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실력을 함께 끌어올린 NBA 최고의 감독 필 잭슨에게 코칭받았다.
농구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 있다. 마이클 조단 Michael Jordan, 코비 브라이언트 Kobe Bryant, 샤킬 오닐 Shaquille O'Neal, 등이다. NBA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들 리스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이들의 이름을 아우르는 데 공통분모가 있으니, 바로 필 잭슨 Phil Jackson (본명 Philip Douglas Jackon) 감독에게 코칭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설적인 선수들 뒤에는 전설의 감독인 잭슨 코치가 있었다.
최고는 어떻게 최고를 이끌어주는가?
필 잭슨 감독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6년 미국 농구 협회 NBA가 창립된 이래로 50주년이 되던 해 'NBA 리그 역사상 위대한 10명의 감독상' 중의 한 명으로 뽑혔다. 잭슨 감독님의 공식적인 별명은 Zen Master였다. 팀 중심의 사고방식, 특히 최고의 역량을 가진 선수들을 다른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데 전체 시간을 투자하는 코칭 기록이 인상적이다. 또한 선수 개인의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타고난 능력을 갖췄다. 그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한 시대, 농구에 몸을 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자가 있는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다. 잭슨 감독은 팀워크가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했으며, 경력 전반에 걸쳐 팀워크를 강조했다.
The strength of the team is each individual member.
The strength of each memeber is the team.
팀의 힘은 멤버 개개인이다.
멤버 개개인의 힘은 팀이다.
- Phil Jackson, 필 잭슨
이 글에서는 잭슨 감독님의 경력, 업적, 코칭 철학, 인생의 가치 등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려 한다.
잭슨 감독님은 2m의 장신이시다. 감사하게도 의자에 앉아 주셔서 사진을 찍었다. 안 그랬으면 거인 옆의 호빗이 되었을 터. 감사하게도 사진을 찍을 때 웃어주셨지만 대화를 할 때는 실제로 얼굴에 표정의 거의 없으셔서 의중을 파악하기 가장 어려웠던 분들 중 한 명이셨다.
한 번도 우승하기 힘들다는 NBA 챔피언십에서 필 잭슨 감독은 11번이나 우승을 했다. 더군다나 일생에 한번 나오기 힘들다는 3 peat을 3번 했고, 2년 연속 우승을 1번 차지한 전설적인 헤드코치였다.
( * 3 peat 혹은 Three-peat : 3년 연속 우승을 의미, Three Reapeating Championship의 줄임말)
1. 시카고 불스: 3 peat (마이클 조던 & 스코티 피펜 한 팀)
2. 시카고 불스: 3 peat (마이클 조던 & 스코티 피펜 한 팀)
3. 엘에이 레이커스 : 3 peat (샤킬 오닐 & 코비 브라이언트 한 팀)
4. 엘에이 레이커스 : 2 연속 우승 ( 코비 브라이언트 & 파우 개솔 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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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역사상 유례가 없는 우승 결과다. 이런 독보적인 결과를 만든 잭슨 감독은 무엇이 특별했던 것일까? 그 비결은 뛰어난 재량을 가진 선수들을 다룰 줄 아는 리더십과 팀워크에 있었다. 또한 시즌 중에 모든 선수들에게 개성이 반영된 읽을 책을 제공하는 등 파격적이고 영적인 접근 방식으로도 코칭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후배 지도자들은 필 잭슨을 두고 ‘완벽한 지도자’라고 설명한다. 특유의 접근 방법으로 선수들과 소통했던 특별한 감독이었다. 예를 들면 개인의 성향에 맞는 책을 선물한다거나, 비디오에 메시지를 담아 보내거니, 기습적으로 훈련을 쉬고 함께 버스로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방식이었다. 요가를 트레이닝 과정에 넣기도 했다. 경기 중에도 타임이웃 콜을 자주 하지 않고 선수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두는 것도 특이했다. 연습 때 패스를 질 하지 못하면 체육관 불을 끄고 연습하도록 시켰단다. 공이 보이지 않아도 집중력과 다른 신체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잭슨 감독 이외에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올린 감독으로는 또 다른 NBA의 전설적인 코치 레드 어바흐 Red Auerbach 감독이 유일하다. NBA 사무국에서는 해마다 수여되는 올해의 코치상인 Coach of The Year Award를 수여하는 데 레드 어바흐 감독의 이름을 따서 레드 어바흐 트로피로 불리기도 한다. 보스턴 셀틱스 Boston Celtics에서 통산 9회 우승을 시켰고, 현역 코치에서 물러난 후에는 구단주로 재직하며 7회의 우승을 더 거머쥐었다. 직간접적으로 총 16회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현직 감독으로서 최다 우승을 차지한 것은 필 잭슨의 우승 결과가 가장 앞선다.
