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의 증명
둘이 힘겹게 사랑을 하다가 하나가 죽자,
남은 연인은 사랑하는 이의 시체를 먹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방법으로
단순히 태우거나 땅에 묻는 것은
둘이 나눈 사랑의 의미를 볼품없게 만드는 것 같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담은 구의 손톱부터 머리카락까지
하나 하나 다 집어 삼킨다.
둘의 사랑은 고집스럽다.
구와 담은 서로가 사랑했다고 하지만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어떤 관계나 사건을 하나의 단어 또는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다.
우리는 불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삶을 배우며 희노애락을 깨우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함구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눈을 돌린다.
구와 담은 그런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이끼처럼 차가운 바위에 붙어 살았다.
하지만 돈과 폭력으로부터 고통을 받았고,
그것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는 빚은
매일 부딪히는 인간의 고뇌와 닮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신음을 뱉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그것을 듣거나 알아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구는 담의 소리를, 담은 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과 귀가 되었고
그 구멍을 통해 서로 엮여 뗄 수 없는 하나가 됐다.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 어떠한 공감이나 위로를 받게 된다면 필히 우리 삶이 그 둘의 모습처럼 팍팍하게 지쳐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줄기의 빛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내 곁에 구나 담이 있다면 이 거대한 슬픔 덩어리에
깔려 옴짝달싹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덜 외로울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을 집어 삼킬 만큼의 사랑은
나를 완전히 채워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