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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을 기억하며

by 랩기표 labkypy

포수였던 그는 사람을 잡기 시작했다.


포수 시설, 동물의 흔적을 따라 길을 잡고 웅크리고 앉아 멀리서 총을 쏘아 상대를 쓰러뜨린 후 칼로 목을 베어 마무리하는 형식이었다. 언제부터 그가 포수였는지, 그리고 왜 그는 이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생김새가 위협적이고 총질은 정확하고 칼 솜씨는 예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있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싶어 따라다녔다. 자연스럽게 그는 명령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대장은 휘하 사람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였다. 위험 앞에서는 남들보다 나섰고, 공적은 항상 맨 뒤에서 조용히 받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는 그들의 총을 압류한다고 공지를 했다. 먹고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던 정부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부류였다. 죽음 문턱 앞에서도 달려드는 맹수에게 칼을 써서 치명상을 입히고 동료의 배를 불리던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 우스운 것들이 역린을 건드렸다.


굶어 죽으라는 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인 대장은 결국 살기 위해서 사람을 잡기로 한다. 국권을 잃은 나라의 현실이 먹고사는 문제로 다가오자 그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나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적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자만에 넘치는 군복을 입은 자들은 스스로 무너졌다. 봉오동까지 진격한 그들은 그들의 꾐에 속아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했다.


왜 싸우는지 아는 자들의 승리였다. 그리고 청산리의 다른 무리와 합류하여 덩치를 키우고 명분을 확립하고 다시 한번 더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아무리 먹고사는데 간절한 무리라고 해도 떼로 덤비는 범을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객관적인 전력차를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지만 부족한 건 의지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그들의 승리는 큰 호랑이에게 상처를 낸 것뿐이었고, 오히려 화를 북돋운 꼴이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달려드는 순간 속절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약한 자들은 뜻이 갈라져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먹고살기에 바빴던 이들은 속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던 이들은 눈치만 살폈고 투사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까 고민에 고개만 들었다 떨구었다.


대장이라고 불렸던 포수는 중국 땅을 돌아 먼 러시아까지 가게 되었고 대장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모습이 되자 강제로 카자흐스탄까지 이주당하였다.


무기력해졌다.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았다. 세상을 바꾸고 이치에 맞게 돌리고자 했던 열정은 차가운 타국의 땅 밑으로 묻히고 말았다.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아직도 그곳에 묻혀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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