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대응하는 자세와 해결책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글과 책을 보며 ‘두려움’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두려울 때마다 언제든 다시 찾아와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두려움에 대해 내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Dance with fear!
두려움과 함께 춤을 추자!
이게 무슨 의미냐고?
두려움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저 두려운 마음 그 자체일 뿐이다. 두려움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없앨 수 없다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택하겠다. 두려움과 함께 춤을 추며.
두려움, 그 자체만으로는 그저 인간의 한 ‘감정’ 일뿐이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사람이 소유한 감정 중 두려움만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은 없다.”
_ 레츠
우리는 어떤 두려움들을 느끼는 것일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가진 두려움을 나열해보았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것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불확실성)
•남보기에 위신이 서지 않는 직업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한 무리에 포함되지 못할까 봐 드는 두려움
•수치심
• 뒷말하는 친구 및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 최신 기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두려움
•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
•뱀과 같이 동물에게 물릴 것 같다는 두려움
인간관계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이 둘 다 존재한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두려움은 과연 무엇일까? 그 정체를 알면 이해할 수 있고, 또 대응하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두려움의 정의는 ‘어떤 현상이나 경험을 예상했을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불안한 감정’이다.
영어로는 Fear.
이것을 약자로 사용해 잘 풀이해 놓은 두려움의 정의가 있다.
두려움이란 ‘사실’처럼’ 보이는 ‘잘못된’ 근거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 ‘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인 것이다.
뇌에 위험을 감지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편도체다. 우리 몸은 위험을 알리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빠른 길과 우회하는 돌아가는 길이 있다.
빠른 길은 편도체를 직통으로 비상벨을 울리는 것이고 느린 길은 편도체가 아닌 대뇌피질을 통과해서 무엇 때문에 내가 놀랐는지,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인지를 살피고 비상벨을 울린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비상 단계 내리거나 파랑 불로 바꾼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우회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지름길로 편도체로 바로 가버려 지름길이 너무 발달되어 있다. 작은 상황에서도 계속 비상벨이 들어온다. 비상벨을 자주 울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상피질로 가는 우회로를 , 위험을 인지하는 길을 잘 닦아 놓어야 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신체적으로 심장이 뛰고, 땀이 나기도 하고 , 목소리가 가늘어지기도.
그럴 때 신체에서 나는 현상에 이름을 붙여준다. ‘나는 지금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있어.’
학자들이 실험을 해보니 이 감정과 감각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대뇌피질이 활성화되어 두려움을 완화하고 두려움에 대처하는 마음의 공간이 확보된다고 한다.
의학 전문가들은 우리가 두려울 때 느끼는 불안한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신체적 반응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애인에게 차일까 하는 두려움, 뱀을 보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 어두움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올까 하는 불안한 감정들은 우리에게 똑같은 반응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알려주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은 우리에게 ‘신호’를 알려주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신호’가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 싶은지 이해한다면 우리 스스로의 심리상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두려움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을 넘어 두려움을 다루는 능력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움을 문제의 요소로 보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다.
두려움에도 종류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박사가 정의하는 두려움의 종류는 네 가지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1. 긍정적인 두려움 (보통의 두려움 ) : 우리를 보호해주는 예방
2. 파괴적인 두려움 : 우리를 파괴하는 두려움
3. 보호적인 두려움 : 우리를 방어하는 두려움
4. 아름다운 두려움 : 용기를 내게 하는 두려움
두려움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부정적인 두려움이 있어 자극적이고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지만 반면 두려움이 너무 적어도 안 좋다. 안이하게 안주하고 나태해진다.
두려움의 결핍이 생기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무모하고 오만해진다.
