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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집 이불보는 더러워서 못쓰겠니?

이불보, 베개보를 가져오는 핀란드의 남다른 배려

by 줄리킴


친한 핀란드 친구 부부를 우리 별장으로 초대했다. 긴 주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 부부가 별장에 와서 처음 한 일이 본인들이 가져온 침대보, 이불보, 베겟보를 넣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초대를 받아서 왔는데 왜 그런 걸 가져오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한편으론 서운함마저 든다. ‘왜 우리 집 이불보는 못쓰겠니? 못쓸 이유가 없잖아! 다 깨끗이 빨아놓은 건데 아무렴 누가 쓴 걸 내놓지는 않을 거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우리 집 이불보도 깨끗하거든!


그래도 10개국에서 살아봤고 많은 문화를 경험했지만 그 행동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핀란드인 내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베갯모를 씌우고 있는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끼우는 걸 도와주지도 않는다. 충격을 적잖이 받은 나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했다.


‘Shall I help you?’ 도와줄까? 하고 가까이 가니

‘No, thank you. This is my job, not yours.’ 자기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다.

뭐라도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서있었지만 분명 어정쩡한 자세와 허공을 오가는 내 손이 내비쳐졌을 테다.


나중에 남편에게 따로 물어보고서야 나의 궁금증과 갑갑함이 풀렸다. 친한 친구이면 일수록 더 별장으로 초대를 받아가면 침대보, 이불보, 베겟입, 수건을 기본적으로 가져가는 게 예의고 배려란다. 며칠 짧게 머물러 가면서 나오는 빨랫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초대한 사람의 입장에서 빨래를 하는 불편함을 줄여주기 위함이란다.

사실 그 말은 맞다. 하루나 이틀, 길게는 3, 4일을 함께 하는 게 보통이고 그 이상을 머물지 않는다. 그 이유 역시 초대한 사람에게 더 큰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긴 주말여행으로 오게 되면 기껏해야 이틀이다. 때론 밤늦게까지 놀고 그러다 보면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지 않다. 빨기에는 너무 깨끗하고 안 빨기에는 어정쩡하다. 그러다 결국 빠는 쪽을 택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괜찮다고 얘기해도 그건 진짜 괜찮은 게 아니다. 아니, 실제로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행동의 바탕에 항상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고, 보이는 행동과는 다른 진의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읽어야 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계속 권한다. 삼세번은 물어봐줘야 하니까.


우린 때론 상대방이 대접해 주기를 잔뜩 기대한다. 특히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집 주인장은 하루 종일 바쁘다. 하나부터 열 가지 일일이 신경 쓰고, 밥을 차려내고, 상대방의 편함을 위해 쉴 새 없이 바쁘다. 초대받은 이도 이걸 상대방이 내게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배려’라는 말고 둔갑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것 만큼 해줬으니 이번엔 당연히 내게 해 줄 차례’라는 마음이 발동하는 것일까?


‘눈치’도 없는 게 사람이야?


특히 한국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며 눈치를 바쁘게 봐야 한다. 상대방의 의중이 무엇인지 헤아리려 온 몸에 신경이 빠짝 선다. 대충 흘려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면 그 사람은 사랑 혹은 신임을 받는다. 눈치는 레이저 같은 예리함과 정확성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다만 몸도 마음도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털들을 계속 세우고 있어야 눈치가는다.

너무나 피곤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눈치’로 살아가야 하는 고 맥락적 의사소통의 특성은 행동보다는 ‘마음’을 중시하고, ‘심정’을 알아주길 자라는 심정 중심주의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에서 체면이 중요하고 그것이 곧 사회적 덕목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이 심정 중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의도를, 내 ‘마음’을 알아채려 주길 바라는 기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으면 서럽고 속상해진다.


진정한 배려의 의미


배려(配慮)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이다. 배려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마음 씀씀이’, ‘남을 존중하는 것’,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 등 ‘상대방’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다르게는 ‘나를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는 것’, ‘상대방에게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큼 해줘야 하는 것’이라는 ‘나’의 관점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양자에게 어떤 특정 의도를 갖지 않고 ‘조건 없는 나눔’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요즘은 팍팍한 삶이 더 팍팍해졌나 보다. ‘배려’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위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남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 나의 심정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듯하다. 상대방이 느끼는 부담감과 불편함에 대한 예의는 온대 간데없다. 진정한 의미의 배려는 남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배려는 내 손길을 자랑하지 않으며, 상대를 불쾌하게 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서로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친구네 부부가 떠나며 역시나 자기들 스스로 커버들을 벗겨서 쏵 가져갔다. 솔직히 진심으로 편했다. 처음에는 정말 이상하게 여겼던 그 행동이 이젠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친구네 부부가 한없이 고마웠다. 어느 나라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문화충격.

이불보로 “배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이젠 안다.

우리집 이불보가 더러워 안쓰게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내겐 '당연하지 않은' 행동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핀란드식 배려를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핀란드에서의 별장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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