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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아닌 짐이 된 아이들

[책] 경우 없는 세계

by 랩기표 labk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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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흔들린다. 그러나 모두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잠시 흔들렸다가 곧 평정을 되찾지만, 어떤 이는 끝없이 추락해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왜 세상은 소수에게만 달콤한 열매를 허락할까?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고, 미래는 또 다른 현재다.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개념 속을 헤맨다. 회개하며 이전과 다르게 살겠다며 매번 다짐하지만, 몸과 영혼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것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흔들리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은 어른에게도 어렵지만,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가혹하다.


어른들은 더 흔들리는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하나의 숙제를 던진다. 팍팍한 하루를 선사하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살도록 강요한다. 순응하는 아이에게는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궤도를 벗어난 아이들에게는 불량식품에나 쓰일 법한 단어를 덧씌운다. 어쩌면 집을 나선다는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최후의 발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어른들이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 역시 결국 어른의 책임이다.


소설 『경우 없는 세계』에서는 '경우'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주인공 인수는 경우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경우는 보육원을 뛰쳐나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다시 세상에 편입되려 애쓴다. 그것이 인수에게는 애처롭다기보다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이처럼 큰 불행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당황한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우를 대하는 어른들은 그를 성숙한 인격체로 존중했지만, 인수는 그러지 못했다. 인수는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했고, 세상과 원만하게 지내는 법을 몰라 항상 미움을 받았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경우는 목표가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엄마와 함께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의 현실은 사랑의 결핍이 아니라 단순히 경제적 문제였고, 돈을 벌면 언제든 엄마와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반면, 인수는 목표가 없었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고, 똑똑하지 못한 아들을 삶의 오점으로 여겼다. 참다못한 인수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어머니에게조차 '너는 왜 그러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렇게 인수는 무너졌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낙인이 찍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경우와 함께했던 가출팸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로부터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 삶의 힘이 아닌 짐이 되어버린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약한 아이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바깥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감내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은 강도, 원조교제, 구걸 등의 방식으로 삶을 연장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그들은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가?'


모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 간단하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어른이란 바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존재다. 특히 부모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를 그저 '아이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자기 기준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자기 객관화나 환경을 지배하는 법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가까운 존재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인수의 부모가 그의 아픔을 제대로 알았다면, '하나만 묻자,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우의 엄마가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했다면, '곤란하게 찾아오지 마'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출팸의 가장 큰 원인은 가정문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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