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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던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by 랩기표 labkypy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여백이 많았다. 말과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있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으로서 빈 여백 속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채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 남자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미소와 음성으로 오히려 남은 자들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착하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런 그에게 다림이라는 여자가 찾아오면서 마법 같은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름이 참 특이했다. 티코를 타고 다니며 불법주차를 단속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또래와 달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끄러움이 많았다. 불만도 잘 표현하지 못하고 투덜투덜 애원해보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낡고 작은 사진관에서 일하는 멋진 웃음을 가진 아저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았다. 굳이 붙이자면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데”라는 운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맞다. 세상 모든 것이 운명이자 기적이 아니면 또 무엇일까.

그녀가 사랑한 시한부 인생의 사진사는 매 순간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지만 억울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이불 밑에서 꺼억꺼억 울기도 한다. 새어나온 소리에 문 밖에서 먼 하늘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해 ”나 곧 죽는다”며 농담처럼 고백하고, 시비가 붙어 끌려간 파출소에서 소리도 질러본다. 친구들과 마지막 우정 사진을 찍기도 하며, 자신이 없어지면 불편해질 주변 걱정도 하며 가끔 짜증을 낸다.

그녀는 그런 그와 지금의 말로 ‘썸’을 탄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이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쏟아지는 건 똑같다. 무심히 팔짱을 끼고 어둑한 골목길을 걸은 다음 날 그는 갑자기 사라진다. 예상하다시피 그가 쓰러졌다. 이후 사진관은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애타게 그를 기다리다가 결국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둔 채 걸음을 멈춘다.

그 편지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영화는 ‘초원 사진관’을 멀리서 두고 자신의 마지막 영정 사진을 찍은 주인공 남자 목소리로 ‘마지막까지 사랑을 품고 살아갈 수 있었어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끝난다.

나는 이 작고 귀엽지만 슬픈 기적 같은 이야기를 보는 내내 진한 색의 물감이 물통 속에서 서서히 풀리며 바닥에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지난 일은 추억이 되고, 다시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종료된 세상 모든 일들을 추억 속으로 밀어 넣고 싶은 건 아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영원히 그 안에서 숨 쉬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도 있다. 이러한 집착이 삶을 일으키거나 무너뜨리기도 한다. 신은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보고 가끔 비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기억을 나의 발밑으로 떨어뜨려 즈려 밝고 지나갈 때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눈물이 슬프기도 하지만 위안도 되니 역시 신의 장난 같다.

이쯤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지금 나는 어떤 순간을 사는 것일까.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던데.” 그래 나도 사자자리였다. 오늘도 역시 기적이지 않을까. 갑자기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심히 옆에서 쿡 찔러보고 돌아보는 얼굴에 뺨을 비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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