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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Nov 29. 2023

이제 봄이 왔을까?

[영화] 서울의 봄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박정희 독재가 무너지고 사회가 어수선할 때였다. 사람들은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때 민주주의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국민들은 알았을까. 여하튼 식자층들은 박정희 유신정권 동안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뜻밖의 독재자의 죽음을 환영했다.


반면 국민들은 자신의 대통령이 죽은 것을 슬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고속도로가 깔리고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나라 밖에 물건을 내다팔면서 커다란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기적을 이룬 마법사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때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전두환은 합리적인 것을 믿지 않았다. 논리정연하게 전개되는 귀납적 결론 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연역적 명분을 내세웠다. 자신이 가는 길이 곧 진리였다.


또한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 보다는 강력한 지도자를 찾는다고 믿었다. 강력한 지도자가 휘두르는 권력 안에서 시민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겠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밥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믿었다. 가끔 새장 밖으로 나와 부리를 쪼아대면 가차없이 없앴다. 그 수가 하나둘 늘어나자 탱크를 몰고 밟았다.


전두환은 자신의 야욕을 완성하기 위해서 과감히 쿠테타를 일으켰다. 그의 한계를 가늠하지 못하고 얕봤던 사람들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그를 저지하는 세력이 몇 있었지만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그에 반항했던 세력들은 이후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의 쿠데타가 성공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의 강한 욕망과 의지였을 것이고 둘째는 그에 동조하는 세력 마지막으로 대항 세력의 무능이다.


우리는 이 세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꾸려나간다. 우리는 몰랐거나 숨겨졌던 과거의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흥분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 내가 무언가를 달성하거나 세상이 바뀌는 순간은 모두 1212 군사반란과 같은 전개로 이루어진다. 만약 이 고리에 속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존재로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쁘지 않다.


굳이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을 하나 덧붙인다면 전두환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1979년 12월 12일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그의 권력을 인정하는 나라 안에 살고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제라도 자신의 욕망을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고 실현하면 동조하겠다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욕망의 발현이 사라질까? 그것이 과연 문제일까? 문제라면 어떻게 고쳐야 하나. 우리는 스스로 자정할 여력은 있을까?


최소한 구조적인 문제는 고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는 조직 내 사조직을 없애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대의를 그르치는 부도덕한 자에게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면에 극중 이태신의 실제 인물 장태완 사령관이 내세운 명분은 과연 정말 세상에 득일까? 군인은 군인의 역할이 있고 그에 충실해야 한다. 무능한 지도자의 명령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가치는 정말 불변진리일까.

 

어느 하나 쉽게 선을 그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를 숭고하게 영글어갈 때 우리는 그를 보고 진리라고 말하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어쩌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가치와 철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닐까.


“굳이 피를 보지 말고 말로 합시다”라며 이태신 사령관에게 진압을 그만두라고 했던 오국상(실제인물은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숭고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명의식이 없는 한 나라의 장관의 모습에서 우리는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쿠데타 이후 그는 천수를 누렸고 그의 딸은 GS그룹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의 삶이 그 사건 하나로 모두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인생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크게 세운 공과에서 정의된다. 자격 없는 자리에 머문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한결 같이 박할 수밖에 없다. 무능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권력을 탐하느라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더불어 영화를 보며 역사적 사실에 분노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과연 저 상황에 누군가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곱씹어 보았다….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나를 만났다.


***


영화는 이미 알려진대로 아주 잘 만들어졌다. 전개가 빠르고 배우들의 열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엔딩에서 웅장하게 울려퍼지던 군가 ‘전선을 간다’ 때문에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이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데, 마지막 전두광과 이태신의 대립 장면은 픽션이라고 한다. 영화적 연출이 훌륭했다.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혹시 정의실현 혹은 부패권력의 속성 고발 등이라면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주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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