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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관에서

잠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브레인포그를 하드리셋하는 나만의 방법

by 진하린
며칠째 야근인지 모르겠다.
기획팀의 문제인지 아니면 대표의 변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개발 중인 게임의 기획이 갈아엎어진 지도 벌써 3 번은 넘은듯 하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엉터리 기획서를 골머리를 싸매가며 나름대로 해석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업 다 해놓고 보니 여기에다가 기획서에 없던 기능을 추가하고 싶단다. 그래서 깔끔하게 정돈까지 해놨던 디자인에 누더기같이 신기능을 덧붙여야만 했다. 그렇게 2주를 열심히 작업해 놨는데, 이젠 이걸 처음부터 다시 뒤집겠다고? 이 인간들이랑 일하다 보면 예수님이 삿대질하고 부처님이 주먹을 들게 만드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포괄임금제 때문에 야근수당도 없다. 그나마 야식은 지원해 주는데,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야근하며 시켜 먹다 보니 내가 좋아하던 피자랑 치킨을 볼 때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한다. 나름 취미가 운동이라 킥복싱장을 꾸준히 다녔었는데, 최근 2주간은 근처에도 가질 못했다. 그나마 이 말도 안 되는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를 샌드백을 치면서 해소했는데 그마저도 막혔다. 운동을 못 하는데, 매일 같이 야식을 먹다 보니 뱃속도 더부룩하고, 머릿속도 더부룩함이 차올랐는지 시야가 탁해진다.


그나마 현재 일정의 끝을 알 수 있으면 캠핑장이라도 예약했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주말 출근이 거의 예약되어 있다시피 한 상태에서 1박 2일을 자리를 비운다니, 쥐콩만한 스타트업에는 나를 대체할 인력이 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회사 전체에서 디자이너는 나 혼자 뿐이거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녀석이 멍청해졌나 싶을 정도로 느려지고 버벅거릴 때가 있다. 보통은 RAM이라는 놈이 가득 차서 그런데, 컴퓨터 용어라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결국은 기계라는 것은 사람을 모방해 만든 것이 아니던가? 사람도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둔해지는 거랑 똑같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이렇게 느려지고 버벅거리는 컴퓨터는 재부팅을 하면 보통은 좋아진다. 그러면 사람도 자고 일어나면 컴퓨터처럼 깔끔하게 재부팅이 될까? 보통은 가능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면 이 방법조차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01-31-2025-14.17.43.png RAM이라는 놈도 사람의 머리도 결국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면 둔해지고, 버벅거리기 마련이다.


왜 잠으로도 리셋이 안 되느냐? 그건 바로 크런치모드 때문이다.

게임업계에는 크런치 모드(Crunch Mode)라는 오래된 관행이 있는데,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빠르면 10시, 늦으면 사무실에서 자야할 때도 있다보니, 이 기간동안에는 일상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삶 자체가 일로 가득 차버린다. 운 좋게 집에 들어간다고 해도 마치 플러그를 뽑은 가전제품처럼 기절해버리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의식이 있는 내내 일만 하기 때문에 잠을 자면 체력만 보충될 뿐, 머리는 계속 회사에, 업무에 머물러 있는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머리를 초기화시키기 위해 회사 일이 자꾸 생각나 버리는 이 굴레를 한 번 강하게 끊어줘야만 하는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내 나름의 특약 처방은 영화관으로 가는 것이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실과 거대한 스크린.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있기는 하지만, 그들과는 일절 대화하지 않는다.

광고가 끝난 뒤 조명이 꺼지고, 암실은 어둠과 정적 속에 파묻힌다. 침묵이 슬슬 어색해질 때가 되면 스크린에서 다시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와 동시에 귀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때려대는 웅장한 사운드가 암실을 가득 메우며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난 극장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다. 영화라는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감을 한 가득 올릴 수 있는 그 잠깐의 정적과 어둠은 현실 세계에서 영화 속 세계로 전송되는 느낌을 준다. 삶은 연속적이고 내 의식이 깨어있는 한 나는 항상 현실의 문제들과 얽메여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세계로 전송되면 나는 대재앙에 맞서거나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하는 더 큰 일을 하기도 하고 사춘기 소년이 되어서 연애편지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기도 한다. 현실에서의 걱정거리들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 된다.

내일 출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한가득 담은 채 10분동안 고민하다가 잠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잠으로는 이런 연속성을 깨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처럼 삶의 연속성을 깨뜨리고, 현실 세계의 걱정과 고민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 이것이 잠과 구분되는 극장의 가장 특별한 힘인 것이다.


maxresdefault.jpg 극장에서만 4번을봤던 매버릭. 인생영화중 하나다.

재작년에 개봉한 ‘탑건:매버릭’을 볼 때였다. 고전적이고 클리셰 가득한 영화였지만, 실제로 아이맥스 카메라를 전투기에 실어서 찍은 영상은 내가 정말 전투기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되고 입이 바싹바싹 말라서 콜라를 들이켰고, 분명히 편한 의자에 앉아있음에도 F-14 전투기를 타고 적국의 전투기를 따돌리는 주인공과 함께 특유의 복식호흡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의 후배 파일럿이 격추당했을 때, 그 파일럿의 생사를 나도 모르게 걱정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는 마치 직접 전투기로 작전을 수행한 것 마냥 녹초가 되어버린 모습으로 엔딩 크레딧을 올려다본다. 전신에 힘이 빠져서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흡족하다. 마치 열심히 운동하면서 땀을 흘렸을 때처럼.


지저분한 실타래처럼 꼬였던 내 머릿속은 재부팅이 된 컴퓨터가 다시 쌩쌩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초기화가 된다. 분명 머리를 비우기 위해 청소기를 돌린 것도 아닌데, 이미 비워져 있다. 그저 일상에서 탈출해 스크린 속으로 잠깐 다녀왔을 뿐인데, 마치 컴퓨터를 종료하기 전에 켜져 있던 인터넷 창이라던가 게임 등이 재부팅 후에는 다 꺼져있는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고, 현실에 있는 많은 골칫거리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비록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잠시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돌아오니 대부분의 문제는 그저 ‘많이’ 밀려 있었을 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동안에는 영화관에 가는 일이 굉장히 줄어들었었다. 1년에도 스무 번 정도는 영화관에 가던 내가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편도 영화관에서 보지 않을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때는 꼬인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어서 상당히 허덕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해결될 문제들이었기는 하지만, 영화관만 한 번 다녀오면 금방 풀릴 것들을 몇 주 넘게 끌고 갔던 적도 있어서 매우 답답했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도 영화를 보려고 시도했지만, 영화관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기는 매우 힘들었다. 집 안에서는 핸드폰을 끌 필요도 없었고, 영화관 수준의 암실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날 터치하지 않는 관객들과 달리 내 고양이들은 자꾸 내게 안겨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현실 세계와 영화 속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해버렸다.

이런 일이 있고서야 깨달은 거지만 내가 영화관에 가는 진짜이유는 현실에서 벗어나 가상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었나 보다. 분명 똑같이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내가 영화에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는 횟수도 줄어들고 영화에 대한 애정도 많이 줄어들었었는데, 코로나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니 극장에서 마스크를 쓸 필요도 없어지고, 창고에 쌓여있던 영화 재고도 많이 풀리게 되었다. 그래서 요새는 재미있는 영화가 한 달에도 서너 편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자꾸만 극장으로 찾아가게 된다.




여름 동안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꽤나 많이 쌓였었는데,
조만간 또 머릿속을 재부팅 하러 영화관에 가야겠다.
어떤 영화를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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