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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 산책, 핀란드 출산과 산후조리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

by 줄리킴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산후조리에 대해 다양한 지식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라는 말이 있고, 익히 들어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출산 후 삼칠일 (3x7=21일), 길게는 100일 동안이 산후조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한다. 이때 특별한 몸조리 기간을 가지고 제약사항이 많다. 산모는 찬바람을 맞아서도 안 되고, 몸을 씻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고 외출을 삼간다. 한여름에도 내복을 껴입고 체온 유지를 하게 한다. 내가 겪은 핀란드에서의 출산과 산후조리는 사뭇 다르다. 어떤 부분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누가 영하 10도에 하는 산모 산책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핀란드는 한국처럼 산후를 관리해주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은 없다. 내가 그동안 살았던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대부분의 많은 나라가 그렇듯 한 달 정도의 산후기는 있다. 참고로 미국 한인 타운에서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Sanhujori'라는 한국 발음 그대로 단어를 사용하며 숙박업으로 등록해서 운영하고 있다. 산후조리는 흔히 Postpartum Care로 명명한다. 산모가 출산한 후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난 헬싱키에 소재하는 출산 전문 병원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핀란드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장소부터 한국과는 달랐다.



출산 후 샤워와 커피로 시작한 산후조리


핀란드는 한국과 달리 수술실이 아닌 병실 같은 느낌이 드는 출산실에서 아이를 낳는다. 출산 후 바로 병실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출산 직후 같은 출산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샤워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17시간 진통으로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아이를 만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의사가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났는지, 몸무게를 재는 일을 볼 수 있다. 건강 확인 체크가 끝나고 아기를 내 가슴 위에 얹어 심장 소리를 느끼게 해 준다. 가슴 위에 얹어진 조그만 아기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다루며 이마며 양 볼이며 살포시 뽀뽀했다. '아, 내가 정말 엄마가 된 거야?' 나 한데 달린 기계음의 찌-익 찌-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도 함께 찌-익 전율이 왔다 갔다 한다.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뿌듯한 엄마 마음, 흥분된 떨림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간호사는 아이를 데리고 함께 나갔다. 그사이 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2시간 정도 출산한 병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 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도 괜찮고 샤워 시간을 20분 이상 넘기지 말라는 조산사의 지시대로 샤워했다. 긴 출산 시간 온몸이 바짝 긴장해 땀을 흘렸던 터, 몸 위로 떨어지는 물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물 마시지를 받는 것 같았다. 샤워 후 상쾌한 기분으로 한껏 개운해졌다. 샤워가 거의 끝날 즈음 조산사가 묻는다. '따뜻한 커피 마실래? 아니면 차를 마실래?'. 아! 깜빡 잊고 있었다. 향긋하고 따뜻한 커피의 맛을. '저 커피 마실래요!' 조산사가 나를 병실에 휠체어로 데려다주고 얼마 안 돼서 조산사가 커피를 건네준다. 평소에는 쳐다도 보지 않을 무카페인 가루 커피였지만 따뜻한 물에 타서 한 모금 들이켰다. 세상에서 맛본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헛똑똑이 엄마 아빠


핀란드는 초임인지 재임인지에 따라 병원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다르다. 초임의 경우 아이와 산모의 건강이 좋다면 2~3일 머무르고 퇴원한다. 재임인 경우는 출산한 후 하루 자고 다음 날 바로 퇴원시킨다. 내 경우 아이가 2,7kg로 3주 일찍 태어나 병원에서 4박 5일을 머물도록 했다. 커피를 다 마셨을 즈음 간호사가 바퀴 달린 아기 침대를 가져왔다. 내 아기가 새근새근 곤히 자고 있었다. 간호사는 내게 침대에 기대어 누워 내 맨몸이 아이의 맨몸과 닿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더불어 남편에게도 아기를 안을 때 맨몸으로 안아주라고 이야기하고 나갔다. 병실에는 단란한 우리 가족 셋만 남았다. 우린 모두 한 침대에서 옹골 옹골 모여 아이를 사이에 두고 맨몸으로 잤다. 아기 침대, 내 침대, 남편 침대 이렇게 각자의 침대가 있었음에도 우리 셋은 떨어지기 싫었다.


다음 날 아침, 문에서 '똑 똑!' 하는 소리에 일어났다. 간호사는 여러 가지를 점검했다. 그 와중에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지 않고 남편, 아이, 나 셋이서 19시간 숙면을 한 것을 알고 우리를 혼냈다. 매 3, 4시간마다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아이를 밤새 굶긴 셈이다. 간호사는 부랴부랴 새로 분유를 준비해 왔고 아기에게 먹이라고 했다. 잠이 덜 깬 나와 남편은 나무늘보 속도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분유를 먹였다. 분유를 먹이고 나니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 소화하는 자세를 가르쳐 준다. 남편이 아이의 머리를 어깨 위로 올리고 그제야 아이의 눈 색을 처음으로 봤다.


