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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Nov 19. 2023

조선의 정신과 기술이 서양을 바꾸다

[책] 직지

1377년 직지심체요절 발행

1444년 훈민정음 창제

1445년 구텐베르크 성경 금속활자 본 발행

1397~1450년 세종대왕 생애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금속활자 책이다. 서양의 독일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성경보다 약 70여년 더 전이다. 세계 최고, 최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이지만 세계사적으로 한 민족의 우수성을 드러내기에는 그만큼 좋은 것도 없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직지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얼마나 선진적인가를 증명하기에 알맞은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고려는 이전에도 팔만대장경(1236~1251년)을 목판으로 찍어냈다. 기록에 의하면 1234년에 법령과 예법을 담은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어냈다고 한다. 목판과 금속활자 기술이 이미 아주 뛰어났다는 점은 고려가 출판업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었는가 유추해볼 수 있다. 당시에도 중국에 사대를 하던 시기였고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출판이 성행했을 것이다. 책에서는 고려 인삼과 더불어 고려의 최대 수출품이 책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고려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잘하는 민족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김진명 작가는 이러한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과거의 일을 현재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독점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에 대입한다. 반도체와 인쇄기술은 모두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이 더 나이지기 위해서는 지식이 저장•기록되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 선두에 한국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계몽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소설은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유럽에 건너가 구텐베르크에게 전달되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직지심체요절>과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 시기에 조선의 왕이었던 세종을 그 축에 둔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개발하고 배포하기 위한 과정에서 금속활자를 사용했다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훈민정음의 홍익인간 정신이 서양에 닿는 여정을 그려낸다. 이러한 동서양 역사의 변곡점 시기가 동일 선상에 있었다는 점은 얼마나 놀라운 우연인가.


세종이 훈민정음을 개발하고자 함은 무지한 백성들을 일깨우겠다는 목적이었다. 읽고 쓰기가 곧 힘이 되는 시대. 글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권력이었다. 그 권력을 다수에게 나눠주고자 했던 것이 세종의 뜻이었다. 또한 서양에서 금속활자로 처음 인쇄된 책이 성경이라는 사실은 동서양 모두 권력자들의 횡포로 얼마나 세상이 기울어져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한글과 성경이 인쇄되어 민중에 퍼져나가 이룬 성과 또한 눈부시다. 정보와 지식의 확산은 세상을 확장시켜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소설은 이러한 서사를 통해 현재 기득권을 유지하게 해주는 요소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했다. 기술의 발달로 법률, 의료 등등 진입이 힘들었던, 흔히 우리가 “님”을 붙이며 높여왔던 권위의 벽을 낮추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어쩌면 구텐베르크 이후 종교혁명이 발생했듯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비정상적인 세계가 뒤집히고 새로운 규칙이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해야하는 일, 미래를 그리는 일이란 이처럼 집중된 권력으로 왜곡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어야 하며 그에 대한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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