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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Nov 15. 2023

정답이 없는 문예입시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2>

대학교 실기고사는 백일장과 다르다. 정답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오늘은 실제로 제시된 대학교 실기고사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며 글을 열어볼까 한다.

잠깐 졸았다가 깨어났는데 자신이 다른 존재 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짧은 소설이나 짧은 희곡을 쓰시오.

단, 아래의 조건을 충족할 것.

조건 1) 공간적 배경으로 바닷가, 공항, 놀이공원 중 하나를 택할 것
조건 2) 다른 존재나 사람이 되기 이전 주인공의 나이는 10대 후반으로 설정할 것
조건 3) 꿈으로 처리하지 말 것

기타 유의사항
1) 제목은 스스로 정해 첫째 줄에 쓰십시오
2) 제시된 문제에 부합하지 않거나 표절로 판단되는 글은 평가에서 제외합니다

-동국대학교 2023학년도 수시모집 실기(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 전형 실기고사 문제 인용

참으로 친절한 문제다. 이렇게 자세하게 문제를 제시해 주는 건 동국대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문제를 받아 든 학생은 굉장한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백일장에서 나오던 글제들은 다 단어였는데, 왜 대학교 실기 문제는 이렇게 길어?'

'이런 문제에 맞춰서 글을 처음 써 봐. 조건을 맞춰 써야 한다고? 내가 쓸 수 있을까?'

'이걸 시간 내에 완성해야 한다고? 어떻게?'

'흔해빠진 내용 밖에 생각나지 않아. 어떡하지?'


시간 내에 완성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고, 실기고사가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들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와 학과인 만큼, 그 높은 경쟁률만큼이나 학생들의 기대와 충격 그리고 절망도 크게 느껴진다.


다른 대학교 실기고사 문제를 경험해 본 학생들은 알 것이다. 그래도 이 학교는 친절한 곳이라는 것을.


문예창작과 입시에 명확한 정답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확실한 정보도 적다.

이게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들이다.


미술이나 무용, 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예술고등학교는 정말 많다.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예술고등학교는 고양예술고등학교와 안양예술고등학교 단 두 군데뿐이다.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문예창작입시를 준비하겠다 하면, 그 입시 방식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하는 교사가 대다수다.  


심지어 '논술시험'과 '문예창작 실기고사'를 헷갈리는 일들도 생긴다.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겠단 학생에게 담임교사가 논술학원을 알려주고, 논술학원에서 '글은 어차피 다 똑같은 거다'라면서 논술을 가르쳐준다. 문예창작과를 꿈꾸던 학생이 논술로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 생판 다른 학과에 입학하게 되어 재수나 반수를 결정하게 되는 일도 자주 보았다.


미술이나 무용, 혹은 연기나 다른 체육계열 특기생을 위한 학원은 동네마다 있지만 문예창작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그 수가 적다. 내가 학생일 때는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학원이 각 지역마다 한 군데 있을까 말까인 데다가 학원의 존재를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학원의 수가 그만큼 적었으니까.


대학교 홈페이지에 작년 실기고사 글제나 문제를 올려주는 학교도 거의 없다. 문제를 내고 출제의도까지 공식적으로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이야기해 주는 학교는 동국대학교뿐이다.


공식적으로 대학교가 실기고사 문제와 출제의도를 밝히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어진다. 힘들게 다른 학원 블로그나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문제를 찾아야 하고, 다른 학생들의 정확하지 않은 입시후기를 읽으며 휘둘리기도 한다. 때로는 잘못된 방식을 배우게 되어 글이 망가져버리게 되거나, 정보를 얻고자 돌아다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 상처를 입는 일도 생긴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조력자가 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일 것이다. 올바른 정보를 주어야 하는 학교와 교사들 또한 부족한 데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자체도 다른 과 입시에 비하면 부족하고,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 내릴 수 있는 기준이 없는 입시생들만 고생이다.


문예창작과  입시에 뛰어들기 위해선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우선 이 시험 자체가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문예창작과. 이미 과 이름에 '예술'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간다.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각본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예술적 행위다. 문예창작과가 인문대학교에 속해있는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예창작과는 예술대학교에 소속되고는 한다.


문예창작 실기고사는 논술고사와 다르다. 논술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서술형의 답을 적는 것이며,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합격과 불합격에 있어 어느 정도의 기준이 존재한다. 문예창작과 실기고사는 시험 같지만 학생이 가지고 있는 실력뿐 아니라 잠재성과 예술성을 보기 위함이다.  


여느 예술계열의 실기가 그렇듯이 문예창작과 실기 시험도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점수가 매겨진다. 아래의 문제를 보자.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쓴 작가가 누군지 고르시오.

1. 김소월

2. 한용운

3. 김동인

4. 염상섭

5. 주시경


정답이 하나뿐인 시험문제는 점수 매기기도 쉽고 참 공명정대하다.


학생들의 머리에 의문을 남기고,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정보가 적은 데다가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인 시험 형태. 자신은 분명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불합격이 되고, 이번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평소 실력이 다 나오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합격이 되는.

아직 실력이 완전하지 않은 학생들은 이런 경험들을 하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도대체 여기서 정답이 뭐지? 그래서 내가 정답을 맞히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는 글을 자유롭게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과에 가는 거예요.'

'예술작품을 왜 이런 틀에 맞춰서 써야 하나요?'


열아홉 살의 내가 저런 말을 했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학생들은 저런 말을 한다. 열아홉 살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사실 실기고사 문제야말로 학생들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의 예시로 보여준 시험문제를 다시 보자. 보면 '조건'이라는 것이 있다.  


조건 1) 공간적 배경으로 바닷가, 공항, 놀이공원 중 하나를 택할 것

조건 2) 다른 존재나 사람이 되기 이전 주인공의 나이는 10대 후반으로 설정할 것

조건 3) 꿈으로 처리하지 말 것


이후 상황글제를 다루는 다른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위의 조건들은 이야기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학생의 글에서 잘 쓰이는지를 확인한다.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 공간과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에 어울리는 배경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가?

'꿈'이라는 너무 흔한 결말을 사용하지는 않는가?

'꿈'이라는 요소를 사용하여 맥락에서 벗어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가?  


물론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학교들도 있다. 그 학교들 또한 학생의 글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는 문제를 낸다. 단어를 내거나, 문장을 내거나, 상황을 제시하거나, 이미지를 주거나 하면서 말이다. 문제들은 학생들에게 이런 것을 물어본다.


네 상상력이 어느 정도 일까? = 다른 학생들과 네 글이 뭐가 다를까?

네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보이는 구성으로 글을 쓸 수 있니? = 네 글 재밌니?

맞춤법 지키는 건 그렇다 쳐도, 가독성 좋은 문장으로 글을 쓰니? = 네 글 잘 읽히니?

문제 의도를 파악했니? = 독자가 원하는 바를 유념하고 글을 쓰니?


1+1이 2인 것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예창작과 실기 고사의 정답은 자신만의 능력과 특별함을 과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과를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본실력은 연마하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정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것이야말로 결국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멋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내가 정답이라 할 생각도, 학교나 학원에서 문예창작과 입시생을 지도하는 동지들을 적으로 돌릴 생각도, 대학교를 깎아내릴 생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입시 최전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학문의 발전을 이바지하는 교수님들도 늘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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