'어? 자기야 아기 눈이 파란색인 것 같은데?' 어제저녁엔 어두워서 검은색으로 보였나 봐.' 신기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편도 나도 검은색 눈동자일 거로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를 보며 '아! 그렇네. 눈동자는 나를 닮았네' 그때부터 아이를 찬찬히 볼 여력이 있었다. 배가 고픈지 옹알거리는 조그만 입. 목젖이 다 보이는 하품, 조그만 코, 앙증맞은 손과 발. 우린 어디가 누굴 닮았는지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너무 신기하고 생소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이뻐 죽겠네' 싶다. '아우, 이뻐라!'라는 말이 입에 착착 감긴다. 참고로 아이의 눈동자 색깔은 변해서 지금은 올리브 그린색을 띤다.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은 아이 만의 눈동자 색이 탄생했다. 아이는 아이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육아교육은 병원에서부터 시작


출산 다음 날 오후, 정신을 좀 차렸을 즈음 간호사가 병실에 와서 남편을 찾는다. 왜 그러냐고 하니 남편에게 아기 씻기는 방법과 닦는 방법, 그리고 몸에 보자기를 씌워 주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럼 저한테 알려주세요. 저도 배우고 남편에게도 가르쳐 줄게요.'라고 했더니 '아니에요. 이건 남편이 배워야 합니다. 지금 산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나갔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간호사는 남편에게 '부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이 일은 남편이 해야 합니다.'라고 단호하며 시범을 보여준다. 아기를 씻길 때 팔뚝 위에 아이를 얹는 방법, 적정 물 온도 체크, 배변 후에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부엌 싱크대같이 생긴 곳에서 흐르는 물아래로 엉덩이를 씻기는 방법, 씻긴 후 깨끗한 수건으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아기를 천으로 싸주는 방법을 전부 남편에게 가르친다. 난 침대에 누워 남편이 하는 자세를 교정받는 모습을 보며 배웠다.


4박 5일 동안 아기 기저귀 바꾸기, 배변 후 씻기, 옷 갈아입히기, 천으로 아기 싸주기, 등 그 모든 일이 남편 몫이었다. 간호사는 중간중간 와서 어설픈 남편의 자세를 교정해줬다. 퇴원할 즈음에는 실력이 확실히 늘어있었다. 몸이 불편한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민첩하게 했다. 그동안 조산사는 내게 모유 시도를 매 4시간 와서 가르쳐줬다. 주의 사항을 알려주면서도 모유가 나오지 않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도록 다른 산모도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도록 해줬다. 3일째 되던 날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고, 젖몸살이 나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과 샤워로 뭉침이 풀릴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그렇게 조금씩 남편은 아빠가 되어갔고, 나는 엄마가 되어갔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해내면서 부모 되기 첫걸음을 잘 뗀 것 같아 흐뭇했다.


퇴원하는 날. 4박 5일 병원에 머문 금액을 정산하니 대략 40만 원 나왔다. 물론 총금액은 이보다 크지만, 의료보험으로 90%가 거의 다 처리되고 개인 병실 사용료 정도로밖에 안 된다. 병원에 있으면서 남편, 아기, 나 각자 잘 수 있는 침대가 있는 개인 병실, 식사, 아이의 분유 그 외 병원에 비치되어있어 산모 편의에 따라 직접 꺼내 쓸 수 있는 산모 수유 옷, 수건, 산후 패드, 양말, 신발 모두 포함이다. 몸만 가면 되는 시설이다. 한국의 산후조리원처럼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시설이 아니다. 하지만 편히 쉬었고, 깔끔하고 실용적인 이곳에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엄마로 변신하고 있었다. 산후조리는 엄마로서의 몸과 마음을 함께 준비하는 기간임을 배울 수 있었다. 혹시 몰라 웬만한 걸 다 챙겨갔지만 내가 유일하게 사용한 물건은 립크림과 보디로션이었다.



가정 방문 진찰


핀란드는 퇴원 후 2주가 되었을 때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 진찰을 한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상태를 검사하고 부모가 가진 궁금증 해결해 주기 위한 방문이다. 산후 관리에 대해 세세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였다.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 다양한 영양가 포함된 음식 섭취, 이른 시일 내에 자연 가까이 산책을 시작하는 것. 모유 수유로 연속해서 2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깨진 잠을 자기 때문에 몸이 쉽게 지친다고 잠의 중요성을 강조해준다. 충분히 자는 게 우울증을 줄여주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모유를 하고 있으니 음식의 양과 시간에 대해서도 세세히 얘기해줬다. 적은 양으로 다양한 음식을 자주 먹으라는 것. 무엇보다 강조한 것이 빠른 회복을 위해 집에만 있지 말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함께 산책을 자주 하라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떠나면서 다음 단계로 2주 후 아이와 산모가 같이 네우볼라 (Neuvola)로 방문하라는 설명을 해줬다. 네우볼라는 아이의 건강 체크를 매달 한 번씩 해주고 모든 정보는 아이 진료 데이터에 입력된다. 백신도 이곳에서 맞춘다.


