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압박'은 이제 그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슬퍼서 우는 눈물에는 독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슬프고 힘들 때는 눈물을 통해 스트레스와 독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웃음뿐만 아니라 눈물도 신이 주신 선물이다. 기억하자.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하는 일도 우는 것이다.
한국인은 유독 감정표현에 서툴다. 외국물을 23년째 먹어본 나 역시 부정적인 감정표현이 특히 힘들고 자유롭지 않다. 외국 생활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사 표현하는 것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면은 많이 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적인 표현은 여전히 어렵다. 앞서 얘기한 정신과 의사 진료를 통해 내가 감정을 누르기만 했지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걸 또 한 번 뼈아프게 경험했다.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더욱 감정을 참고 억눌렀고 눈물을 흘리지 못하니 몸이 대신 울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몸 안에 고스란히 감정들이 쌓여있고 없어지지 않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나오니 몸은 종합병원 그 자체로 변하는 것이다. 우린 왜 이렇게 감정표현을 못 할까? 슬프거나 힘들어도 왜 울지 못할까?
감정표현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사회통념과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아이들이 울면 어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말을 한다. '울지마', '왜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뚝 그쳐'라고 감정조절을 하라고 한다. 어른에게도 힘든 감정조절을 우리는 아이에게마저도 '감정표현'을 못하게 인색하게 군다. 더불어 우린 칭찬을 들어도 어색해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짓는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칭찬을 냅다 받으면 상대방이 나를 재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칭찬도 맘껏 받아내지 못한다. 웃음과 울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려 하면 '조용히 있어', '누가 그렇게 소란스럽게 하래'라고 아이에게 핀잔을 준다. 좋은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면 점잖지 못하거나 경거망동한다고 여기고 나쁜 감정을 표현하면 자기조절을 못 하는 모자란 인간이 되거나 약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감정표현 불능증 생길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그 얇디얇은 감정 허용의 공간 줄타기를 한다는 것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남자의 눈물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은 또 어떤가. 우린 유독 '남자의 눈물'에 야박하다.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픈 일이 있어도 남자는 '금지된 눈물' 압력이 들어온다. 눈물은 남자들에게 '금기'로 여겨졌다. 지금은 남자의 우울한 감정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낡은 성역할관념에 기반을 두어 신체적, 정신적인 나약함을 들어내는 것이 문제화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한국만 그럴까?
눈물의 건강학 기사에 따르면 램지재단 알츠하이머 치료연구센터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잘 울지 않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사회적 관념 때문에 남성의 우는 횟수가 여성의 1/5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눈물을 참는 남자는 결국 수명도 짧아진다는 무서운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남자의 눈물은 미국에서도 관대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스트레스 협회 회장 김동구 교수는 일반적으로 열 명 중 여덟 명이 집에서 울고(77%) 네 명은 혼자서 숨어서 우는데(40%), 우는 시간도 짧아서, 여 덞 명은 30분 이상 울지 않고 (80%) 6명은 저녁이나 밤에 운다고(56%) 한다. 한국 남성은 여성보다 우는 횟수가 7배가 적은데, 여성이 연평균 우는 횟수가 47회인데 남성은 7회에 불과하다고 한다.
눈물에 대한 강박관념
울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우린 생각보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게 된다. 심어준 무서운 노래가 있다. 단순한 노래 가사로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울면 안 돼' 노래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 원곡이다. 노랫말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으려면 울지 말고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울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메시지를 곱씹으며 성탄절이 올 때까지 고스란히 즐기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엔 선물을 안 주신인데요'로 더 무섭게 개사가 되었다. 아이들도 선물을 받으려면 울면 안 된다. 찰지게 입에 달라붙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최고의 노래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그럼 대체 '어쩌라고'가 절로 나오는 가사를 한번 보자.
You better watch out 조심하는게 좋을껄
You better not cry 울지 않는게 좋을껄
You better not pout 삐지지 않는게 좋을껄
I'm telling you why 내가 이유를 말해 줄게
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 산타할아버지가 지금 오시고 있거든.
