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대계마을
철구와 아이들
가파른 내리막으로 차를 몰았더니 좁은 골목이 나왔고 혹시나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됐을 때, 창밖에는 우리 차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철구형네와 경환이네를 볼 수 있었다. 철구형은 바닷물 속에서 두 아들과 신나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고, 경환이네는 물가에서 아이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창문을 내려 우리도 맞장구를 치니 경환이가 손을 모아 우리에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 목소리와 뒤엉켜 소리가 어수선해져 알아듣지 못했다.
“조금만 올라가서 주택단지 나오면 가운데 길로 들어가면 돼.”
경환이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다시 말하자 소리가 또렷해졌고 알려준 대로 가니 금방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를 제외한 세 식구의 차가 주자창 안에 사이좋게 대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 비어있는 한자리에 차를 밀어 넣었다. 주차장과 마당 그리고 집과 연결된 낮은 계단을 지나고 문을 열었더니 경화와 영주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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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대계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대통령 횟집이다. 그곳이 대통령과 정확히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가 위치한 곳으로 유명한 이 작은 어촌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자부심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이 있고 그 건물은 그의 호 거산(巨山)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형태는 닮았어도 그 크기는 다소 작아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IMF를 몰고 왔다거나 3당 통합이라는 초유의 정치 사건 등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이곳의 자랑이었다. 이 마을 반대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대통령의 정기가 곳곳에 서려있는 이곳으로 들어가면 거제도의 특성답게 움푹 들어간 만으로 형성된 몽돌 바닷가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면은 마치 동양화가 그려진 병풍을 펼친 듯한 붉은색을 띤 돌 산이 낮고 길게 펼쳐져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에 들어오는 석양빛은 그 붉기를 더해서 동네 전체가 기이한 느낌마저 들도록 한다. 반대쪽은 해안도로를 따라서 횟집과 가정집이 이어져 있다.
동네 사람들이 텐트 주변에 서서 수경과 오리발을 낀 채로 갓 잡아 온 해산물을 들고 맛있게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싶어 졌다. 타지 사람들들은 그 붉은 바위 산에 붙어서 헤엄을 치고 물속을 구경을 했다. 저녁이 되면 물이 빠지는 시간대인 것 같았다. 지상이와 잠시 물장난이나 할까 하고 내려간 바다에서는 철구형이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가지고 놀던 튜브가 멀리 바다 밖으로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철구형은 물침대를 타고 있던 처음 만난 청년에게 튜브를 잡아 달라는 부탁을 하고 구명조끼에 매달려 미안한 얼굴을 하고 몸을 동동 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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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위치한 곳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슷하게 생긴 주택들이 7채 정도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층 집들이 다들 똑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랐다. 우리가 머문 곳은 다른 주택과는 달리 이층을 야외 테라스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경환이는 이 집만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펜션처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잔디가 자란 마당에 숯을 피우고 음식을 나르는 도중에 옆 집에 사는 사람들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단에 물을 주거나 빨래를 널거나 먼지떨이로 집 주변을 청소하는 등 오늘 할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각자 주어진 사회생활을 마감하고 여생을 조용히 시골에서 보내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신 분들 같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젊고, 신나 있었다. 이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활개를 칠 수 있도록 한 무책임한 이 집주인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얄미울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들었다. 마침 갑자기 비가 내리가 시작했고 이층에 마련된 테라스로 급하게 장소를 옮기고 고기를 한 점 먹으면서 차라리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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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이가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경화에게 꽃을 준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 자주 가는 꽃집에서 미리 주문을 한 꽃을 받아 왔고 숙소 입구에 들어서자 말자 지상이 손에 쥐어 주고는 "경화 이모한테 꽃 드리세요.”라고 했더니 지상이는 다행히도 말을 알아듣고 부끄럽게 전달했다. 복덩이. 경화와 영주 아이의 태명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고추에 동그라미 친 초음파 사진과 함께 전달해왔다. 축하 인사가 이어졌고, 우연이라기엔 거짓말처럼 예약된 숙소에 다른 이의 약속이 취소가 되면서 우리 가족과 철구형네가 합류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철구와 아이들’의 두 번째 여름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이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수유와 결혼을 하고 수유 연주단에 소속된 사람들과 작은 계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이 자리를 하게 된 것이 낯선 이들과의 설렘이었다면 지금은 재미가 보장된 시간에 대한 확신이다. 수유는 내가 모임 때마다 취해서 실수를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