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혁용의 침입자들
평범한 삶이 싫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았다. 비범한 삶의 요소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대답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시절에는 마주한 어떤 관습에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 살면서 말도 안 되는 선배들의 얼차려와 더욱 더 말이 안 되는 교육시스템을 곧 잘 견딘 것처럼 나는 나의 이상향을 말로만 빙빙 둘러댈 뿐이라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운명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 것인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 무언의 힘이 나를 어디론가로 떠민다면 기꺼이 힘껏 두 팔을 벌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기대는 실망으로 변해갈 뿐이었다. 뚜렷이 잘하는 것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좋아하는 것은 도무지 내가 제대로 누리기엔 힘든 부분이 많았다. 가령 그저 듣기만 해도 좋을 음악을 직접 만들어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이 같은 글을 끄적대면서 언제가 나는 창작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행위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휘몰아쳤다. 그 안에서 희망같은 것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어떤 목적 의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아직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완성해야 하는 문장 같은. 그 때문에 세상이 나를 아무리 몰아세워도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 우습다와 같은 실없는 용기가 나올 수 있었다.
소설 ’침입자들‘을 쓴 정혁용 작가는 커트 보네거트의 말을 빌려와 이런 걸 적었다.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은 진짜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커트 뭐시기라는 작가도 몰랐고 당연히 그의 책을 읽지도 않았기에 그가 이런 글을 남겼는지는 더더욱 알길이 없었다. 낯설지만은 않은 문장이지만…그래도 누군가는 이러한 생각을 근사하게 써내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아주 반가운 일이다.
과거는 민망하고 현재는 불만이다.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분들 덕분에 생계수단을 넘어선 무언가를 한다.
정혁용 작가는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기 싫어서 PC방에서 쓴 원고로 입상해 등단을 했다. 천재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택배 노동에 시달리다가 두어시간 글을 꾸준히 썼다고 한다. 그리고 훌륭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일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그는 천재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듣기 조금 어색하니 그냥 어떠한 운명같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게 나이 마흔이 넘어서 시작한 소설가로서의 운명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
울산 출신에 거제도에서 1년 동안 택배일을 했다고 한다. 가족이 울산에 사는 거제도 주민으로서 더욱 친근함이 들어서일까 왠지 더 끌린다.
본인 스스로 작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후 적절한 시기에 그 순간이 왔다. 그가 많은 고난의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나는 이대로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는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부속물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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