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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린 May 08. 2024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힘이라면

나는 원래 차를 몰고 다니는 걸 싫어했다. 30대 남자치고는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드림카도 따로 없고, 드라이브할 때 다들 느낀다는 해방감도 잘 모르고, 속도감을 즐기지도 않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만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운전을 할 때는 캠핑장을 가거나, 삼촌이 운영하고 계신 병원에 치료하러 들를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하면 45분으로 줄일 수 있다 해도 되도록이면 대중교통 쪽을 선택했다. 자동차 애호가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정적이고 따분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랬던 내가 요즘 들어 운전이 익숙해지다 보니 제법 여기저기 쏘다니는 편이 되었다. 원래 운전 자체를 싫어하고, 부담을 느끼던 원래의 내 성격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다. 어느 정도냐면 면허를 딴 지는 5년이 지났는데, 올해 주행한 거리를 합한 게 지난 4년의 합보다 많을 지경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주행 중에 느끼는 피로가 반감되고 부담감을 많이 덜게 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왜 운전할 때, 그토록 큰 부담을 느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렇게 운전을 싫어했을까?




나는 사실 탈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터 익숙했다. 자전거를 처음 탔던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7살 때 네발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에 금이 갔었음에도 퇴원 직후 바로 두발자전거를 도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운전 자체를 겁내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전거를 거의 내 수족처럼 다루면서 오래도록 타고 다녔음에도 내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그게 오토바이였다. 분명 날렵하고, 멋있고, 자전거랑 비슷한 익숙한 외형임에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느껴졌다. 오토바이 사고에 대한 뉴스 등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접해서였을까? 저 강력하고 빠른 탈것에 사람이 맨몸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마치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억지로 다루는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 오토바이에 비해 자전거는 동력원이 사람의 다리다 보니, 낼 수 있는 속도에 크나큰 한계가 있다. 물론 좋은 다리를 갖고 있거나, 좋은 자전거를 가짐으로써 일반적인 자전거를 뛰어넘는 속도를 낼 수는 있으나 끽해봐야 60-70km 정도다. 자동차 뒤에서 공기저항을 줄인 채 진행하는 챌린지가 아니라면 100km는 꿈도 꾸기 힘들 정도다. 그에 반해 오토바이는 300km까지도 달릴 수 있다. 사실 100km만 되어도 이미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아득히 빠른 수치다만, 그 걸 훨씬 뛰어넘는 속도에서 실수 한 번 했다가는 목숨은 모닥불 옆 나방 한 마리처럼 가볍게 사그라드는 거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인해서 나는 자전거처럼 인간의 몸을 동력원으로 쓰는 탈 것과 엔진을 사용하는 탈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머릿속에서 구분 지었던 거다. 내 안전에 대한 가치관의 상당수가 이런 느낌인데, 어차피 100% 안전할 수 없다면, 죽을 바에는 다치는 쪽을 선택하는 거다. 물론 이 가치관에도 모순은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가치관 하에서 자동차 운전은 감당할 수 있는 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분명 오토바이만큼 혹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가 자동차다. 게다가 차 안에 있을 때야 내가 자동차 프레임에 보호를 받지만, 만약에 내가 실수를 해서 누군가를 친다면, 그 사람은 맨몸으로 1톤이 넘는 쇳덩이에 치이는 거다. 황소나 코뿔소에게 치이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크게 다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러다 보니 내가 운전을 배우고 나서도 공도에 나갈 때 모든 감각이 날카롭고 예민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남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지가 항상 운전할 때 따르던 딜레마였다. ‘과연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평생 실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로 위의 어떤 미친놈이 잘 운전하는 나를 들이박는 천재지변 같은 억울한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등등의 잡다한 고민들이 운전대를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장시간의 운전 후에 탈진하도록 만들었다.




어릴 적에는 안전장치를 신뢰하지 못했었다. 무언가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안전장치가 작동해야 하는데 그 안전장치마저 고장 나서 작동을 안 한다면? 그래서 그 안전장치가 작동 못 할 경우를 생각해서 안전장치의 안전장치를 고안했는데, 천재지변급 확률로 이것마저 작동을 안 한다면? 아마도 이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면 영영 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아무리 안전장치의 안전장치의 안전장치를 만든다고 한들, 결국 최악의 확률이라는 것은 등장하기 마련이니까.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운전할 때마다 나를 괴롭힌다. 분명 나는 아직도 내가 실수하든 남이 실수하든 큰 사고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 년간의 운전을 통해서 변한 점이 있다면, 너무 과도한 신경을 써봤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미하다는 걸 인정한 거겠지. 난 어쨌든 좌회전 우회전 신호 열심히 줘가면서 최대한 안전운전 할 거고, 고속도로에서는 화물차를 앞뒤에 두거나 나란히 달리는 일은 최대한 피할 거다. 졸리면 바로 졸음쉼터로 뛰어 들어갈 거고, 어차피 난 술은 안 마시니까 음주 운전을 하게 될 일도 없다.


만약에 이렇게 조심해서 운전했음에도 갑자기 길가에 고라니가 뛰어 든다거나, 취객이 바닥에 누워있다거나, 혹은 터널 속에 있는데 화물차나 버스가 졸음운전으로 내 차선을 다 밀어버린다면, 그걸 대체 내가 어떻게 막겠는가? 정말 억울하고 화나겠지만, 내가 온 정신을 집중해서 10초마다 룸미러를 본다고 해도 그 사이에 사고가 나면 답이 없는 거다. 운전할 때는 전방주시가 최우선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도 좀 다르게 접근하게 된다. 사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던 자전거도 잘못 몰아서 머리부터 부딪히면 즉사할만한 위험성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인도에서 자전거도로로 건너가던 중 보도블록이 파여있어서 그걸 밟고 앞으로 텀블링하듯 구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머리가 깨져 죽든 목이 부러져죽든 했을 거다. 하지만 천운으로 그때는 마침 헬멧을 끼고 있었다. 물론 나는 웬만하면 항상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려고 하지만, 만약 그때 가볍게 동네마실 나간다고  헬멧을 안 쓰고 나갔더라면, 난 향년 25세쯤에 세상을 떴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요즘들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조금 더 느슨하게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모든 걸 문제없이 다루려고 하다보니 점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글도 그 때문에 오랫동안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생각하고 써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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