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영화] Magic in the Moonlight
죽은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미국인 심령술사 소피는 엄마와 함께 유럽을 떠돌며 죽은 자를 불러와 산 자를 위로하고 밥벌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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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화장기에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한 늙은 여인과 그녀의 아들 그리고 몇몇의 지인 들이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젊고 이쁜 심령술사를 중심으로 손을 잡았다. 몇 개의 초가 방안을 겨우 밝힌 모습은 영혼이 찾아오기 쉽게 하기 위해서는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심령술사는 눈을 감고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한다. 감은 두 눈 뒤로 안개가 자욱한 곳을 지나 영혼이 선명해진다는 순간이 오자 그녀는 영혼에게 예는 '한 번' 아니요는 '두 번' 소리를 내어달다는 부탁을 한다. 곧이어 어딘가에서 '툭'하고 소리가 울리자 늙은 여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다소곳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여보, 평생 나만 사랑했었나요?"
"툭"
"오! 핸리 감사합니다. 나도 그럴 줄 알았어요. 웬 늙은이가 당신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하지 뭐예요. 그런 일 없었던 거죠?"
"툭"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사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한번 감격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오!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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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링수는 마술사다. 유럽인들은 그의 현란한 마술쇼에 열광한다. 엄청난 숫자의 객석이 가득 채워진 런던 어느 극장에서 중국인 모습을 한 웨이링수는 마지막 마술을 보이고는 무대 뒤로 퇴장한다. 퇴장하는 길에 마주치는 보조 출연자들에게 약속된 연출이 어긋난 것에 대해서 독설을 퍼붓는다. 그를 알아보고 싸인을 받으러 찾아온 팬들에게는 멍청한 짓이라며 무시한다. 분장실. 가발을 벗겨낸 얼굴엔 표독스러운 표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옛 동료가 찾아오자 그제야 조금이나마 친근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 역시 마술사인 친구는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심령술사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모두 거짓이라고 한다. 거짓을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직업을 가진 그는 엉터리 같은 친구의 말을 비웃는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을 증명해보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자신을 키워 준 이모 집이 있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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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세상이다. 합리적인 판단. 합리적인 행동. 합리적인 가격.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인 합리는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우리가 옳다고 약속한 기준에 부합되는가를 따져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신을 부정하고 개인주의가 성행인 요즘을 이끌어온 합리가 주류인 세상이다. 신에 대한 절대복종과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공리주의 사상 등에 대해서 나름의 비판과 대안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를 잊지 마라. 나를 잃어버리지 마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를 맹종하는 웨이링수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고 생각한다.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을 썼던 다윈의 추종자다. 보이지 않는 것은 허상이고 허상은 뇌를 죽이며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좀비 같은 인간을 만들 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그에게 영혼과의 대화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실현 불가능한 것을 두고 사람을 현혹하는 것은 불의였고 그에겐 응당 처벌해야 되는 죄였다.
그런 그의 직업이 마술사라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대 위에서만 허용된다는, 비합리적인 사실은 합리적인 약속 아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으로 따지면 퍽 이성적이라고 변명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철저한 이성주의자인 그가 마술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한 편으로는 비현실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친구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웨이링수가 아닌 어릴 적 이름 스탠리였다. 스탠리는 두 눈으로 소피의 심령술을 확인하자 믿기 어려운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형이상적인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자신을 길러 준 이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신에게 기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곧 그의 신념이자 종교인 이성을 되찾으며 이 모든 일들이 친구와 심령술사 소피가 계획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이렇게 하나의 사기 사건으로 끝날 것 같던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삶이 불완전하고 모순적이고 기적적이 듯이 스탠리는 심령술사 소피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만큼 비이성적인 것이 있을까? 어쨌든 그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 빠지고 만다. 소피가 진짜 심령술사라고 믿었던 그 순간 그녀와 함께 했던 날들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스탠리에 이모는 대답한다.
어떻게 허접한 너의 논리로 그녀의 미소를 설명할 수 있겠니
나는 스탠리 이모의 대사에 깊은 공감을 했다. 설명할 수 있지만 설명하기에는 벅찬 것들이 많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좋고 싫음의 문제로 나타날 때. 누군가의 아픔을 두고 숫자로 표현하고 효율성을 따질 때.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는 삶이 언제나 기적처럼 다가왔으면 좋겠다. 황홀한 색이 펼쳐지는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싶다. 그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의도 그리고 귀퉁이부터 중앙까지 세심하게 따지고 들어간 획이며 배치 들에 대한 분석은 알고 싶지 않다. 문득 작가의 가슴에 옮겨 붙은 신의 목소리를 만취한 사람이 춤을 추듯 신나게 붓을 휘날렸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 순간의 행복이 그 작품의 전부다. 그리고 보통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러한 순간들에 내게도 찾아오거나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1920년대를 주요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우디 앨런 영화답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화면과 귀를 홀리게 하는 재즈. 배우들에게 사전 연습 없이 현장에서 대본을 읽히고 즉흥적으로 전개되는 장면을 찍고 순식간에 편집을 해버리는 스타일의 영화는 그래서인지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디 앨런의 성추행 파문으로 남자 주연 배우인 콜린 퍼스는 이 영화를 끝으로 그의 영화에 다시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양녀와 결혼한 우디 앨런의 기행을 보면 성추행이 사실일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다 떠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그의 작품에 훌륭한 배우가 다시 출연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이 나를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맞든 틀렸든 어쨌든 나는 당신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유명한 미국인 목사 빌리 그레이엄이 신을 부정하는 우디 앨런에게 했던 말이다. 한 인터뷰에서 우디 앨런은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