우리를 망가트릴 수 있는 파괴적인 두려움도 존재한다. 반면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하는 보호적인 두려움도 있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사고와 범죄가 넘쳐 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두려움이 있다. 같은 말로는 용기다. 네 가지 두려움의 종류 중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할 두려움이다.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 더 큰 세상으로 나갈 때, 내가 하고 싶거나 가치 있는 것을 도전할 때, 불의에 대항해 정의 앞에 섰을 때 혹은 나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이 아름다운 두려움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정의감, 다 큰 존재에 대한 기대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과 열정을 만들어준다. 우린 희열, 설렘, 가슴 떨림을 느끼게 된다.
문요한 박사는 삶의 아름다움은 두려움 없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두려움을 아름다운 두려움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두려움은 같은 말로 ‘용기’다.
흔히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살펴보고 두려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의지를 말한다. 그것이 용기이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상태이다. "
_괴테
두려움은 5가지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각각의 요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위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형태의 두려움은 5가지 두려움의 기본 요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두려움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소멸될까 봐 느끼는 감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멸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의 근간이 여기서 나온다.
•높은 장소에서 바닥을 내려볼 때 느껴지는 공포심
•고소공포증
높은 장소에서 아래로 내려 볼 때 꿀렁거리는 느낌이 소멸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심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몸의 일부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주변에 곤충, 거미, 뱀 같이 징그러운 것을 보는 것 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쉽게 발견된다.
나 같은 경우는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들을 보면 그렇다. 나도 모르게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함께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곤 벌레가 가득한 곳에 빠져 몸을 파고드는 건 아닌가 하는 헛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거대한 그룹을 이룬 벌레들이 내 몸을 파고 들어가는 생각은 몸의 한 부분이 ‘절단’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진 형태로 이해된다.
이런 두려움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신체 일부가 절단될 것 같다는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곤충이나 뱀 같은 징그러운 동물을 봤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자신의 자유가 상실된 것 같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다.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갇혀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몸 일부분이 마비되거나, 통로의 일출 구가 제한되거나, 덫에 빠지거나, 웅덩이에 묻히는 것과 같이 상황에서 생기는 두려움이다. 어떤 환경에 의해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에 대해 드는 감정이다.
자유의 상실을 느끼는 경우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물리적인 상황과 사회적인 관계를 갖는 상황이다.
물리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두려움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폐소 공포증(claustrophobia)”이다. 물리적으로 자유를 제한당하는 갇힌 상황에서 발현된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발견될 수 있는 두려움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힘들고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어져가고 있는 우리 삶에 매우 근접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자유의 상실 혹은 자율성이 사라질 것 같아 갖는 두려움이다. 자유를 제한당하고 그 대신 희생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합쳐져 관계가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엘리베이터에 갇힐까 두렵다
•웅덩이나 덫에 빠질까 두렵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게 힘들다
•결혼이 싫거나 두렵다
•폐소 공포증
분류를 기반으로 한 두려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원하는 사람 혹은 사람들에게서부터 버려지고, 거부되고, 관계를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두 번째는 다른 누군가에게 갈망의 대상으로, 존중의 대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질투
•나를 버리고 떠날까 봐 두렵다
•혼자 있는 게 싫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다
저기 스스로 부정하고 부인을 하는 경우 생기는 두려움이다. 창피함, 수치심 등의 감정도 여기에 속한다. 안에 있는 자아가 파괴됨으로써 더 이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거나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대한 두려움이다.
집단적으로 받는 창피함이나 수치심은 자아를 두 번 죽이는 것과 같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아의 죽음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다. 실패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큰 이유가 이해가 된다. ‘자아의 죽음’에 기반한 두려움이니 말이다.
질투가 극단에 이르면 자아의 죽음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야.”라는 비관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게 된다. 부러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역시 분리와 자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한다. 당황스러움과 창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은 종종 분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억압받는 이들이 억압하는 이들에게 화를 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의 상실, 그리고 자아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문화나 종교를 무시할 때 역시 자아의 죽음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극단적인 종교 활동 및 행위가 있다. 이 역시 자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확장되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나의 신이 진짜 신이 아니라면, 혹은 최고의 신이 아니라면, 나는 신이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나는 비정한 자연 앞에 홀로 버려질 것이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공황장애 혹은 공황발작이 있는데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부적절하게 반응을 하여 생기는 현상입니다.
