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pyo Jan 06. 2024

삶은 우연에 굴복하지 않는 것

[영화] 더 웨이 백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

눈에는 초점이 없고

흔들리는 세상에 맞춰 살기 위해서 술을 찾는다.

알콜 중독자가 된 일용직 노동자의 삶,

그 안에서 그는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한채 비틀거린다.

그는 한때 촉망받던 농구선수였다.

다녔던 고등학교 농구 코트에는

그가 입었던 유니폼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그 아래서 후배들은 열심히 코트를 누볐지만

성적은 아주 저조했다.

모교 교장은 전설로 남은 그에게

농구 감독 직을 제안했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들었던 그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여러 번 거절을 할 방법을 찾았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자그마한 불씨가

그를 다시 코트로 이끈다.


여기까지 스토리를 보면 나락에 떨어진 주인공이

스포츠로 재기한다는 뻔한 스토리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흔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또한 슬픈 결말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삶에 우연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아주 담담하게 비춘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며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문제다.

예상하지 못한 불행에 내가 굴복할 것인지,

아니며 버티고 견디며 결국 극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지의 과정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방향을 잃은 후배들을 맡았다.

그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었던 술이

우연히 얻은 기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순간으로 찾아왔을 때

그를 다시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다시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

그제야 주인공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도움이 필요하다.

이 고통을 극복하고 악순환을 끊을 용기가 필요하다.

진작에 시도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삶은 하향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은

오로지 나 스스로밖에 없다.

그때 비로소 시공간이 변하게 된다.

매일 마주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손을 뻗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고통의 출발은 나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증명하려는 것 때문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내가 아닌 나의 재능을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

불치병으로 떠난 아들로 인해 생긴 세상을 향한 원망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하나 하나 차곡 차곡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보기도 싫던 농구공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의미는

이제는 내가 마주하는 그 어떤 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봄이 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