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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하고 있나요?

[리뷰] 워킹데드

by 랩기표 labkypy

좀비는 처음부터 싫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 산 자를 공격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고 그로부터 발생되는 사건들은 나에게 어떠한 영감도 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좀비물 콘텐츠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징그럽고 끔찍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을 기피할 것 같은 아내가 한마디 했다.

"오빠, 워킹데드 봤어?"

다소 어이없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답했다. 나보다 더 좀비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설득이 너무 의외라서,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볼까 하는 호기심으로 워킹데드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지난여름부터 약 4개월 동안 매일 2~3회분을 몰아보면서 시즌1부터 시즌9까지의 정주행을 마쳤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이 드라마는 美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과 같은 외적으로 흥미로워 보이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 개인 성향상 나는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현실을 빗댄 상징적인 요소들, 즉 인간문제를 어떤 소재로 무슨 이야기로 풀어내었냐는 것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본 리뷰는 드라마가 관통하고 있는 인간문제에 대한 요소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나와 같은 비좀비 성향을 가진 여러분께 이 드라마를 놓치지 말라는 권유이다.


주인공 릭 그라임스는 경찰 출신이다. 범죄 검거 도중 총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였지만, 좀비 세상이 도래한 후 깨어나게 된다.


[1] 좀비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나타난다. 좀비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산다는 것이 특정 목표를 지향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 '살아났다'는 그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좀비는 오로지 사람을 먹기 위해서 움직인다. 뇌가 부서지기 전에는 몸이 갈려져도 식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인간의 목덜미나 사지를 물어뜯는다. 물리고 뜯겨 죽은 사람들은 다시 좀비가 되어 또 다른 생명을 위협한다. 인간 특유의 복잡한 서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진다. 좀비는 계속해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인간은 상대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주인공 릭은 그런 좀비가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Walker라고 부른다.

이것은 예견된 문제라기보다는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에 가깝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쓰나미에 속절없이 떠밀려 나가는 인간 문명의 나약한 모습이 오버랩된다. 재앙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는 오로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이다. 하지만 이 좀비라는 재앙은 쓰나미처럼 한 번에 밀고 사라지는 단발성이 아니다. 또한 더 큰 재앙을 예고하는 경고 성격도 아니다. 사람들 곁에서 항상 맴돈다는 점에서 동시다발적이고 완성형이다. 종말과도 같으며 따라서 극복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작은 희망에 이끌려 숱한 위험을 겪은 후에 좀비를 피하고, 유인하고, 죽이고, 가두는 식의 생존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어느새 좀비 무리로부터 안전망을 구축하게 되고 생존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릭과 네건의 전쟁을 암시하는 포스터,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전환을 압축하여 보는 것 같다.



[2] 인간


이후부터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좀비뿐만 아니게 된다. 인간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생존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문제는 생존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이다. 크게 보면 생존이란 같은 목표를 두고 있지만, 방식은 달랐고 갈등은 붉어진다. 누군가 독재를 하며,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계급을 나누어 역할을 분담하게 하는 것이 안정된 조직의 필수요건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문제의 필연처럼 느껴진다. 절대 선과 악의 경계가 더욱 흐려지면서 모두가 자신은 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스스로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합리화한다.

생각의 차이는 각자의 리더를 탄생시키고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다. 시즌 중반부터 좀비는 부가적인 문제가 된다. 자연파괴와 에너지 남용이 가져다 오는 환경적 위협에 대해 우리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전쟁에서 좀비는 때때로 활용되기도 한다. 문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살아남는 문제는 좀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시즌9. 새로운 적이 나타난다. 마치 길을 만드는 칭기즈칸의 군대가 성을 쌓고 사는 국가를 만나는 것 같다.


[3] 삶


전쟁에서 승리한 무리는 또다시 분열된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새로운 적이 생겨나는 전쟁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가 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고 어떤 해결책을 가져왔는가에 따라 그 정체성이 유기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 릭이 생존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흥미롭다. 대부분이 생존을 위해서는 높은 담벼락, 총, 칼과 같은 무기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위험할 때 남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내가 어떤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것은 결국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은 비이성적 폭력과 강압으로 인해 눈 앞에서 동료가 죽어가더라도 절대 그 믿음을 잃지 않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에도 무너진 터널 안에서 좀비를 뚫고 동료를 구한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동시에 성장한다.

반면, 독재는 불합리와 부패를 가져오게 되고,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며, 무너진 신뢰의 빈틈을 피로 메운다. 결국 남는 것은 권력 쟁취를 위한 싸움만이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릭과 동료들은 자신들을 겁박하고 구속하는 독재자는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싸움은 누군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로 길들여진 사회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명으로 인도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릭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독재자 네건을 죽이지 않고 가둔다. 그리고 흩어진 공동체가 조금 더 수월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전쟁 중 부러진 다리를 다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주 중요한 장면. 설명은 줄인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 언제나 아이는 인간의 미래다.


[4] 남은 과제


최근 시즌10이 시작된 이 드라마가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르겠다. 다만, 새로운 문명의 탄생 또한 인간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상호 신뢰와 품격이 바탕이 될 것이라고 예측해본다. 고난과 고통이 넘치지지만 그 안에서 사랑과 가족은 다시 피어오른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멤버들을 앞서가려는 조짐도 보인다.

그때, 갑자기 이 흙구덩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생존자가 있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유롭다. 누군가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살면서 당면한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첫 번째이겠지만, 어쩌면 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네건과 릭의 싸움도 하늘에서 보면 하나의 코미디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생명을 건 치열한 투쟁이었다. 비웃고 조롱하며 착취의 역사를 남긴 그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들의 죽음마저 장난 같은 것. 가스실로 데려나고 산채로 묻고 성노예를 삼고. 비현실적인 사실이 현실이기에 더욱 비통하다. 어쩌면 우리가 이 인간문제를 지식인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 여태껏 세상을 이끌어 온 것은 이성과 지성의 목소리가 아닌 힘과 권력의 폭력이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를 보호하고, 미래를 창조하며,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고 오늘의 몫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보기 힘든 우리네 사정을 돌아보면서 묻게 된다. 지금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내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 홀로 집에’와 ‘러브 액츄얼리’를 챙겨보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 릭 그라임스는 러브 액츄얼리에서 스케치북을 넘기면서 사랑 고백을 하는 그 인물과 같은 배우다. 아내는 그의 연기를 보고 계속 충격이적이다고 내뱉었다.

매 번 한 편이라도 더 보고 자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다.


영감받아 만든 곡을 트레일러 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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