필 잭슨 감독은 코치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NBA에서 선수 경력을 쌓았다. 선수로서는 슈퍼스타 지위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2번의 NBA 우승컵을 땄다. 잭슨 감독은 코치로서 탄탄한 기본 원칙, 리더십 자질, 게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
내가 발견해 낸 필 잭슨 감독과 레드 어바흐 감독의 공통점은 '나'보다는 '우리'라는 사고방식을 강조해 낸 팀워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선수 개인에게 집중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두 분 다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술을 지닌 대가였다. 다른 코치들이 선수를 대할 때 역시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며 모든 선수가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대했다.
개인이지만 하나의 팀이라는 팀워크 정신을 끌어냄으로써 선수들이 경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만들었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통계를 보는 방식도 바뀌었다. 더 이상 게임당 개인 점수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뛴 게임 결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몇 골이나 넣었을까?”라는 고민 대신 “우리가 어떻게 같이 이길까?”라는 한 가지만 걱정하는 관점을 갖게 만든 것이다.
12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NBA에서 은퇴를 한 1987년. 잭슨 감독은 직업에 대한 전망은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인생의 업다운은 항상 존재한다. 그런 그가 감독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들여다보자.
잭슨 감독은 1945년 미국 몬태나주 디어 로지 Deer Lodge에서 태어났다. 2024년 현재 79세이다. 그의 부모는 두 분 다 오순절 목사 Pentecostal ministers였다. 어렸을 때는 자신도 부모처럼 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였다고 교육받았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꽤나 유별났다.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아마겟돈에 가까운 설교를 했다고 전해진다. 가족 중 한 설교자 친구는 잭슨 감독에게 어린 시절 엑소시즘을 겪을 것을 제안했을 정도로 독특한 환경에서 자랐다.
유년기에는 스파르타식 가정교육을 받았다. 춤을 추는 것과 텔레비전 시청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 독서였다. 하지만 허용되는 책의 종류가 지정되어 있었다. 성경, 백과사전, 리더스 다이제스트뿐이었다. 고등학교 때가 돼서야 첫 영화를 보게 될 정도로 절제된 환경에서 자랐다. 농구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의 가족 덕분에 농구는 잭슨 감독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 그의 호기심과 갈망을 표출할 수 있었다.
필 잭슨 감독의 경우 NBA 선수이긴 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록 스타 선수는 아니었다. 2미터에 달하는 큰 키에 그는 만성적인 허리통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1970년과 1973년 사이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닉스 Knicks 팀의 핵심 역할 선수였다.
경기 출전 중 다신 부상으로 NBA 선수 생활을 접고 나서 앞날이 캄캄했던 그는 전문대학 적성검사를 받았고 교사나 목사라는 직업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와 그의 아내 준 June은 몬태나 주 플랫헤드 레이크에 스포츠 피트니스 클럽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잭슨 감독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 입학할지, 아니면 심리학 학위를 취득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대륙농구협회(Continental Basketball Association)의 마이너리그 팀인 올버니 패트룬스(Albany Patroons)의 구단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잭슨 감독의 전설적인 코칭 경력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잭슨 감독은 처음에 뉴저지 넷츠 New Jersy Nets의 케빈 로건리 Kevin Loughery 감독 밑에서 일하며 보조 코치로 3년 동안 있었다. 그 후 2년 동안은 Chicago Bulls 시카고 불스로 이적하면서 보조 코치로 있었다. 1989년 44세의 나이에 시카고 불스 Chicago Bulls에서 첫 번째 수석 코치직을 얻었다. 코치로서 가장 찬란하고 성공적인 9년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마이클 조던이 있는 동안 그리고 조던이 은퇴한 2년 동안 팀의 부진한 시기 동안에도 (1993-95) 잭슨은 불스를 55 시즌과 47 시즌으로 이끌었다. 역대 최고의 스몰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스코티 피펜 Scottie Pippen도 있었다. 1995년 조던의 첫 풀 시즌 복귀에 불스팀은 3 연속 챔피언십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나 세계의 주목을 받던 마이클 조던을 죽이기 위한 작전들을 막아내고 팀 내 커져가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다른 선수들도 관리해야 했다. 물론 조던의 포효도 막아야 했었다. 잭슨의 지도 하에 시카고 불스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불스팀의 프런트 오피스와의 자존심 대결로 사임을 두고 1년 동안의 공방이 있기도 했다. 1999-2000 시즌에 돼서는 젊은 코비 브라이언트와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샤킬 오닐이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수석 코치직을 맡게 된다. 잭슨 감독의 전매특허인 삼각형 공격 전략을 빠르게 도입하고 시카고의 성공은 계속 이어져갔다. 레이커스 팀에서 총 11년을 보내며 7번의 출전에서 5번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코치로서 필 잭슨 감독은 조던, 코비, 샤크, 등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데리고 있었다. 이 선수들이 있었기에 우승을 할 확률이 높았기도 했지만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터놓으셨다. 특히 조던과 코비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경쟁적인 운동선수들이었고 그들은 종종 라커룸 내에서 팀원들의 분열을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잭슨 감독은 스타플레이어와 팀워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나 그들의 도전적인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자존심을 관리하는데 능숙했다. 잭슨 감독 없이 챔피언십을 우승할 수 없었다.
