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다.
현재 가장 화두의 중심에 있는 스포츠인이라 하면 아마도 손흥민 선수가 아닐까? 토트넘과의 재계약 협상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흥민 선수는 축구장 안에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축구장 밖에서는 겸손하다 못해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인성까지 갖추고 있다. 토트넘을 알리는 가장 뛰어난 홍보대사가 되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가장 큰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이 노숙자 문제이다. 무려 3년 넘게 손흥민은 아무도 모르게 익명으로 영국 도시 곳곳에 무료 노숙자 급식소 40곳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스트를 쓰고 자원봉사까지 꾸준히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무료급식소는 3만 명 이상이 그 혜택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고 한다. 이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개인이 스스로 한 봉사활동은 최초의 일이다. EPL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주관하는 자원봉사 참여로는 데이비드 백컴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손세이셔널 (Son-sational) 신드롬은 뜨겁다. 지금도 너무나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손흥민 선수는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된다.
세이버메트리션 Sabermetrics 통계, 분석에 의하면 프로 수준의 선수의 경우 데뷔는 신체능력의 최전성기인 10대 후반~20대 초이고, 만 26~28세 즈음에 전성기를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30대에 육체적으로 체력이 급격히 쇠락하며 퍼포먼스를 유지하기 힘든 에이징 커브 (Aging Curve)에 접어든다. 대부분의 스포츠인들의 은퇴 나이는 30대가 된다.
스포츠인으로서의 생이 너무나 짧다 보니 현재의 선수 모습 이외에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의 30대 은퇴는 일반인에 비해 너무나 짧다. 왔던 길보다 오히려 가야 할 길이 더 길게 남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2의, 제3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일반인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스포츠인 중 가장 유명하고 여전히 기업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은 잭 니클라우스 회장님이 유일하다.
골프의 제왕 잭 니클라우스, 올해로 84세가 된 골프의 제왕, 빅잭 Big Jack , 골든 베어 Golden Bea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잭 니클라우스에게서 직접 듣는 성공과 사업 그리고 인생에 대해 경험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골프장을 많이 따라다녔다. 골프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아빠랑 함께 시간이 좋나 졸졸 따라다녔다. 주말이면 골프를 즐겨 치시고 좋아하셨던 아빠가 즐겨 보시던 골프 채널에 잭 클라우스는 항상 등장했다. 그래서 잭 클라우스 회장님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했다. TV에서만 봤던 세계에서 가장 탁월했던 골퍼를 진짜 만나 뵙게 된다니!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다. 그의 기록된 업적과 게임의 지속적인 우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잭 회장님은 전 세계적으로 120번의 프로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 챔피언십 기록은 18번의 프로 메이저 챔피언십 타이틀을 땄다. 마스터 6회, PGA 챔피언십 5회, US 오픈 4회, 오픈 챔피언십 3회로 여전히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프로 골퍼로서 남자 프로 골프 세계 4대 대회를 모두 석권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3번이나 달성했다. 그랜드 슬램(Grand Slam)은 선수가 활동기간 중 시즌에 상관없이 4대 메이저타이틀을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랜드 슬램에 단 1번만 우승을 해도 골프나 테니스계의 역사에 남는다. 선수로서 전 커리어에서 1번도 달성하기 힘든데 잭 회장님은 3번이나 달성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라 불리는 이유다.
총 18 개의 PGA 메이저 챔피언십 기록은 타이거 우즈보다 3번 더 우승했다는 의미다. 특히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만 치러지는 대회가 있는데 우승자에게 전임 우승자가 입혀주는 그린 재킷이 유명하다. 잭 회장님은 통산 6회로 최다 우승을 했다.
이런 괴물 같은 성과물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말하는 '성공'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끈기, 노력, 자기 관리, 절제, 헌신, 등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더 빠르게,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성공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음을 인지하는 시간이 빨리 올수록 더욱 성공에 성큼 다가서 있다는 경험을 했다.
잭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성공의 가장 확실한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회장님은 뵙기 전에 자료를 찾던 중 발견했던 인터뷰 내용은 얼마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셨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매일 한 시간 반을 체조와 등 운동을 한다.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평생을 어떤 한계와 싸우며 산다. 60세에 이르렀다고 그 투쟁을 그만두어야 하나? 우리가 저지르는 최악의 선택은 포기다. 어느 날 아침에 지쳤다고 느낀다면 몸과 마음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굴복하면 그 즉시 늙어갈 뿐이다.”
ㅡ 1998년 Masters Tournament에 출전, 58세 나이에 6위로 TOP 10에 든 역대 최고령 선수가 된 후 인터뷰에서
결국은 성공의 가장 밑바닥에는 나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것을 원하는가 이렇게 3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원하는 바를 절실히 원하면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해나갈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잭 회장님은 그의 아버지 찰리 Charlie와 놀랍도록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버지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멘토였다고 말한다. 보일러공의 아들이었던 잭의 아버지는 고향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와 그 주변에 여러 약국을 소유하게 되었다.
잭의 아버지는 세미프로 축구를 했지만 외아들이었던 잭 회장님을 위해 잭이 10살이 되었을 때 아들에게 골프를 포함한 다양한 스포츠를 체험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시간은 거의 아버지와 함께 약국 카운터에서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진학해 예비약학을 공부하고 보험 판매에도 성공을 한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외아들이었던 잭 회장님을 위해 1970년 2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낌없는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1961년 11월 21세의 늦은 나이에 프로 골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들으면서 떠오른 사람이 손흥민 선수와 손정웅 코치님이었다.