•실패하거나 실수할까 봐 두렵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렵다
•질투가 극단에 이르렀을 때
•창피하다
•수치심을 느낀다
•부럽다
•당황스럽다
•분노를 느낀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한 공황장애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 Franklin D. Roosevelt, 미국 32대 대통령)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가장 깊은 근원은 미래에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르는 확실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불안감에서 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확실하지 않은’이다. 통제권을 상실한다는 것이 그 근본적인 이유였다. 위에서 소개한 두려움의 5가지 요소 중 ‘자유의 상실’에 속한다.
앞서 “두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나 스스로가 내 마음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일단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린 두려움에 대한 오해를 풀 실마리가 생긴다. 두려움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냈다면,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가 없앨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두려움의 통제권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기쁜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업을 하는 분들 중 두려움이나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내가 처한 상황이 ‘내 미래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통제권이 없다고 느끼기에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업의 최종 목표가 ‘자유’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자유의 상실’과 ‘자아의 죽음’ 두 가지 두려움의 요소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통제권 부재의 생각이 발동 걸리면 우리의 상상력은 드라마를 쓰기 시작해 결국 강박증상까지 만든다.
‘통제권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 해질수록 (스스로가 그렇다고 단정 지을수록) 우리는 불행해질 것이라 생각을 키워 엄청난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절망감까지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값어치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고 싶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겁을 내게 되는 것이다. “
_ 도쿠가와 이에 나리
지금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두려움의 발전 단계를 안다면 혹을 떼려다 되려 혹을 붙이는 격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의 발전 단계를 한번 보자.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 삶이 너무나 비참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자신을 ‘무능력자’로 만들어내라는 강력한 블랙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게 되면 모든 것을 0으로 만들어버리는 디폴트 상태로 만든다. 우리 자신에게 이미 내재된 능력과 해결책이 있음에도 말이다.
더불어 판단력이 흐려지고 비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관적인 눈을 장착하는 순간 ‘그래도 도전 한번 해보자!’, ‘그래! 극복해보자! 하는 생각을 아예 못하게 만든다.
비관적인 눈을 장착한 후
최후에 남는 선택은 딱 하나다.
도망치는 것!
회피하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회피로 끝나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회피할수록 점점 커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감 등장이다.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어느새 마음속에서 자라 내가 상대하기 버거운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린다. 괴물에게 저당 잡힌 내 마음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살게 만든다. 그래서 계속 불안하다. 혹을 떼어내려다 이자까지 받아 혹을 더 붙인 격이다. 걱정과 두려움을 내주는 대신 회피와 불안감을 덤으로 얻었다.
두려움 ---> 회피 ---> 불안감
일단 두려움에서 도망쳤지만 두려움 대신 받은 불안함 마음을 갖고 인간관계, 일, 모든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스스로가 점점 위축이 된다.
왜? 피하기로 결정했으니까.
내 삶은 온통 피해야 할 것들 투성이 되어 버린다. 내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회피를 하며 을근 쓸 적 넘어가려 해도 그럴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하면서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이 쌓이고 쌓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괴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괴물은 성질이 더럽다. 자주 짜증을 내고 신경질적이며 자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성질머리 있는 괴물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문제들에 맞서는 것이다.
두려움 -> 회피 -> 불안감 & 긴장감 -> 공격적
예전의 나를 예를 들어보겠다. 사업 초창기 난 어떻게 사업을 해야 잘할지 고민이었다. 또한 사업이 망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우연히 사업의 전체 과정을 세우는 비즈니스 마스터즈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고 본능적으로 이 과정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근데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참고로 난 주얼리 브랜드를 시작해 비슷한 가치와 철학을 가진 다른 브랜드를 모아 멀티 브랜드 리테일샵을 (패션 편집숍) 싱가포르에서 하고 있었다.