2010-2011년 NBA 시즌이 끝난 후로 감독으로서 은퇴를 했다. 2014년에 그는 뉴욕 닉스 Knicks의 팀 회장이 되면서 농구 사업으로 전환했다. 프런트 오피스 역할에서 잭슨은 코치로서 얻은 성공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바뀌는 곳이 되어버렸다. 뉴욕 닉스에서는 필 잭슨 감독을 회장으로 초대하기 위해 5년 동안 6천만 달러, 한화로 대략 819억의 계약을 체결했다. 후들후들한 금액이다. 첫 세 시즌은 잘못된 인사 결정, 높은 코칭 이직률, 코트에서의 잦은 기록 상실로 닉스는 계속해서 플레이오프를 놓쳤고 16경기를 하는 동안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7년 6월 잭슨과 닉스는 서로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코칭을 통해 이뤄냈던 성과들을 다시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트라이앵글 디펜스를 쓰도록 강요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내가 12년 동안의 직장 생활, 8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자신에게, 회사에 맞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포지셔닝이다. 결국 인생은 자신이 가진 강점을 찾고 그 역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필 잭슨 감독이 NBA의 선수로서 최다 득점을 내게 도와주는 서포터로서 핵심 선수의 역할을 잘 해냈다. 여기서 그의 강점은 '서포터'의 역할이라는 부분이다. 코치로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재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개개인의 선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고, 최고의 팀을 구성하는 팀워크를 이뤄내는데 가장 화려한 역할을 했다. 역시나 서포터, 가이드, 멘토로서의 역할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반면 사업가적인 면모를 가져야 했던 회장의 자리는 서포터의 역할보다는 팀을 맡은 감독과의 소통의 부재와 회사 내의 불협화음으로 그에게 딱 맞는 옷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자리가 힘든 이유, 첫 사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이 그렇듯, 뛰어난 조직이 그렇듯, 팀스포츠인 농구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들, 코치와 감독의 탁월한 전략 그리고 조직의 환경, 이 세 가지 요소의 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 감독의 전략이 있어도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역량이 뛰어난 직원 혹은 팀원, 명확한 사명과 비전 그리고 그것을 받치는 전략과 지표 그리고 회사 문화와 환경의 조합이 적절히 맞아야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듯이 말이다.
코치로서 차별화되었던 주요 요소 중 하나는 게임에 대한 독특한 접근 전략에 있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Triangle Offence 전략은 포스트업에 능한 센터와 윙맨들의 조화로 만들어내는 전술이다. 트라이앵글 중심축에 수비가 몰리게 되면, 다른 선수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게 된다. 유기적인 움직임과 적정 위치에 포지션을 잡은 플레이어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성공시킬 수 있다.
공격수 모두가 득점 지역 내에서 움직이고 모든 선수가 볼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득점 욕심을 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이 공격 전략을 사용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팀 간의 응집력이라는 것이다. 공격수 모두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을 계속 읽어내야 하며 공격 흐름을 한 찰나에 간파하고 즉시 슈팅을 하는 행동으로 옮겨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 팀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으로 캐치를 해 한 몸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다 보니 익숙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단순하고 쉬운 공격 방식'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엉성한 트라이앵글 오펜스 전략을 쓰게 되면 공격의 흐름이 좋지 않고 골고루 슛을 던지기도 어렵다. 결국 억지로 슛을 하는 수가 늘게 되어 '분주하고 실속 없는 공격'이 된다.
