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30분이 되면 아이들이 설핏 잠든 침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켠다.
미욱하게도 포켓몬 빵을 영접하기 위해서다.
현재 포켓몬 빵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마트 순례 및 편의점 점주와의 모종의 거래, 인터넷에서 세배의 가격을 지불, 포켓몬 빵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물류차를 쫓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마트를 다녀올 기상조차 없는 워킹맘한테 적당한 타협점은 마켓컬리가 최선일 것이다.
그렇다고 집안 방구석에서 편하게 포켓몬빵을 구매할 수 있을까?
5.4일~지금까지 한 시간 가량을 수백 번의 새로고침을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도 구매 불가가 돼버리고, 간신히 결제 진행까지 넘어갔으나 불쑥 카드 취소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겪으며 딱 한개의 포켓몬 빵을 수령했을 뿐이다.
마켓컬리의 울리지 않은 '입고' 알림을 불신하며 10시 30분부터 이불속에 숨어 빵을 구매해야 하는 것은 어떤 의무감일까?
흔히들 포켓몬 빵의 '띠부씰'로 불리는 포켓몬 스티커를 수집하기 위한 즐거움으로 위 무모한 레이스를 펼친다지만 나는 그저 둥이한테 포켓몬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몇 달 전 놀이하듯 동네 곳곳 편의점에 들러 “포켓몬 빵 있어요?”를 외친 수난이 있었는지 포켓몬 빵 한 개에도 “엄마가 첫번째로 포켓몬 빵을 받은 거야?”하며 줄 서는 장면을 묘사하는 아이들한테 포켓몬 빵의 실체를 더욱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의 쪼는 맛을 주는 빵'으로 집중하기에는 포켓몬 빵에 대한 사회적 신드롬이 그저 수집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지경에 와버렸다.
포털 검색창에 '포켓몬 빵'을 검색하면 수많은 경제지에서 입을 모아 포켓몬빵 마케팅을 찬양 중이며, 유튜브의 수많은 채널에서도 포켓몬 빵 관련 콘텐츠를 여전히 제작 중이다.
그 이면에 포켓몬 빵이 입고되는 시간에 무당횡단으로 교통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포켓몬 빵 신드롬'으로 역대 1분기 최대 실적 기록한 삼립의 부당 노동 행위 개선을 위한 임종린 씨의 단식투쟁‘등 포켓몬 빵 하나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진실에는 숨음이 많다.
거기에 더 서서히 인지하지 못하는 갑갑함은 포켓몬스터가 일본 캐릭터라는 것이다.
얼마 전 유니클로에서 이탈리아 유명 패션 브랜드 마르니 원피스 컬렉션으로 아침 7시부터 오픈런 줄이 늘어진 기사를 보며 한 바가지로 욕을 했던 걸 상기하면 나름 일본 불매운동을 자부하는 상황에서 포켓몬 빵만큼은 '악의 없는 즐거움'으로 유행에 쫓겨다니던 모습이 감당이 안된다.
모순의 나날이 계속 되던 날
저녁 외식을 마치고 '그저' 포켓몬 빵을 찾으러 편의점을 들어갔다, 물품이 들어오는 시간과 맞아 떨어져 눈앞에 놓여진 박스까지 뒤지며
(아르바이트생의 호된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포켓몬 빵을 찾는 아이를 보며 마침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 정도면 됐다"
몇 달간 포켓몬스터 빵을 구입하는 과정이 즐거웠다면 결과를 따질 필요 없이 좋았다고 그래도 그 과정이 부자연스러워 한번은 멈추고 싶었다고...
오늘 뜻하지 않은 대운을 시작으로 우리 가족의 포켓몬스터 여정은 끝이라고..
포켓몬 빵을 들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앞세우며 시원하게 숨을 내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