10개월 동안 영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비즈니스 마스터즈 과정은 2000만 원이었다.
주얼리 디자인 브랜드를 세우기에 사업 초기 자금으로 5000만 원을 이미 투자했다. 손안에 돈이 충분치 않았다.
내 마음은 왔다 갔다 갈피를 못 잡았다.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들면서 ‘해야겠다!’라는 마음은 있는데 두려움이 들이밀고 들어온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용카드 찬스를 써서 등록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결제 후 더 두려움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4번에 나눠서 내야 하는데 500만 원을 4개월 안에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카드 결제하기 전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이다. 별의별 후회와 걱정이 밀고 들어왔다. 불안하고 초초했다.
‘본전도 못 뽑고 실패하면 어쩌지? 젠장! 나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하지 말걸!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하룻밤을 머리가 하얘지도록 고민하며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다.
어느 순간 돈이 충분히 없음에 한탄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 잘 나가던 난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나 하는 못난 마음이 꽈리를 틀고 앉았다.
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어디고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뭔가 강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진짜 무엇이 두려운 건지 알아야겠어!
내가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일이 바로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해부를 해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왜 두려워하는지, 어떻게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지. 그 결과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었다. “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두려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2000만 원이라는 큰돈의 가치를 잃어버릴까 봐 본전도 못 건지고 날리는 게 아닐까?’하는 자신감이 땅콩만 해진 못난 마음이었다.
그 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사업을 하며 초창기 금액 이외 또 다른 금액이 들여야 한다는 부담감.
한 단계 더 들어가서는 지금 당장 돈이 없었다는 것.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용카드를 쓸 수 있었으니). 돈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핑계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원하면 어떻게라도 방법을 찾아내던 내가 아니던가!
돈 없음이 핑계라면 나는 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더 깊이 들어갔다. 초짜 사업가의 고정 마인드셋도 만났다. 순수하게 들어가는 비용만 바라봤을 뿐, 그로 인해 내가 얻어낼 수 있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에 대한 가치를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가 마주한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자기 의심이었다. 실패를 하게 되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강했다. 실패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두려움의 본모습은 여러 겹으로 베일에 쌓여있다는 것을. 본모습을 알 수 없었기에 그저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니까 더 두려운 것이었다.
두려운 진짜 이유를 알고 나서 물었던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진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본전을 뽑아내고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 과정을 해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그다음에 생각을 했던 것이 3가지 상황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이었다.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을 해라.
그러면 무서움은 없어진다.”
_에머슨
결정을 했어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확실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상황 시나리오를 3가지로 써보는 것이었다.
각각의 상황에 대해 들어다 보자.
최상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고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향해야 할 목표점이 되기도 하겠다.
내가 가정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2000만 원을 들여 10개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리고 ‘네트워킹을 통해 동일 산업에 있는 사업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이다. 그로 인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회사를 지금보다 더 성공적으로 이끌어가 생존력도 높이고, 매출도 올리고, 제대로 키워나간다.
10개월 과정을 하며 2000만 원을 쓰더래도 2000만 원어치 매출을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가감 없이 투자금액과 수입금을 올린다면 매출만으로 보면 0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난 10개월 과정 중에 많은 성장을 할 것이고 전문가의 피드백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다.
최악의 상황이 되더래도 2000만 원 카드값이다. 1년 후 내 삶이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면, 지금 이 자리 변함없이 정체된 나를 발견한다면 지금 쓰는 2000만 원이 아까울까? 1 년 뒤 지금보다 더 뒤처진 내가 더 아까울까? 내가 더 아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투자이자 회사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하지 말고 맞서자! 까짓 거 가보는 거야! 최선을 다해서”
두려움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정을 했어도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상황 시나리오를 써보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순간 두려움의 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행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보다 후회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가기로 생각을 바꿨다.
걱정만 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일이 해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자로.
