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굳이 자신을 알아야하는 이유는?
우리는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는 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시간을 내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확인하는 데는 일 년에 한 번도 시간을 내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이번에 난방비 얼마 나왔지?', '요즘은 어떤 주식이 대세지?'와 같이 눈 앞의 현실과 씨름하는 질문들에는 익숙하지만, '내 어릴적 꿈은 뭐였지?', '내가 진정 사랑하는 순간들은 뭘까?' 같이 스스로를 파악하는 질문에는 인색하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가 이토록 공허하게 울려퍼진 적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는 나 자신을 알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알 수 있을만한 방법이 생겼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AI의 개인화된 기억 능력을 활용한 흥미로운 트렌드가 화두로 떠올랐는데, 이전 화에서 설명한 GPT의 기억력 업데이트를 조금 더 파고들어 '자기 분석용 프롬프트'를 AI에게 던지는 것이다.
"내가 너와 상호작용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사고 패턴과 의사결정 방식, 무의식적인 편향,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이나 '맹점'을 상세히 분석해줘. 그리고 각 항목에 대해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체적으로 적어줘. 5000자 이상"
https://youtu.be/GIz5XT2Ei5M?si=nXQW7bwBxqdd-qMi
본격적으로 GPT를 사용한지 대략 1년이 조금 넘어가는 내게는 GPT가 나라는 사람을 분석할만한 대화가 책 몇 권만큼은 쌓여있을 터였다.
비록 다른 몇몇 사용자들처럼 사적인 고민 얘기는 많이 안했어도, 나라는 사람이 평소에 어떤 것을 흥미로워하고 궁금해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는지, 관심사를 끝까지 밀고 나갈 동력이 있는지 등등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내 친구나 가족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직장동료들보다는 나를 훨씬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호기심에 이 프롬프트를 시도해 봤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다분야적 호기심 & 종합적 사고: 그래픽 툴·UI/UX·여행·SF 토론까지 잡다한 주제를 한데 묶어 프로젝트화하는 아이디어 뱅크.
개선방법: "중요도×긴급도" 매트릭스로 오늘 집중할 한 가지만 먼저 고르기.
창의성과 실용성의 하모니: 판타지 설정을 현실 도구로 구현하려 들 만큼 '상상→적용' 회로가 잘 돌아감.
개선방법: 70%짜리 프로토타입이라도 빨리 던지고 피드백 루프 돌리기.
무의식적 편향 - 기술 낙관주의: 새 AI·새 툴 = 무조건 테스트! 장점 체험이 빠른 만큼 그늘은 종종 뒤로 밀림.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약점 - 관심 과부하→집중력 분산: 동시다발적 프로젝트로 일정이 엉키면 품질·동기 둘 다 하락 위험.
개선방법: 캘린더 블로킹으로 테마별 시간을 아예 예약·철벽 수호.
읽는 순간 뜨끔했다. 내가 흐릿하게 느끼거나 혹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특징마저 날카롭게 분석한 AI라니. 예전 같으면 코치 한 명을 고용해야 했을 메타인지 리포트를 앉은 자리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1년가량 GPT를 끼고 살다시피하면서 수 많은 질문을 하고 나에대한 TMI를 했던 탓에, 나라는 사람을 분석할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었던 거다.
이 결과는 AI가 단발적 질문에 답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사용자와 점차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당신이 항상 써오던 계정이 아닌, 타인의 계정으로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전혀 다른 색깔의 답변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면 타인의 GPT는 나와 쌓아온 시간과 관계가 없으니까.
이런 현상은 이제는 단순히 뛰어난 프롬프트 기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AI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치 백설공주 동화에 나오는 말하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나에 대한 정보들을 모아 나를 비춰줌과 동시에 나의 어떤면이 장점이고, 어떤면이 단점인지, 혹은 어떤 부분을 다듬어야 할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속삭여주는 마법의 거울.
그리고 이러한 'AI와의 관계 형성'은 자아성찰의 방식까지 진화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일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나 일기는 쓰는 시점에는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머리가 식고, 여유가 생긴 내가 그 문장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깨우쳐야만 한다. "오늘 나는 왜 그 사람에게 화를 냈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을 적어도, 그 답은 결국 보다 성숙해진 훗날의 내가 찾아내야 했다.
