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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Oct 01. 2019

주인공

주인공으로 살기를 원하는 나에게...

SNS를 통하여 알게 된 학자가 있다. 

친구 신청을 한 그의 프로필 사진이 너무 무서워(?) 보여서 한동안 수락을 하지 않고 있던 나는, 어느 날 그의 포스팅이 상당히 지성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수락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묵자, 손자, 노자, 한비자 등 제자백가 책을 11권이나 펴낸 30대 중반의 젊은 동양 철학자였다.

그가 마침 제자백가 철학 강좌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나는 당(唐) 나라 배경의 역사소설을 쓰는 중이라 중국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고자 수강 신청을 했다.     


‘조금 늦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강사의 문자를 확인하고 강의실에 들어간 나는 방을 잘못 들어간 줄 알고 다시 나와야 했다. 학생들이 너무 고령이었다. 강사인 학자는 30대인데 학생들은 백발의 70대부터 60대, 50대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더구나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모 교수님도 학생을 자처해 그 수업을 듣는 것은 물론 매주 김밥과 음료수를 챙겨 와 우리를 섬기는 것이 아닌가.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은 70대 최고령 어르신께서 세팅해주시는 풍경이 워낙 생소했다.     

알고 보니 그 모임은 가난한 학자를 세우기 위해 강의료를 내는 강좌를 만들어주자는 어르신들이 꾸리신 공부 모임이었다. 그를 세우기 위해 기꺼이 학생이 되어주신 분들. 

젊은 학자를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진짜 어른들이었다.   

  

*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작가의 후일담을 들었다. 

주연 배우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원작에는 없던 주인공의 전사(前史)를 써서 분량을 늘리다 보니 극의 메시지가 기획의도와 다르게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배우는 극의 메시지보다 자신의 캐릭터가 중요했고, 그것을 관철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드라마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지 않을 겁니다."     


*


‘이 세상 주인공은 나야 나’를 외치는 시대이다.

자신이 주목받고, 자신이 세워지는 것이 성공이라 여겨지는 나라.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나를 채근하는 기간이 시작되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을 소망하는 나는 ‘금과 은이 없는 누추함’ 보다는 ‘일어나 걸으라’로 일어난 기적에 으쓱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은근슬쩍 뭉개고 나를 나타내는 의뭉스러움이 있지는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던 중에 지붕을 뜯어내고 줄에 매달린 침상째 내려진 중풍 병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중풍 병자의 침상을 들고 달려간 네 친구.

우리는 네 친구의 믿음을 부러워하고 그러한 기적을 꿈꾸지만, 누구도 그 침상에 누워있던 중풍 병자가 되기는 꺼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치욕을 감당하고 누워있던 중풍 병자일 것이다. 그는 무력하게 누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나, 철저하게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높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 앞에서 땅에 글씨를 쓰신 예수님이 떠올랐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군중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땅에 글씨를 쓰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돌판에 두 번이나 새겨주신 율법. 그 율법이 바로 ‘나야 나’라는 의미의 퍼포먼스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 율법이 본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시고, 선택하신 것은 십자가였다.

모세의 돌판에 율법을 새기시고, 그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내신 십자가.

그 치욕의 형벌을 담당하신 분.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오직 하나님 한 분이 주인공’이라며 사랑으로 섬기시고 승리하시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엑시트>에서조차 주인공들은 옥상에서 자기들을 구하러 오는 헬기를 향해, 학원에 갇힌 아이들을 먼저 구하라고 온몸으로 화살표를 만들던데. 

내 삶이 그리는 화살표는 누구를 ‘주인공’으로 향하고 있을까?     

비록 비천하고 누추할지라도. 나를 통하여 주님께서 친히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믿으니 감사와 기쁨이 넘칠 수밖에. 


우리는 ‘주인공’만 확실히 기억하면 된다.    

 


하나님의 영광은 일을 숨기는 것이고 

왕들의 영광은 일을 살피는 것이다. 

[잠언 25:2. 히브리어 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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