 절망적인 삶의 여정도 끝이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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