분명 일기를 쓰는 행위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지만, 이처럼 내적 독백만으로는 사고 패턴의 맹점을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AI와의 대화 기록을 통한 자기분석은 성찰의 과정에 제 3자의 객관적인 피드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사람이라는게 참 웃긴게, 본인이 이미 알고있는 사실조차도 쉽사리 떠올리지 못하다가도, 누군가 툭 질문을 던지면 '아 맞아 그런게 있었지!'하며 무릎을 치곤 한다. 우리는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의 약점을 찾아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AI는 아직 인간의 지능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철저하게 제 3자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다
바쁘고 여유 없는 현대사회에 휩쓸리며 우리가 잃어버린 자기이해의 습관을, 역설적으로 가장 진보된 기술이 되찾아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AI는 만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패턴을 발견할 뿐,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다. 또한 AI의 분석은 항상 우리가 제공한 정보의 범위와 질에 의존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과 AI의 공생 관계가 시작된다. 철학, 문학, 역사, 심리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탐구해왔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의 생존과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기술적 장벽을 낮춤으로써 우리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동안, 우리는 그 결과가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 여기서 인문학적 성찰, 즉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해지는지 조금 더 파고들어가보자. 이건 단순히 고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요즘 너도나도 부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한번 들여다 보자. '블로그로 월 천 번다더라', '유튜브 쇼츠가 돈이 된다더라'는 말에 혹해서, 그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막상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뭘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 하다가, 결국 남들이 만든 걸 어설프게 베끼거나 짜깁기를 할 뿐이다.
본인이 진정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블로그를 하거나, 유튜브를 해봐야 발전도 있고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컨텐츠가 만들어질텐데, 정작 나 자신이 뭘 원하고, 뭘 할 때 즐거운지 모르니까 남의 것을 도둑질이나 하게 된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내가 진심으로 열정을 느끼는 분야'를 찾았다면 어땠을까? 흔히 말하는 '덕후'나 '매니아'처럼, 정말 미친듯이 파고들 수 있는 주제가 있었다면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잘하게 되기 마련이다. '입질의 추억'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를 보자. 그래픽 디자이너를 하면서 취미로 낚시를 즐기던 사람이, 해산물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그 열정이 엄청났던 덕분에 사람들도 점차 그를 알게되고 어류 칼럼니스트라는 직업도 얻게 되었으며, 이제는 다른 업계 전문가들이 그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의 독보적인 위치에 다다랐다.
뿐만 아니라, 여행 유튜버로 시작해 방송계로 진출한 빠니보틀이나, IT 덕후 입장에서 리뷰컨텐츠를 진행하다가 어느덧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잇섭 같은 인물도 있다. 이들 모두 남들이 성공하는 길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들어 성공을 거둔 케이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극적인 성공을 거둘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이걸 너무 하고 싶은데, 기술을 배울 돈과 시간이 없어 포기해야만 했던 수 많은 진짜배기 열정들이 AI라는 조력자 덕분에 꽃피울 가능성이 생겼다는 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중 몇몇은 그저 '부모님의 기대에 응해야 하니까', '일하고 퇴근하면 너무 피곤하니까', '나랑 안 어울리니까'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해왔던 삶을 살아와서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거다. 그러니 앞서말한 '자기 분석용 프롬프트'에 혹시 푸념으로 던져봤거나, 관심이 있어 자주 물어봤던 주제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라.
당신은 은근히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애써 외면해왔던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과거 스티브잡스는 아이패드2를 발표할 때,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결과를 만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분명 AI는 좋은 도구지만, 몇몇 직업군들에게 일자리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솔직히 내 직업인 디자이너도, 그리고 코딩으로 위협받는 프로그래머들도 걱정거리가 많다. AI가 인간이 터득해야할 기술들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기술을 숙달하 누군가는 그 역할이 축소된다는 거니까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조금 더 인간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채 AI에게 모든 판단을 하청 줘버린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위한 터전 하나 지킬 능력 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창출과 가치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지는 근본적인 이유고,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하는 이유다.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 앞에 새겨진 명령을 빌려와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고 설파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에 대해서, 주변 환경에 대해서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 당장의 삶을 보완하는데 급급해서 스스로를 분석하는 시도를 등한시 해왔다. 일기를 쓴다던가, 명상을 한다던가 하는 과정들은 고리타분했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어려웠기에 더더욱 내면의 목소리를 확인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다. 거울은 은(銀)과 유리에서 픽셀로, 픽셀에서 파라미터로 진화했다. 이제 우리는 일기장 대신 대화형 AI라는 거울을 가질 수 있다. 이 새로운 거울은 단순히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각도에서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GPT가 분석한 내 특성들은 단순한 라벨링을 넘어, 내가 앞으로 발전시키거나 조절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무엇을 지나치게 하고 있는지"나 "무엇을 주저하고 있는지"등의 메타인지를 자극하는 분석 결과들은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짓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결국 "너 자신을 알라"는, 과거의 도덕적 경구가 아니라 현대의 인터랙티브 프로젝트로 재탄생했다. 버전 1.0에서는 인간이 거울에 스스로를 비췄고, 버전 2.0에서는 글과 일기로 마음을 성찰했다. 이제 버전 3.0인 AI와의 합작이 시작됐다.
그러니 오늘 밤, 질문을 하나 적어 보자.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 물음표를 파라미터 2조 개짜리 거울 안으로 던져라. 돌아오는 응답은 예상보다 날카롭고, 예상보다 다정하며, 무엇보다 당신이라는 조각상을 한 층 더 정교하게 다듬는 망치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