때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이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난 ‘후회’라는 감정이 ‘두려움’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쉬었을까? 그게 잘 되었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당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안된다고 단정 짓고,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마음이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쌓여서 습관이 된다. 그 반복된 습관은 성격이 된다. 성격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우리의 사고방식, 생각의 패턴도 다 습관이다.
우리는 성장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극복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극복하겠다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도망 다닐 필요가 없다. 회피로 받는 불안과 걱정의 산더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두려움의 실체를 들여다보니 두려움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부딪혀야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생각만 하면 그 두려움은 끔찍한 괴물로 둔갑한다. 괴물 둔갑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은 생각이 들어올 틈을 만들어 주지 않도록 ‘행동’을 하면 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빨리 진행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하나다. 내가 두려워하는 일을 빨리 진행하는 것이다. 행동을 하며 상황을 마주하고 두 가지를 파악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실체도 모르고 닥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상만 하며 걱정을 하니 온몸이 진이 다 빠지고 괴롭고 힘들다. 이 몹쓸 상상력을 버리자. 허상을 바라보지 말고 실체를 똑바로 쳐다보자.
단, 우리가 삶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다는 것도 이해를 하자.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이 주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자식도 선택할 수 없다.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애초부터 고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은 두려워할 대상에서 아예 제외를 시키는 것이 좋다.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걱정을 하든 말든 그 일들은 자연의 섭리와 이치에 따라 일어날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 손을 떠난 두려움이다.
우주가 해결할 문제다. 그 책임과 해결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내면의 힘을 키우며 불행을 견뎌내자. 6년 사업을 하며 느낀 것은 마음처럼 되는 일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은 두려움에 대한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비관적인 사람이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난 억울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은 우리 생각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다. 비관적인 생각과 자세를 우리가 만들었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도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만 바꾸면 된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우리가 믿고 살아오는 ‘가치관’에서 나온다.
위기를 극복하며 도전 과제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이 한층 더 멋진 모습의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습관의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두려움 속에서 맞서지 못하고 회피를 선택했다면 당신의 삶이 어떨지 앞서 설명했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 못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비관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다. 삶은 낙담과 피곤함의 연속이고 불행과 얼싸안고 절친을 맺을 테다. 남 탓, 인생 탓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로의 눈을 맞출 것이다.
여태까지 이리 살았다면 이젠 그것들과 손절하기 딱 좋은 시기다. 쿨하게 인정하자. 두려움을 피해 걱정만 하며 도망치고 다녔다고.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두려움에 맞서 도전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잠재력과 경험하지 못한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그 힘이 ‘아직’ 발휘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전과 목적이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목적이 있으면 두려움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원하는 비전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 현재의 나이, 위치, 늙어감에 무뎌진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체면적으로 챙겨가며 두려워했던 것들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쓸데없는 잡념을 사라지게 해 준다.
두려움이 생기려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전과 목표를 떠올리는 것이다.
(혹은 만드는 것이다.)
나를 끌어가는 원동력, 무엇을 이루기 위해 왜 사업을 하는지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다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다. 한 가지 목표에 몰입을 하게 되면 행동으로 두려움에 인사를 할 수 있다. 두려움은 감소되고 성취감과 작은 목표 달성이 모아져서 큰 성공까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책 <멘탈의 연금술>에서 두려움을 ‘용’이라고 정의하고 ‘두려움의 용을 쓰러뜨려라’라는 표현을 쓴다. 두려움의 용을 쓰러뜨리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두려움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의 걱정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즉 ‘걱정은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존재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 갈등, 시련, 난관 등이다.
걱정은 허공에서 생겨났다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_<멘탈의 연금술>에서
걱정에 대처하는 유일한 자세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당신이 걱정하는 일들 중 90퍼센트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준까지 멘탈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_<멘탈의 연금술> p.101
걱정과 두려움을 다스리는 리스트를 만드는 순서를 보자.
1. 걱정이 아니라 문제 직시
2. 걱정과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리스트를 만든다.
모두 상세히 적는다 그리고 두려운 이유 낱낱이 적는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돈 혹은 남들의 웃음거리 같은 것 말이다.