사업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본질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 요소들이 있다. 의도를 명확히 하는 가치, 비전, 미션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회사의 강점을 파악하고, 시장 조사를 통해 성공 확률이 높은 포지셔닝을 잡는 것, 밴치마킹, 차별화, 고객 중심의 상품/서비스 구성, 기획, 경영, 시스템을 갖춰가는 것들이 그 예이다. 처음에는 엉성하고 그 합을 맞추는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그 요소들을 잘 맞추기만 하면 가장 단순하면서 쉬운 사업 전략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각 요소들을 엉성하게 처리했을 때 분주하고 실속 없는 결과들만 생긴다.
상대 수비가 특정 선수 주위로 밀집할 경우 수비가 흩어지게 만들어서 공간을 확보한다. 삼각형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공격수가 이 공간에서 들어가면서 조직적으로 공간을 확보한다. 비슷한 공간에 두 명의 선수가 있다면 대혼란이 오기 때문에 유리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핵심이다.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성공 확률이 높은 곳을 공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론 시작부터 진싸움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삼각형으로 서 있을 경우 3명이 돌파할 수 있다. 삼각형에 있는 선수 중 좋은 슛 기회가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3명 중 돌파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선수가 골밑을 향해 드리블로 진입할 수 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아닌 상황에서의 수비수들이 예측을 할 수 있지만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누가 밀고 들어올지 예측이 어렵다.
(모든 슛은 리바운드로 잡아 다시 공격한다)
삼각형을 만든 공격수는 동료가 슛을 던지려고 하면 골밑을 향해 돌진한다. 첫 단계에서 공간이 확보됐다면 골밑 돌진이 어렵지 않다. 삼각형을 함께 만들었던 동료가 돌파를 할 경우 방어가 뚫린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외곽에서 슛을 던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기 자리가 확보됐기 때문에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는 골밑을 향해 달려가서 다시 공격하면 된다.
적절한 슛 기회나 돌파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경우 드리블을 하기보다 삼각형 안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한다. 정확하고 빠른 패스가 필수다. 공을 받는 선수가 공간 확보가 되지 않을 경우 패스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드리블로 타이밍을 잡아보려 해도 공격의 흐름이 깨진다. 드리블이 많아진다는 것은 공간 확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1단계 유리한 공간확보로 되돌아간다,
이 공격 방법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공격수든지 공간 확보가 잘된 선수가 슛을 할 수 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스타 선수가 아니라도 시스템의 움직임에 따라 슛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얻는다. 일반적으로는 스타가 아닌 선수가 슛을 많이 던지면 관객들이 눈총을 주는 것이 보통인데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트라이앵글 디펜스 전략은 단순히 공격만을 생각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협력하며 함께 공격을 하다 보면 수비력이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내가 맡은 선수는 오직 1 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팀으로서 한 마음, 한 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한 팀이 같이 수비와 공격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트라이앵글 디펜스 전략은 필 잭슨 감독의 철학인 ‘개인과 팀이 하나’를 바탕으로 고안해 냈다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다.
코치로서의 잭슨 감독은 언론에서 그의 선수들에게 도전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동기부여를 하기 위함이었지만 대놓고 선수들의 게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런 방식에 선수에게 조롱을 한다는 비난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종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스타 선수들을 따르는 팬들과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잭슨 감독의 방식이 '최고 선수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우선 이런 소통 방식은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만큼 선수들과 두텁게 쌓은 '신뢰와 믿음'의 관계가 기초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능력을 갖추고 있고, 승부욕이 강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이미 높은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발화점은 현실 자각이다. 있는 그대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만드는 것만큼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팩트로 자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드러운 방식으로 통하지 않는다. 일반 평준 기준을 뛰어넘는 실력을 이미 갖춘 경우의 대부분은 똥고집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자신만의 철저한 믿음과 철학이 있었기에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팀으로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혼자 할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도움이 '팀의 좋은 성과'임을 이해시키기까지 쉬운 길이 아니었을 것이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을 도운 수비의 일인자 스코티 피펜과의 관계만 봐도 금방 이해된다.