내가 특히나 관심 있었던 부분은 어떻게 프로 골퍼에서 사업가로 변신하셨나였다. 사업을 확장시키는 방식과 무엇으로 사업가의 입지를 다졌느냐가 가장 궁금했다.
지난 50년 동안 닉클라우스 컴퍼니스 Nicklaus Companies의 사명은 골프 경험을 향상하고 창립자인 잭 니클라우스 회장님의 경력과 삶에서 확립된 높은 기준을 반영하는 '고품질 브랜드 제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적으로 제공한다'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가장 잘하고, 잘 아는 분야를 선택한 것이다.
2007년 하워드 밀스타인 Howard Milstein과 파트너십을 맺고 Nicklaus 브랜드를 체계화하는 것 이외에도 Nicklaus Children's Health Care Foundation 및 자선 단체를 돕기 위한 기부에 전념하는 제품 및 파트너에게 '되돌려주는 브랜드'라는 철학을 함께 이어나갔다.
골프업계에서 유명한 GOLF Megazine 포함하여 GOLF.com을 포함한 여러 골프 계열사들을 설립하였다.
그가 디자인한 골프 코스만 해도 전 세계 500곳이 넘는다. 말도 안 되는 수치다.
디자인 한 코스는 대부분 미국에 있지만 아시아, 호주, 캐나다, 유럽 및 멕시코에서 골프 코스를 설계하기도 했다. 2009 년 Nicklaus Design은 Golf Digest의 "75 개의 북미 최고의 골프 리조트"에서 12개의 코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론칭하고 7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제품은 마케팅 및 라이선스가 포함되어 있다.
골프 코스 책 (Golf My Way, 골프 교육의 모든 고전 중 하나), 자서전 ( My Story ), 골프 코스 설계 방법 및 철학에 관한 책을 저술했으며 여러 골프 비디오를 제작했다. 역시 책은 전문가로서 권위 authority 입지를 다지는 데 꼭 필요한 듯하다.
오하이오 주에서 설립된 Memorial Tournament 운영하며 이 기념 토너먼트는 30년 이상 전국 어린이 병원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570 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어린이 생활 프로그램, 소아 종양학 지원 팀 및 Safe Kids 프로그램을 통해 4,000 명 이상의 입원 아동과 그 가족에게 무료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 토너먼트를 개최한 이유 중 하나는 가장 개인적인 일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7개월 된 손자가 온수 욕조에서 사망을 한 슬픈 경험으로 아이들의 생명에 더 큰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92 년에 설립 한 Nicklaus Golf Equipment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Nicklaus Golf Equipment는 Golden Bear, Jack Nicklaus Signature 및 Nicklaus Premium의 세 가지 브랜드로 장비를 제조한다. 이 브랜드는 골퍼의 다양한 단계에서 골퍼를 목표로 설계했다..
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현실적으로 빠른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사업 전체를 보는 분석 능력과 수익화 전략이다 보니 제 관심은 잭 니클라우스의 사업적인 확장에 제일 귀가 쫑긋! 했었다.
84세에도 너무나 열정적이시고 건강한 삶을 보내고 계신 잭 니클라우스 회장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프로 채워진 삶을 살았고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큰 구설수 없이 살아온 사생활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하신다. 여전히 가족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 생각하시며 가족이 평안하지 않으면서 밖에서 평안할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84세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잠시 미래를 상상해 보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잭 회장님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챔피언이 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알게 되면
누구나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승할 수 있다.
잭니클라우스
챔피언에게서 배우는 챔피언다운 방법은 '돈'에만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 본질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비기너들이
스윙의 기본을 이해하기도 전에
스코어를 따지려 든다.
이것은 걷기도 전에 뛰려는 것과 같다.
잭 회장님은 자선가로서도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 수단을 활용해 왔다. 특히 어린이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50년간 헌신해 오셨다. 2004년에는 아내 Barbara와 함께 Nicklaus Children's Health Care Foundation을 공동 창립했다. 재단은 15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억 달러 (1300억)을 모금했으며, 그 영향으로 유명한 마이애미 아동 병원과 마이애미 아동 건강 시스템이 NIcklaus Children's로 브랜드가 변경되었을 정도다.
이 병원은 119개의 외래환자 및 긴급 치료 센터가 포함되어 있다. 2005년에는 대통령 자유 메달, 2015년도에는 의회 금메달, 2015년에는 링컨 메달을 받은 최초의 스포츠맨이자 역사상 네 번째 인물이 되었다.
잭 회장님처럼 특출 난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것뿐만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 준다'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환원의 규모가 크든 적든 말이다.
어디선가 봤던 글귀가 생각난다. 모든 사람에게는 내재된 능력이 있다. 세상에는 2가지 형태의 사람이 있다. 내재된 능력이 무엇인지 발견해 사용하고 있는 사람과 '아직' 그 능력을 찾지 못한 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찾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잭 회장님을 만나면서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아들과 아버지가 있었다. 손흥민 선수와 손정웅 코치님이었다. 스포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관계에서 더욱 그랬다.
’ 잭 니콜라스‘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버지가 있었고, 매 경기 멘탈을 단단히 잡아주는 코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속적인 훈련의 반복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셨다. 본질에 충실했고, 자기 관리를 통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셨다고 하셨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저녁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항상 9시, 10시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는 손흥민 선수. 남몰래 해온 선한 행동들. 그런 아들의 모습은 칭송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쉽지 않은 행동들을 하는 두 부자를 보며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번져 더욱 퍼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물질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훈련,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얻은 능력으로 받은 것을 베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 여정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손흥민만큼이나 자기 절제와 겸손함의 끝을 보여주시는 손웅정 코치님. 언제 가는 그분의 만나 뵙고 꼭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때가 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