_<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 노래 가사 중에서
아주 오래된 '들장미소녀 캔디' 노래도 잠깐 짚고 넘어가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울면 바보다
들장미 소녀야
나를 진료한 핀란드 정신과 의사에게 이 노래 번역해 보여 준다면 과연 캔디의 감정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할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캔디가 살았던 1980년대에 극심한 우울증을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외롭고 슬픈데 울지 않고 웃으면서 푸른 들을 달리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하기 힘들다.
한국인의 한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감정 '한(恨)'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울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은 그냥 감정 내키는 대로 쏟아내는 울음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참았다 우는 것은 인정해 준다. 철저한 절제를 통해 참을 대로 참다가 터트렸을 때 비로소 그 '한'이 표출되는 것을 인정해 준다. 문제는, 대부분 우린 너무 오래 참다가 화병이 될 때까지 참는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 특화된 화병이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에 ‘Hwa-byung’이라는 우리말 용어를 그대로 정신의학용어로 공식 등록되었을까. 화병은“한국민족 증후군의 하나인 분노 증후군으로 설명되며 분노의 억제로 인해 발생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한국 주부들에게 많이 발생하며 '화병은 한국문화 특유의 분노증후군'이라 정의를 내렸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한국 남자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고 얘기한다.
2019년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보건사회 연구소, 행복 연구소 공동 주최 국제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된 '한국의 울분'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속적 울분'을 느끼는 사람 32.8%와 '심한 울분'을 느끼는 10.7%를 포함해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으로 울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분을 느끼는 한국형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게 되어서 더 심각하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아픔을 무시 당사는 경우, 고부 갈등, 명절 증후군, 입시에 대한 부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회 정치적인 사안에서 공정의 기준에 어긋나는 일 등이 있다. 명백히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대우, 거부당하는 경험을 했지만, 그에 대해 반격할 여지가 없고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한 노보다 더 복합적인 감정이 함축된 것이다.
외국에서 말하는 분노 표출과는 다르게 한국에서의 분노는 훨씬 평화 지향적이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잔인한 복수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응축을 시켜 비폭력적으로 풀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복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약자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함을 안고 자가 폭력성을 자기에게 풀어내는 것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거쳤다.
한국의 전통적 '감정 절제'와 '억압 문화'는 우리 고유의 유교 사상이다. 하지만 울음을 울음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면 울고 풀어질 감정이 곡소리를 부르는 골이 깊은 한으로 가지 않도록 잘 울어줘야 한다.
눈물의 효과
눈물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로 '다이애나 효과'라는 것이 있다. 1997년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사망하자 영국인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영국 전체가 눈물바다에 빠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후 영국에서는 우울증 환자 비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 사건을 통해 눈물이 정신치유에 큰 역할을 한다는 '다이애나 효과'가 탄생했다. 이 눈물의 효과는 단연 가성비가 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라도 그동안 누르고 숨겨왔던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 봐야 할 일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울음에도 국가마다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범위가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안되는 지가 국가나 문화권 별로 차이가 있긴 하다. 어느 국가보다 '절제'와 '억압'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를 감안 할 때 한국인은 더 울어야 한다. 아파서 울든, 그리움에 울든, 서러워서 울든, 억울하고 분해서 울든, 외로워서 울든, 너무 기뻐서 울든, 인생의 무게가 너무 힘겨워 울든 그 이유가 뭐가 되었든지 속에서 그만 삵이고 소리 내 울어야 한다. 남앞에서 울지 못하거든 펑펑 울 수 있는 곳에서 울자. 맘껏 울지 못할 곳에 숨어서 숨죽여 울지 말자. 마음이 힘들 때 난 이제는 참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엉엉 속 시원히 우는 습관을 통해 나의 행복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슬퍼서 우는 눈물에는 독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슬프고 힘들 때는 눈물을 통해 스트레스와 독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웃음뿐만 아니라 눈물도 신이 주신 선물이다. 기억하자.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하는 일도 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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