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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ug 28. 2023

120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내일의 불안에 떨지 마라.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산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런 말들에게 개인들이 느끼는 바는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들의 성향처럼 뚜렷하다.

누군가는 헛소리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맞다며 무릎을 탁 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느 성향의 사람인가.

정답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불변하다는 것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 어떤 말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케바케’다.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냐고,

줏대 없이 우유부단하게 살아가다가는

이도저도 안 된다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따져 묻는 사람들과는 크게 어울리고 싶지는 않다만은 세상일이라는 게 선거처럼 차선의 차선을 선택해서 본인의 주장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정에 말미암아 어떤 카드를 내놓게 된다면

나는 중립.

​​

이 말 뿐이다. 선거날에 투표하지 않는 것처럼 어떻게 네 삶을 무책임하게 내버려둘 수 있냐는 물음에도 다시 한 번

나는 중립.

모르니깐, 정말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선택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알아둘 것은 있다. 대부분의 생각과 행동은 맥락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순간의 사건에만 매몰되는 것을 거부하기를 원한다.

그 맥락이라는 것은 총체적인 어떠한 것이기에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기는 힘들다. 사실 그런 능력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원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을 끝까지 고수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고, 꾸준한 과정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 낼 기회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 곁에 최대한 많이 머무는 일이다. 사랑은 또 다른 이별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필연적인 좌절 속에도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는 일이다.

자기계발서는 보통 이 견디는 일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데 정말 좋은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그것을 통해 실제로 나를 바꾸는 것은 밤에 생수 한 사발 떠놓고 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허하다는 것이다.

모든 이론은 실제로 행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데, 그저 읽고 쓰기에만 집중되어 있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고는 비몽사몽 간에 소변을 누는 것으로만 머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보고 듣고 읽고 쓰기에 더불어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어떤 기관에 투고를 해본다. 그리고 음악이나 이상한 에세이나 영화 리뷰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특성과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주식시장이라는 곳에서 정보를 단순화하고 심리를 해석해 결단하는 행위도 나름 진지하게 해본다.

조금 덧붙인다면, 이 일련의 과정은 계획과 실패를 경험하며 정신(철학)이라는 정원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다.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게,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게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


또한, 사업 아이템이 생기면 사업보고서를 작성해 조직을 꾸리거나 커뮤니티에 들락날락 거리는 게 일이었는데, 육아와 생업에 집중된 물리적 한계는 상상력의 한계마저 끌어내렸다. ​


그럼에도 단순하게 반복되는 하루의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외우는 주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


내가 접하는 것들 대부분은 엄청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 어떤 이론을 가지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 현실로 만든 것이기에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상력의 크기만큼 삶은 소중해진다. 그리고 상상력의 크기는 학습과 지능에 많이 좌우된다. 보통 평정심과 인내가 핵심 요소이다.



아이 키가 120센치미터가 되었다. 올해 워터파크에 가서 120 이하가 타는 어린이 미끄럼틀을 타지 못하고 튜브에 앉아 워터 슬라이드 동굴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많이 컸다. ​


아이가 자란 만큼 나도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좋은 아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나는 아이가 커가는 만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너는 어떤 아빠가 될래? 라고 묻는다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유유히 물처럼 흘러가는 그런,

중립

마치 익숙함과 낯선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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