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특별하다면 분명, 당신 때문입니다

[거제도] 철구와 아이들 겨울여행

by 랩기표 labkypy

모임 ‘철구와 아이들’의 겨울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4가족이 돌아가면서 계절마다 여행을 기획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가족 차례였다. 장소는 거제도, 컨셉은 크리스마스였다.


행사가 며칠 남겨 두지 않은 채 겨우 에어비엔비로 적당한 숙소를 골랐다. 마당이 딸린 복층 구조의 주택이었다. 호스트가 남긴 소개글에는 아이들과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있는 곳이라고 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타인의 정과 사랑이 머물렀던 곳이라서 그런지 샘플로 올라온 사진에서 이유모를 따쓰함이 느껴졌다. 가족 여행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호스트에게 미리 연락해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하룻밤이지만 즐거운 추억을 위해서 집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분리해서 차에 실었더니 꽉 찼다. 너무 밝은 조명 때문에 장식을 충분히 살리지 못할 것 같아서 작은 거실 등도 앞 좌석 빈틈에 꾸역 밀어 넣었다. 철구형네와 우리는 약속한 시간에 마트에 모여 필요한 먹거리를 샀다. 숙소에 도착해 들어가니 집안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 어느 가정집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방은 세 개였고, 거실과 부엌 사이 경계에는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테이블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높은 의자에 앉아 과자와 과일을 먹었고 어른들은 다음날 아침 라면을 끓여먹었다. 분명 이 집 주인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부엌 입구에는 싸구려 압축봉에 꽃무늬 커튼을 달아두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보이는 대로 당기는 바람에 빼두었더니 그만의 아늑함을 잃어버렸다.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는데,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그곳에 있던 인형을 들고 나와 꽤나 즐거워했다. 다음날 아침 슬쩍 들어가 보니 창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인상 깊었다.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주황색 조명으로 반대쪽 구석을 밝혔다. 늦게 합류한 멤버들은 우와 트리가 있네라며 한번 놀라고, 직접 들고 왔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랬다. 아이들이 달라붙어 장식을 마무리했다. 꼭대기에 별까지 올렸더니 그럴싸하게 보여 흐뭇했다.


거제도에 겨울이 오면 모두가 굴구이를 먹으러 간다. 조선소를 등지고 산을 넘어 한적한 시골 한구석으로 차로 30여분 들어가면 굴 생산지가 있는데 그 길 옆으로 굴을 솥에 넣어서 삶아 먹을 수 있는 가게들이 여럿 있다. 11월부터 1월까지 제철이라, 알이 크고 맛도 있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굴구이를 포함해 튀김, 탕수육, 죽 등이 코스로 되어 있고 한 명에 만 오천 원이면 아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우리도 별미를 찾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저녁을 맛있게 챙겨 먹고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트리는 더욱 밝게 빛났다. 나는 다 같이 둘러앉아 준비한 게임을 하기 위해서 모두를 불러 모았다.

“자, 지금부터 여러분 각자 가족들에게 올해의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빈 상장 종이에, 상장명과 이유를 적으시기 바랍니다.”


다들 생각지도 못한 프로그램에 놀란 눈치였다. 30여분 뒤에 각자 적어온 상장을 ‘철구와 아이들’ 모임명을 대표하는 큰 형, 철구형께서 대독 하여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먹상, 최고 엄마상, 최고 남편상 등 아주 다양한 이유로 상이 수여되었다. 상을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상을 나눠 받은 가족은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승준이는 엄마에게 상을 주면서 울먹거려 모두가 울컥했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거창한 꿈과 계획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그 모습이 불안하고 우스워 보인지만, 아주 뜨겁고 거침없던 날들이었다. 무용이 대용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해보이는 것들이 역설적으로 더 멋있어 보일 때가 많다. 그 순간을 즐긴다는 것.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멋진 일인가. 그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보내고자 하는 열정은 때때로 경이롭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에게는 무가치한 수고를 애써 감수하며 내 옆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만큼 더없이 값진 행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꿈과 열정이 휘발된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런 모습으로 전이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켜니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튜브에서 시대를 앞서 간 가수라며 조명받고 있는 양준일이 등장했다. 사회자가 50대의 양준일을 향해 20대의 양준일에게 한 마디 하시라고 했고 곧바로 그는 대답을 했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걱정 마 준일아... 모든 것은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어."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그저 겸손한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 되겠다는 것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 울컥 한 건 나뿐만 아니라 옆에 앉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크고 강하게만 살아가다 내 옆에 가장 소중한 누군가의 따뜻한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마침 짐을 정리하다가 크리스마스 카드가 한 장 나왔고, 살짝 열어 한 마디 적어서 트리에 달았다.


'내 삶이 특별하다면 분명, 당신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