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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Nov 14. 2023

미국 원주민이 부지가 되자 그들이 한 짓

[영화] 플라워 킬링 문

때는 1800년대.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백인들로부터 고향을 뺏긴다. 조상의 넋이 서려 있는 곳에서 벗어나 낯설고 척박한 땅에 다시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은 세습되지 못하고 백인들의 생활양식을 따라갔다. 아이들은 백인들의 교육을 받았고, 자본과 기술에 의해 전개되는 진보라는 굴레에 얽혀 들어갔다.


말 대신 차를 타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백인의 문화를 배웠다. 부족의 딸들은 하나 둘 백인과 혼인하여 신이 내려주는 이름과 백인 아버지가 지은 이름, 이 둘을 가진 아이를 갖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한 데 모여 잘 살게 된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백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그들 자신과 다르다고 여겼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들이자 “일하지 않고 밥을 먹는, 벌 받을 자”로 여겼다. 그러나 미국은 철저히 자본에 지배당했기 때문에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가진 부에 감히 쉽게 덤벼들지는 못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천막과 말을 타며 사냥을 하는 유목민의 모습과 전혀 다른 아메리칸 원주민의 모습이 영화에서 펼쳐진다. 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정착한 땅에서는 기름이 솟아났고, 그것은 산업화와 더불어 그들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다.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축적된 재산은 법 아래 안전했다. 그들의 부를 강제로 뺏을 수 없었던 백인은 묘안을 마련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상속이라는 시스템이다.


바로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랑과 신뢰가 기반인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세워지고 흔들리다가 쪼개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 구체적으로 백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의 속살을 보여준다.


부를 차지하기 위해서 가족의 신뢰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슴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미국을 고발한다. 그렇게 영국에서 건너왔던 부랑자 백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얻었던 신의 축복일지도 모르는 자원을 빼앗아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렇게 200여 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들의 후손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의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뿌리가 이와 같은 부패와 폭력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스콜세지 감독은 이러한 역사 고발을 헤일과 어니스트라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구성으로 풀어낸다. 탐욕으로 똘똘뭉친 헤일이 자신의 조카 어니스트를 수단으로 삼아 아메리칸 원주민과 결혼을 시키고 석유 소유권을 얻어내는 과정이 주요 전개다.


이런 과정에서 어니스트는 악의 무리에 끼여 자신을 잃어간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아니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삼촌 헤일의 명령을 받아 다같이 부자가 되고자 함은 대대손손 이어질 부를 창출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죄의식 같은 것도 없다.


여기서 감독은 묻는다. 힘이 명분을 만들듯 우리가 쌓아온 눈부신 성장 앞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헤일과 어니스트는 처벌을 받게 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던 오일 회사들은 승승장구하며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백인의 미국은 세계 최대 강국이 되었다.


그들의 성공을 부러움을 바라보며 따라하는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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