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많은 모드가 있어도 지루하고, 아무리 많은 취미가 있어도 외롭다.
나는 취미가 많다. 마치 스카이림이라는 게임의 모드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덧붙여가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쉬지않고 뭔가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다양한 걸 하는지, 에너지가 대단하다고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왜 이토록 취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스카이림'이라는 게임이 있다. 출시된 지 10년도 더 지난 오래된 게임이지만, 독특하게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게임이다. 혼자서 즐기는 ‘싱글플레이’ 게임임에도, 높은 자유도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모드'라는 추가 콘텐츠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모드들을 보다보면, 문득 내 라이프스타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로 플레이 게임이라는 점과 모드가 다양하다는 점이, 짝 없이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과 취미가 많다는 점에 묘하게 대조된다. 마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게임이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만 같다.
킥복싱, 레슬링, 복싱, 클라이밍부터 캠핑, 요리, 베이킹, 그리고 게임과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컨텐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배우거나 경험하며 살았다. 심지어 작년 말에는 손목만 멀쩡했으면 뜨개질을 배우려고 했다. 마치 게임에 새로운 모드를 설치하듯, 삶에 새로운 취미들을 더해가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다양한 모든 것을 경험해보는 거, 나쁘지 않잖아? 에너지만 남아있다면 적어도 심심할 일은 딱히 없으니까. 내가 가진 취미들로만 사이클을 한 바퀴 돌려도 1년은 후딱 지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취미를 즐겨봐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텅 빈 집이다. 마치 스카이림의 메인 스토리를 끝내고 난 후와 같다. 아무리 새로운 모드를 설치하고 2회차, 3회차 플레이를 시도해도, 이미 결말을 아는 이야기에서는 더 이상 설렘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장난감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내가 정해둔 각본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지만, 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취미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은 상호작용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만의 취미 라이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로운 취미를 더해도, 마치 오래된 게임처럼 흥미는 조금씩 바래간다.
처음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면 언제나 설렘이 가득하다. 킥복싱을 배우면서 샌드백을 처음 쳐 봤을 때의 짜릿함, 클라이밍에서 정상을 찍을 때의 성취감, 캠핑장에서 맞이하는 자연풍의 선선함.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의 공허함이 완전히 채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마치 게임 모드를 설치할 때처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면 이번에야말로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결국 모든 취미는 같은 궤도를 그린다. 처음의 설렘, 중간의 몰입, 그리고 마지막의 권태. 이제는 이것들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처음 가보는 여행지도 이전에 봤던 풍경의 변주일 뿐이고, 새로 시작한 운동도 익숙한 동작의 재배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설렘은 사그라든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 보이는 것만 같아 더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권태로워진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그토록 많은 취미에 집착했는지. 혼자만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면 외로움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모드를 설치해도 결국 혼자 하는 게임일 뿐이었다. 이제는 단순히 재미있는 취미가 아닌,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가 느끼는 설렘과 감동이 아직 선명할 때, '와, 이거 정말 멋지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미소로 화답해줄 사람.
만약 그런 누군가가 있다면, 어쩌면 이 모든 취미들은 더 이상 권태로운 반복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될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