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마을 <리솜 포레스트>

국내여행

by 랩기표 labkypy

400킬로미터를 내리 달렸다. 신호 하나 없는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려가면서 언제쯤 도착할까 하염없이 지루한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고만 있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안동을 지나면 큰 비가 내리더라 조심해'라고 충고를 하셨던 장인어른의 말이 떠오르면서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자정이 되었고, 네비는 확연이 줄어든 거리를 알려주었다.

터널을 지나니 길이 점점 좁아졌고 경사가 있는 이차선 도로를 굽이굽이 들어가니, 박달재라는 글씨가 보였다. 울면서 넘는다는 그 박달재 고개가 아닌가. 존재는 알았지만 제천에 있는지 몰랐다. 더구나 우리 목적지가 그곳인지는 상상도 못 했기에 이유 없이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이 고개는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넘던 관문이었고, 과거 응시생 경상도의 총각 박달과 충청도의 여인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구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혹자는 이것이 유행가를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 산세가 험해서 이 고개를 넘어가는 시집가는 여인이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넘었다고 하여 '울고 넘는 박달재'라 불린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수많은 이들이 여러 사유로 눈물 콧물 흘린 이곳에 잘 도착했다는 반가움에 눈물이 날 뻔했다.

5시간이 넘는 여정은 지하주차장에 내려 잠이 깬 지상이의 하품으로 마무리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올라가니 비는 잠시 그친 것 같았다. 숙소들이 산 중턱에 차곡차곡 놓여 있는 곳이라 경사가 심해 짐을 들고 걸어서 이동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보통 카트나 SUV를 이용해 이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차량 지원은 자정 전에만 가능하다고 하여 마중 나온 처남과 처삼촌께서 짐을 나눠 들고 숙소로 걸어 움직였다.

복층으로 된 숙소는 거실이 좁고 테라스가 넓었다. 네 명 정도 한 번에 모여서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하기에 알맞아 보였고 상대적으로 인원이 많았던 우리는 거실과 방을 나눠 조금은 불편한 자리를 감당해야 했다. 아기가 있다는 이유로 감사하게도 복층 아래 욕실과 침대가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아침이 되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숲의 모습이 드러났다. 비가 조금 내렸고, 덕분에 기온은 선선했다. 아침밥을 어떻게 하느냐를 두고 조금의 논의가 있었지만 선택의 폭은 많지 않았다. 숙소에서 약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올갱이국을 먹으러 갔다. 식당은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음식은 정갈했다. 처 할머니께서 이 올갱이는 진짜 잡은 건가 보다 하시면서 음식에 좋은 평을 내리셨다. 식당에서는 아기 먹이라며 메뉴에는 없는 김을 내어주셨고, 곧 계란도 하나 더 구워 주셨다. 하지만 지상이는 그 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를 조금만 채우고는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계란은 결국 내가 한입에 다 먹어야만 했다.


RESOM은 RE, State Of Mind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마음 상태를 다시 돌린다는 것 같은데, 그 정체성에 걸맞게 건물 곳곳에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많았다. 또 그 앞에는 '진정한'이라는 형용사가 자주 붙어 업계 강자라는 자존심을 어필했다. 산 경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워 올린 각각의 동(棟)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 쌓인 독채 분위기를 연출했고 밤하늘 별이 한가득 보인다는 산 위 정상에 위치한 별똥카페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산림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다른 리조트와는 달리 취사가 금지되어 있어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았고, 아스팔트가 없어 산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고도 비는 계속 왔지만 수유가 수영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께서는 골프 대신 휴식을 취하기로 하셨고 우리 가족과 처남만 수영장으로 갔다. 실내외 수영장에는 어른보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 처 막내삼촌께서는 물가에 아이를 두고 온 것 마냥 계속되는 할머니의 걱정 속에서도 홀로 3시간 동안 온천을 즐기셨다.

"여기 스톤 온천에서 사진 한 장 찍자."

누구나 여기 오면 인증샷을 남긴다는 곳이다. 돌을 욕조 모양으로 파내어 온수를 담아내고 그곳에 앉아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여름이었지만, 비 덕분에 야외 온천의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지만 수영과 온천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제약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뜨거운 뙤약볕을 맞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지상이의 피곤은 달랐다. 들어온 지 2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먼 여행길에 지쳤는지 지상이는 곧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3만 원 초반대의 입장 가격으로 두 시간밖에 즐기지 못하면 그 값이 아깝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이 난관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물에 몸을 담그며 음식을 먹는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소에서나 팔 것 같은 그런 음식들이 알바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 두 명의 손에서 무심하게 팔려 나가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니 지상이도 잠이 조금 달아났는지 다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를 테이블 주변으로 흐르는 물을 걷어 차는 것으로 풀기 시작했다.


수영을 마친 후 ’별채’라는 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빗소리를 즐겼고, 정상에 있던 별똥카페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비를 맞고 뛰어가는 지상이와 함께 놀았다. 저녁이 되자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수유 사촌네가 도착했고, 아는 동생이 이 근처에 맛집이라며 알려준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두루치기와 된장찌개는 서울, 인천, 충청,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골구루 만족시켜주었다. 인심 좋은 주인 할머니께서 아기가 잘 먹는 반찬을 싸주시며 웃는 모습이 나가는 문 앞까지 배웅 나와주었다. 호날두가 나오지 않은 축구경기를 보며 헛웃음을 쳤고, 수유 사촌 내외가 애써 챙겨 온 보드게임으로 처남과 나를 포함해 넷이서 새벽 늦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즐거운 승부를 즐겼다.

퇴실하는 날이 되어서야 해가 뜨고 주변 풀 숲의 색이 더 진해졌지만 엄청난 더위도 함께 왔다. 짐을 옮기고 사진을 찍는 동안 비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즐거웠던 여행에 감사했다. 우리는 이후 일정이 있어 아침은 함께 하지 못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고 이번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 고개를 웃으며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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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pyo 2019.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