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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Oct 08. 2018

20년 후의 나에게

유대력 5779년 나팔절, 느리게 쓰는 편지

Photograph by 이요셉


1.     

오래된 나라가 새해를 기뻐하는 밤,

이십 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의 나는 

일흔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존대를 해야 할까, 평대를 해야 할까.       

   


2.     

이십 년 전 그러니까 지금의 절반, 청년이던 나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스스로 위대해지고자 안달하며 시간을 다 쏟아부으며

정의롭다고 우쭐대던 때.

꽤 흔한 비밀을 발견했었다.     


국가도민족도이념도

다 사라질 거야.

사람만 영원해.

     


이천 년 전 폭로하신 그분의 계시가

소리에서 울림으로 오기까지 이십 년, 

이제 알아듣고 끼익.

우두커니 멈추었다. 드디어 자유를 맞았다.     


구름이, 환영(幻影)이 흩어지듯

불타 없어질 만유의 그림자 세계. 

    

그분은 너를 통해 일도성취도

기적도 원하지 않으셔.

널 원하셔.

     


그분의 목적이 그저 ‘나’라는 걸 

깨달은 순간, 청년의 순례를 마쳤다는 걸 안 순간

비로소 그대가 궁금했다.     


아흔, 여든, 일흔의 그대가 기다리는 이 고개가

중년의 순례길 초입이라는 걸 안 순간

‘영원한 하늘’을 봐야 할까, ‘사라질 땅’을 봐야 할까.     



3.     

그대 그곳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는, 내 늙은 동생은 안녕하신지,

결혼했는지, 이사했는지, 많이 웃었는지, 많이 사랑했는지,

워치만 니와 CS 루이스를 다 찾아 읽었는지, 

영적 전쟁을 다룬 오컬트 소설을 완결했는지, 행복한지,

아는 게 많은 사이라 물을 게 많다.     


다만 보이는 그대의 형상(形像)

은발(銀髮)은 지각을 밝히시는 빛을 닮아 희었고,

입가 미소의 주름은 함께 걸어간 갈보리처럼 좁고 근사하다.

흠뻑 기쁨으로 펼친 가지처럼 온몸을 가냘프게 지탱한

뼈와 가죽의 거룩한 낡음이여!     


훌훌 껍질 벗고 그렇게 낡아지러, 

그대 닮은 이들과 가겠다. 함께 가겠다.     


살아 기껏 며칠 혹 몇십 년, 

예수님 앞에 설 반드시 또 언젠가,

그분의 시선과 동행이 여전하시므로,

구원이다. 안심이다.

   

그대에게 가는 이십 년, 

주님 앞에 아름다운 날들로 밀봉(密封)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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