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로리아 벨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을 언제 느낄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큰 뿔테 안경을 쓰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그녀의 이름은 글로리아 벨이다. 그녀는 아들, 딸 하나씩 두고 있으며 그들은 불안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한 만큼 그녀의 삶은 소각되었을 것이고 보상받지 못한 희생은 공허함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더욱이 십몇 년 전에 이혼한 남편과 떨어져 홀로 맞이하는 따스한 아침 햇살은 오히려 그녀의 삶을 더 어둡고 차갑게 만들었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삶 속에서 담배와 대마초를 겨우 끊는 것으로 나는 아직도 나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고 있으며 언제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으로 그녀는 몸에 쫙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매일 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며 남자들의 시선을 낚아채어 자신의 품 안으로 들인다.
일상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행위가 벌어지는 무대다. 이 무대가 특별한 사건으로 깨어질 때면 우리는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그 혼란은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불안과 공포로 불면을 겪는 것이나 흥분과 설렘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은 어쨌든 일상적이지 않다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보통, 이러한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은 의외의 복선을 통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 필연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행복이란 덜 고통스러운 상태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깨닫는 과정인 것 같다.
글로리아는 믿지 않았던 것을 믿음으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룻밤 파트너로 생각한 어느 멋진 신사의 가슴 떨리는 고백에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페인트 볼 사격이란 것도 해보며 새롭고 신나는 일들로 어둡고 습했던 무대 위에는 환한 조명이 드리운다. 나의 인생은 저무는 해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구름이 걷히고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직도 내겐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믿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무너짐의 복선은 아들 생일날 보란 듯이 재혼한 남편 앞에서 그를 소개한 자리에서 찾아온다. 모두가 옛이야기에 빠져 신이 났을 때 그가 갑자기 떠난 것이다. 아무런 연락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원래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사라진다.
이후 글로리아는 다시 일상의 무대로 복귀한다. 주인공이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배우는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그리워한다. 익숙했던 나이트클럽도 다른 공기로 가득 채워져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다며 회사 주차장까지 찾아온 남자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둘은 다시 만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 철없는 두 딸과 사고로 다리를 다친 옛 부인을 향해 또다시 흔적도 없이 떠난다. 그것도 미안하다며 자신이 초대한 휴가지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화장실을 간다는 말만 남겨둔 채.
그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것은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러한 헛된 욕망과 기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허무함과 부끄러움에 철없는 아이처럼 처음 만난 사람과 밤 새 비뚤어진 시간을 보내고 빈털터리가 된 채로 수영장에서 깬 그녀는 결국
엄마를 찾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엄마의 딸이었고 내 딸과 아들의 엄마이고 나는 작은 회사의 직원이고 오래전에 이혼을 했으며 앞으로도 내 삶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며 별일 없이 굴러갈 것이다. 매일 출근하면서 부르는 이 노래가 내 삶을 달래는 달콤한 간식 같은 것이구나. 내가 비참해진 것은 나의 것이 아닌 것을 탐했던 어리석음이었구나. 나, 글로리아 벨은 불행의 씨앗. 이 헛된 욕망과 우유부단함과의 결별을 고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그의 집을 찾아가 선물 받은 페인트 총으로 난사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줄리안 무어가 운전대를 잡고 웃으며 노래하는 장면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숙제를 안고 돌아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