7월 여름, 핀란드에서 가장 날씨가 쾌청하고 좋을 때 아이를 낳았다. 산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없다. 핀란드는 주변 곳곳이 자연공원이다. 집을 나가자마자 펼쳐지는 해안도로, 수많은 산책 도로를 걷는다는 것이 자연 힐링 그 자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지만 걸어 다니면서 콧바람 새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산책로를 걸을 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빠들도 많이 본다. 북유럽 '라테 파파' (라테를 한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끄는 아빠)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하지만 겨울이 되었을 때도 산책을 하는 아이와 엄마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져도 산모도 아이도 따뜻하게 차려입고 산책하러 나가기 때문이다. 더불어 바닷물이 꽁꽁 얼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날, 영하 10도인데 몇 달도 안 된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운 채로 밖에서 재우기도 한다.


난 아이가 동상 걸리겠다며 남편에게 아이 보호 센터에 아동 학대로 신고해야 한다고 난리 피웠던 적이 있다. 남편은 너털웃음을 피우며 걱정하지 말라며 예전부터 해왔던 지극히 핀란드다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오히려 더 잘 잔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보지만, 이 사건은 내가 잊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핀란드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남편과 내가 함께 발을 잘 맞추어야 하는구나'였다. 부부로서가 아닌 부모로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간다. 흔히 사회는 여자가 엄마가 되면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어야 할 것처럼 대한다. 엄마라고, 여자라고 며칠 만에 육아 프로그램이 업데이트치 않는다. 유전학적으로 모성본능이 남자보다 많은 것뿐이다. 아빠가 어떻게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듯 엄마도 모르긴 매한가지다. 여자에게, 엄마에게 모든 육아를 떠맡기지 않고 부모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서로 분배해주며 함께하는 육아가 진짜 엄마, 아빠로 발돋움한다는 걸 배웠다. 핀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남편의 출산 동행과 육아의 기초를 병원에서 함께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핀란드의 양성평등 출산 육아 휴가, 출산수당


한국과 마찬가지로 핀란드에서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가 분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부성 출산 휴가를 1~3일 정도 쓰는 것 같았지만 핀란드는 총 18일이며 임금이 전액 지급된다.


육아 휴가는 부성휴가는 노동일로 9주, 모성 휴가는 노동일로 6개월을 받는다. 주말을 포함하면 아빠는 한 달 반, 엄마는 8개월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아이가 생후 10개월이 됐을 때 육아 휴직을 더 사용하고 싶으면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육아 휴직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는 한 사람이 키우는 게 아이 정서 발달에 좋다'는 분위기가 있어 엄마가 연이어 육아 휴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대부분은 2살까지 엄마가 키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성 육아 편중과 엄마의 경력 단절, 소득의 격차 발생이 한국과 같이 발생한다. 핀란드는 육아제도가 좋기로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곳이지만 안주하지 않는다. 모성 휴가가 긴 것이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모성과 같은 양육 휴가제를 도입시키기로 했다.


현재까지는 부성 육아 유급 휴가를 9주를 줬지만 2022년부터는 부성 육아 휴가와 모성 육아 휴가를 같은 기간을 줘야 한다는 가족 육아 휴가 개혁 (Family leave reform)이 시행될 것이다. 자녀의 수, 한부모 가족, 다 부모 가족, 장애아 가족, 입양아 가족, 쌍둥이 가족, 다둥이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양육 휴가제를 유연하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한부모 가족은 한 부부가 쓸 수 있는 양육 휴가제가 합쳐진 날만큼 사용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엄마의 출산수당은 아이가 태어나기 30~50일 혹은 5주에서 8주 전부터 주어진다. 일을 그만두는 시기는 엄마가 선택할 수 있다. 총 105일의 노동일을 기준으로 하며 공휴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육아 휴직은 180일, 노동일로 6개월이 되고 주말을 포함하면 보통 8개월을 법적으로 보호받게 된다. 엄마의 출산수당과는 상관없이 아빠의 출산수당은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금액은 하루당으로 산출되며 최소 금액은 하루당 대략 3만 8500원 (29.05유로)로 일요일을 제외한 25~26일로 계산하면 최소 100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핀란드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연봉의 총금액이 높을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지만 받는 혜택 또한 상향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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