3. 큰 두려움을 잘게 쪼개야 한다.
두려움을 종이 위에 떨어뜨리면 여유와 빈틈이 생겨난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일상 회복, 자신감과 열정 얻게 된다. 두려움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 리스트를 만들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리스트를 펼쳐 모든 항목을 큰 소리로 읽어보라.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를 다루는 간단한 지혜는 데드라인을 부여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든 시간을 반드시 할당해야 한단
예를 들어 40분 글쓰기, 10분 인터넷 쇼핑, 10분 걱정과 놀기이다.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 파친코.
파친코에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선자의 남편이 된 이삭. 결혼 후 둘은 일본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어느 날 젊은 선교사 이삭에게 한 조선인 교인이 찾아와 부탁을 한다. 남편도 잃었는데 큰 아들이 뭔가 수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으니 살펴봐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예요.
그걸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_ 파친코 6부 중에서
파친코에 나오는 ‘두려움’에 대한 대사를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윤곽이 확실했던 사람도 두려움을 받아들이게 되면 윤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거구나였다. 물체의 형태는 그 윤곽을 선으로 그리지 않더라도 주위의 색이나 형태와 구분되고, 질이 틀리기에 그 윤곽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와 주변을 구분 지어 주던 그 마음의 울타리 경계가 무너지고 흐릿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진짜 생각인지 알아차릴 수 없게 우리 감정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 두려움이다.
나를 온전한 나로 만들어주는 그 윤곽을 지켜내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주 단단한 경계를 세우지 않는 한은 말이다. 윤곽이 흐려지면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존재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을까?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되었는 가가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나 스스로에게 온전하게 자랑스러운 ‘나’가 될 자격.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어떻게 잘 살게 되었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반으로 쪼개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겉으로만 잘 사는 삶이 아닌 속으로도 잘 사는 삶.
겉과 속이 알찬 통제권을 가진 삶을 살았으면 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온전하게 스스로가 인정하는 자신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두려움은 피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할 자연스러운 감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무언가를 말해주고 가르친다. 그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일은 당신의 몫이다.
예를 들어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두렵지 않다.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고 거기에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두렵다. 내가 꿈꾸는 일이고 해낼 가능성이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은 곧 언젠간 내가 소설을 써야 한다는 메시지다.
빌 비솝의 <핑크 펭귄> p.258
두려움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닐까? 하고 싶은데 ‘잘’ 못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어앉는 것이다. 욕심이 크거나 잡은 목표의
덩이가 너무 커서 방향을 잃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럴 땐 두려움 그 자체의 감정에서 나와 큰 덩이를 ‘잘게’ 잘라보고 무엇이 두려운가 마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굿 다이노>에서 나온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아빠 공룡과 겁이 많은 아들 공룡에게 저녁에 들판을 걸으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그 건너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단다.”
이 말에서 난 ‘때로는’이라는 말이 제일 좋다. 우리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때로는’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순간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 건너편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두려움은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확실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불안감에서 온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기에 내가 없앨 수 있다.
두려움은 결국 우리의 못나고 악한 모습까지 ‘공격적으로’ 꺼내게 된다. 두려움을 피하게 될 경우 나타날 최종 결과가 눈에 보인다. 결국은 두려움이 우리에게 주는 선택권은 둘 중 하나다.
두려움은 결국 불안함으로 가득한 삶을 살 것인가? 혹은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다. 두려움과 용기는 따로 떨어트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용기는 한 세트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 두려움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신호를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내 몸이 준비를 하고 있구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은 이미 용기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두려움을 피하면 두려움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두려움을 마주하면 두려움이 점점 작아진다.
피하지 않을 거라면 즐겁게 받아들이자.
난 두려움과 춤을 추기로 결정했다.
두려움과 춤을 추자!
함께 춤을 춰요!
•두려움의 요소 참고 사이트: https://newspeppermint.com/2014/10/22/mfear-2/a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