피펜은 모든 농구 감독들이 원했던 스몰포워드 선수였다. 유달리 팔이 길었던 그는 원 핸드 덩크는 위력적이다 못해 우아하기까지 했다. 농구선수로서는 180cm라는 작은 키와 깡말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의 신장과 체격차이를 가볍게 뚫어낸다. 감독들 사이에서는 수비 재능에 있어서만큼은 피펜이 조던을 앞섰다는 의견이 많았다. 피펜은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성격이었다. 주변 의식을 많이 했고 걱정도 많았다. 조던은 이런 피펜의 성격과 상반되었다. 이런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습을 할 때에도 '원수'처럼 혹독하게 훈련을 했다고 한다. 조던은 피펜을 두고 '냐약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렇게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둘을 함께 팀으로 묶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군분투 끝에 피펜은 해결사이자 수비수로서 트라이앵글 오펜스 전략을 통해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피펜의 원조 덕분에 조던도 공격적인 부분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만년 이인자, 조던의 동생 같은 존재로 보였던 그는 남의 눈치를 보던 소극적인 성향을 깨고 나왔고, 조던도 팀 파트너로서 피펜을 보기 시작했으며 피펜에게 의지하는 경기도 많아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불협화음의 조정을 지나 지금은 불스의 우승을 이끈 위대한 수비 일인자로 기억된다.
잭슨 감독의 우선순위에 '팀 우선의 팀워크'가 항상 먼저였다. 개인의 이득을 위한 독자적인 행동에 자비롭지 않았다. 헤드 코치로서 잭슨 감독은 자존심 강한 선수들을 통제하고 진정시키는 대가였다. 그가 말하는 팀의 리더십 역시도 '개인의 이고 Ego (과잉 자아)를 죽이고 조화로운 팀'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했다.
잭슨 감독의 특이한 점 중 또 다른 점은 대중적으로는 도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에게 세심하게 챙겼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더 강한 마인드셋을 갖고 동시에 개인이 가진 약한 부분에 동기부여를 하는데 노력했다는 것이다. 모든 선수들에게 저마다 가진 개성이 반영된 책을 선물했다.
메이컨이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관심을 많이 받았던 조던의 '원맨쇼'가 아닌 농구 생활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팀 동료들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몬타나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에 사는 데이비드 헤이든이라는 청년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아메리카 원주민 베이비시터가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되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네사 레인과 결혼한 후 코비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잭슨이 이 책을 준 이유는 코비가 특별히 그런 내용에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자신의 고향인 몬타나에 관한 책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가 살아있을 때 살았던 싯다르타라는 사람에 관한 책. 싯다르타는 자기 발견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성취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샤크가 항상 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샤킬 오닐 또한 깊은 사상가였으며 그의 별명은 '거대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배우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샤킬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 열린 불스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사건 후에 했다고 한다. 아마도 반성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 휴즈가 캘리포니아 카멜바이 더 시에서 살면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단편 소설 모음집
피펜은 아칸소주 함부르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해 인종 문제와 겸손한 시작을 중요한 순간들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잭슨 감독은 팀 내에 있었던 모든 선수들에게 책 선물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선수들을 깊이 이해했고 그들의 정신적 멘털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어렸을 때 책만 읽게 된 경험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코칭하는 방식으로 발현을 했는지도 모른다.
필 잭슨 감독은 농구 경기에 있어 진짜 천재 감독이었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남달랐고, 리그 역사상 경쟁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독단적인 성격을 가진 최고의 선수들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때가 있었음에도 선수들을 움직이는 데는 그 전략이 딱 들어맞았다.
잭슨 감독의 가르침은 선수들을 관리하고 실력을 키우는데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삶을 안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실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면서도 가장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코칭을 했다. 동양철학사상을 깊이 연구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신비주의에 기반한 뉴에이지 방식이었다. 독특한 방법이었지만 11번의 NBA 챔피언십을 우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코치로서 자신의 역할뿐만 아니라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그의 모습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성공이 운과 실력에 관한 통계를 통해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쓴 <모부신의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서 사업과 운동은 구분을 하기 힘들 정도로 유사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실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영역이지만 전략, 시장환경, 인적 자원의 퍼포먼스에 따라 운이 작용하기도 한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모부신의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서 말하는 성공의 방정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여기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고 싶다.
그래서 다시 나만의 성공 방정식을 재구성해봤다.
잭슨 감독이 선수들을 코칭하듯 나는 비즈니스 코칭을 하면서 사업가들을 도와주고 있다. 사업을 통해 최고의 실력을 키우는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고 성공과 행복을 함께 챙겨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돈'이 전부가 아닌 혹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조건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한국은 35개국 OECD에서 경제 순위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인 부가 상승했지만 행복의 순위도는 올라갈 기미가 없다. 내 바람은 한국에 행복한 부자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성공을 향해 가더라도 행복한 성공을 위해 삶의 의미를 짚어봐야 할 시기이다. 속도보다는 방향의 키를 다시 잡는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감이 높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