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그런 거 없어요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Q.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과학자, 경찰관, 대통령, 공학박사, 음악가, 연예인, 건축가, 유투버, 공무원
...
그런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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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두세 번도 울리기 전에 껐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느 모르겠지만, 눈을 뜨고 알람 소리를 기다리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것 같다. 얼음땡 놀이처럼 침대 구석에서 가만히 쭈그리고 누워 있는 나의 몸은 알람 소리로써 해방된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엄마는 아침을 챙기느라 바빴고, 아빠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일어났냐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응" 한마디 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차려진 아침을 대충 먹고는 전날에 챙겼던 책과 준비물은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가방을 열어봤다.

"오늘은 몇 시에 와?"
엄마가 설거지를 하며 물었다.
"글쎄... 학원 갔다가 오면 9시쯤 되지 않을까."
나는 뭘 또 새삼스럽게 묻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답했다.

학교에서는 딱딱한 수업을 소화하고 쉬는 시간을 틈 타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했다. 이해 못할 교칙들과 방황이 멋이 되어버린 친구들의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사이에 밖은 석양이 내려 앉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평소와는 다를 바 없는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었다.


수학은 언제나 어려웠지만, 담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더 어려웠다. "세상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경쟁이야 경쟁" "이것 봐 x가 어떤 값 사이에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야." "잘 봐 마이너스 값이면 어떻게 돼. 계속해서 밑으로 떨어지는 거야. 그러니깐 계속해서 긍정 에너지를 뿜고 열심히 해야 돼" 같은 말들을 무수히 내뱉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수업 전에 할 일이 있다며 내어 준 설문지였다.



Q.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평소에 세심하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시던 어른들이 웬일인지 우리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다섯 가지 질문이 적혀 있던 종이 위에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몰랐다. 주변 아이들은 저마다 떠들며 서로가 뭐라고 적었는지 확인했고, 선생님은 자기 인생도 커닝하냐며 핀잔을 주셨다. 방황을 즐기던 멋스러운 아이들은 무조건 간지가 있어야 한다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직업을 적곤 했다. 나는 조용히 그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종이 위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했다.

'장래희망은 도대체 어떤 공식으로 풀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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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걱정은 앞서지만, 그래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침에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씻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다. 언제 그렇게 키가 컸는지 모르겠다. 키가 딱 내 반만 할 때 안아주고 뽀뽀하던 모습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이렇게 훌쩍 커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대견스러운 건 사실이다. 가족을 꾸리면서 퇴근하고 저녁은 꼭 같이 먹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아들 녀석이 언제나 나보다 늦다. 녀석에게만 탓할 수만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깐.



다들 그렇게 쫓기 듯, 소속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사니깐. 결국 낮 뜨거운 현수막이 붙은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보, 아들이 장래희망이 없데."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적당히 담아 식탁에 내려놓으면서 아내가 말했다.
"응? 왜?"
나는 되물었다.
"글쎄, 오늘 담임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는데, 지상이가 장래희망이 없다고 했다네. 선생님은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성실한데 장래희망이 없어서 큰일이라며 엄청 걱정하는 것 같더라고..."

아내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봤다. 나는 뭐가 되고 싶었고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었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누군가와 마땅히 장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나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책들은 호전적인 성격의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라고 알려주곤 했다. 나는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배웠고, 책대로 행동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먼 미래에 대해서 큰 희망을 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지금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라는, 마치 슈퍼 히어로 같은 능력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담배도 피워보고, 술도 마셔보고, 원하는 페스티벌에 가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도 나누어 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사업도 해보고... 등등 역시나 책 속에 있었던 이야기 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밝히지는 않겠지만, 나는 결국 학창시절 노트 한 켠에 적었던 장래희망대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특정한 직업군이나 구체적인 형편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감정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에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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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왔어?"
나는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동적으로 인사했다.
"네... 피곤해..."
항상 같은 대답이었다. 돌아보니,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루 12시간 넘게 교과서와 학습지에 시달리며 주변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사준 책들은 읽히지 않은 채 문제지로 비좁은 책장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청년들이 원하는 직업 1순위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 이런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거창한 꿈을 요구할 수 있을까.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생활을 하는데,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아들, 우리 이번 주말 놀러 갈까?"
방문을 열고 잠시 누워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니 과제해야 돼."
아들은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한 번 빼먹으면 안 돼?"
"아니, 무슨 아빠가 이래. 아들 공부한다는데 방해나 하고. 그리고 주말에는 늦잠 자는 게 제일 행복한 건데, 왜 또 방해하시려고 그러시나."

아쉬움과 함께 방을 나왔다. 그리고 나도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에는 또 다른 설문의 결과가 있었다. 청소년이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1위 세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