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병철 작가의 ‘서사의 위기’
삶이 곳곳이 부러진 것 같다. 분절된 팔과 다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들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과도한 정보의 유입이 나에게 경험을 뺏기 때문인 것 같다. 경험이 없어진 나의 삶에 오로지 정보나 지식만이 자리한다. 그 안에는 서사, 즉 이야기가 없다. 하나의 지식에 천착해 오랫동안 부유하며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정제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많은 정보는 많은 기회를 창출한다. 그곳에는 어떤 이상향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안절부절하게 한다. 가까이 있지만 가질 수 없는 박탈감. 나의 비루한 처지에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소외감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새롭게 접한 지식이 쓰임이 없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부정할 수도 있다. 자각한다는 의미와 또 다른 정체성의 붕괴. 자아의 상실.
무아의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지만, 그 텅 빈 공간에 파고드는 세상의 것들의 자극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채워서 딱딱해져 견디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흘려보내야 하는 데 그것이 잘 안된다. 이럴 때, 다시 삶이 분절된 것처럼 아프게 된다.
한병철 작가는 서사의 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절된 현재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또
“이야기하는 사람은 삶에 몰입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사건들을 잇는 새로운 실을 뽑아낸다. 그럼으로써 고립되지 않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조밀한 망을 형성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유의미해 보인다. 이 서사 덕분에 우리는 삶의 우연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삶을 직조해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나의 입장에서는 매듭을 짓는 것은 하나의 창작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 행위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나를 통해 재해석된 모든 것이다. 독립된 사건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고리를 찾는 것이다.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무엇을 보고 듣는지가 중요하다.
댓글 같은 콘텐츠가 판을 친다. 하나의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것은 마치 전단지 같다. 전단지는 비슷한 정보를 담은 채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느끼는 비슷한 감정을 유튜브나 SNS에서도 느낀다.
한병철 작가가 말했던 스토리셀링을 위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의미가 이런 것일까. 경험되지 못하는 정보와 지식의 유입은 나를 괴롭힌다. 나의 시선을 뺏으며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부와 명예를 부러워하며 현실부적응자로서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며 한심해하다 어쩌면 내가 가야할 길이 바로 저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다시 마무리 되는 지점은 경험이다. 경험되지 못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정보와 지식 혹은 재미와 유흥으로 타인의 시간을 뺏는다는 생각이 들면 경험되지 못해 불안했던 나를 돌아보며 그 축에는 끼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나는 철처하게 경험하고 이야기로 써 내려가며 존재하고 싶다. 누가 뭐라고 상관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발버둥치면서 나는 나로써 경험하고 또한 타인을 그런 나를 보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