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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린 Jun 25. 2024

생활 속 UI/UX: 탑뷰 주차와 게임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차들은 ‘어라운드 뷰(Around View)’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위에서 차를 내려다보는듯한 화면과 함께 주차할 때, 주변 상황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후진주차 시에 조수석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보면서 한 손만으로 주차하던 클래식한 방법과는 달리, 센터 패널에 있는 그래픽만 봐도 돼서 목도 안 아프고, 시야 확보도 더 뛰어나서 너무나도 좋아하는 기능이다. 물론 운전면허 시험에서는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없지만, 실제 운전에서는 이 기능에 익숙해져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울 아버지께서는 아직 이 기능이 불편하다고 하신다. 어라운드 뷰가 분명 편하기는 한데, 반응이 늦는 것 같다는 거다. 그런데, 옛날부터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0.1초만 랙이 걸려도 바로바로 알아채던 게이머의 눈으로 봐도 딜레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왜 아버지는 카메라가 늦게 반응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10년쯤 전 어라운드 뷰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어릴 적에 내가 했던 게임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많이 했던 GTA2라는 게임이었다. 지금의 GTA가 익숙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당시에 이 게임은 탑뷰(Top view) 시점으로 진행되던 게임이었다. 마치 드론이 위에서 항공촬영을 하듯, 정확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 말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반적인 레이싱 게임은 운전석 시점이나 3인칭 후방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플레이어는 마치 실제로 운전하는 것처럼 3차원 공간을 경험한다. 언덕을 오르내리고, 주변 풍경이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 GTA2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2차원 평면 위에서 게임이 진행되어, 기존의 3차원적 깊이감과 원근감이 사라졌다. 직접 차를 운전한다기보다는 마치 지도 위에서 말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 괴리감 덕분에 그저 게임 속 시점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너무 어색한 나머지 적응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GTA2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어색해서 이리박고 저리박고 난리도 아니었다. 탑뷰를 처음 접하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그나마 GTA2를 통해서 어라운드 뷰 시점에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이런 시점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셨을 거다. 차에 이 기능이 생긴 이후로는 정확한 거리감 표현 덕분에 자주 사용하시긴 하시지만, 여전히 실제 감각과의 괴리를 느껴서 당황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시야와 모니터에 표시되는 탑뷰 시점 사이의 차이가 손과 눈의 협응을 방해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뇌는 실제 주행 감각과 어라운드 뷰 화면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재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지연이 마치 카메라의 딜레이처럼 느껴지셨던 게 아닐까 싶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평’ 단위 대신 ‘제곱미터’를 쓰게 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당장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6평 자취방의 크기도 ‘제곱미터’로 즉각 환산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일 뿐만 아니라 한때는 게임 개발자였던 입장에서, 현실과 게임 속 시점의 괴리감을 떠올려보면 흥미롭다. GTA2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탑뷰 시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단순히 X, Y 좌표만 있는 2차원 평면에서 게임을 구현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개발자들은 그런 제약사항들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가상 세계를 현실과 동기화시키려 노력해 왔고, 다음 작품에서 결국 숄더뷰(Shoulder View:카메라가 플레이어의 어깨 뒤편에서 관찰하는 시점)로 진화했다. 원래부터 탑뷰 시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기술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최대한 현실적인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GTA의 개발사뿐 아니라, 다양한 게임 회사들은 저마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점을 시도해 왔다. 그들이 만드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창의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방법으로 메워왔고, 가상 세계를 묘사하면서 검증된 방식은 결국 오프라인에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기존에 사용하던 4000만 원짜리 컨트롤러 대신 채택된 Xbox 컨트롤러로 잠수함을 조종하는 미 해군.


그리고 개발자들의 노력들은 게임 세상 밖으로 나와 실제 세상의 기술에 접목되기까지 한다. 어라운드 뷰는 운전석의 제한된 시야를 뛰어넘어, 차량 주변의 모든 사물을 보여주기에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군의 잠수함에는 Xbox의 컨트롤러를 사용한다. 비록 이런 편의성 기술들이 모두 게임에서 처음으로 ‘시작’ 된 것은 아닐지라도, 게임개발자들이 더 재미있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위해 갈고닦아 개선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게임회사를 퇴사한 지는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게임의 편의성 개선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던 때가 떠오른다. 게임 쪽으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알게 된 UI/UX라는 직군에 재미를 느낀 뒤, 요새는 업무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편리함을 증대시키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면서 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에세이 위주로 써오던 브런치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상 속 발견에 대한 이야기들도 더 많이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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